올해는 뉴질랜드와 호주간 경제교류의 토대가 된 자유무역협정(CER)을 체결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협정을 맺은 이후 양국의 왕래는 더욱 활발해졌고 키위와 오지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비슷하게 각 나라 인구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키위들이 보다 많은 수입과 보다 높은 생활수준의 꿈을 안고 호주로 떠나고 있다. 비단 키위뿐 아니라 시민권을 가진 많은 교민들도 호주행을 택했고 지금도 적지 않은 교민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 호주는 과연 도전할만한 기회의 땅일까?
임금 20~30% 높지만 물가도 그만큼 비싸
뉴질랜드인의 호주 이주 역사는 100년을 휠씬 넘는다.
테 아라(Te Ara) 백과사전에는 1861년 약 1,350명의 뉴질랜드인들이 호주에 살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키위들의 호주 이주가 현저히 늘어난 시기는 1960년대 말부터이고, 지금까지 경제상황에 따라 많고 적음만 변할 뿐이지 항상 호주로의 인구 유출이 유입보다 앞섰다.
지난해 영구 또는 1년 이상 장기 거주 목적으로 호주로 이주한 사람은 5만3,676명으로 2011년에 비해 5.1% 늘었다. 매일 평균 147명이 넘는 키위들이 타스만 해를 건너간 셈이다.
반면에 호주에서는 1만4,880명이 장기 거주 목적으로 뉴질랜드로 건너 왔다.
뉴질랜드 통계청에 따르면 호주로 떠나거나 호주에서 돌아오는 대부분은 뉴질랜드 시민권자이다.
지난해 너무나 많은 키위들의 호주 유입이 계속되자 이들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호주 정치계에서 흘러 나오기도 했다.
임금 수준이 뉴질랜드보다 평균 20~30% 높고 일자리도 많은 호주는 많은 키위들에게 기회의 이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의 땅을 찾은 많은 키위들의 생활이 기대처럼 녹록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호주로의 재이민을 위해 답사를 다녀온 한 교민은 주택과 사업체 가격 등 뉴질랜드와 비교할 수 없는 살인적인 물가 수준과 높은 경쟁 상황을 확인하고 재이민을 포기했다.
임금이 높지만 물가도 그만큼 높아 생활수준이 결코 낫다고 볼 수 없었다.
또한 한인 사이에서도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2001년부터 호주내 키위들의 사회복지 혜택 제한
뉴질랜드 시민권자가 호주로 이주할 경우 우선 불리한 신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과거 뉴질랜드인들은 호주에서도 실업수당과 장애수당 등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호주 시민권을 획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2월 호주가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 법률 개정으로 인해 호주에 입국하는 모든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영주권자가 아닌 ‘비보호’ 특별범주비자상의 임시 거주자로 분류되어 각종 사회복지 대상에서 배제됐다.
이를 기점으로 호주에 있는 뉴질랜드인들은 기존에 호주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부류와 기한 없이 살고, 일하며, 세금을 내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새로운 부류 등 2가지 계층으로 갈렸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이 실업수당과 장애수당, 주거보조비 등 각종 사회복지 지원을 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평한 상호 이민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호주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뉴질랜드 도착과 동시에 영주비자를 받고 2년이 지나면 학생수당과 학생융자를 신청할 수 있으며 3년 후에는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으나 호주에 이주하는 뉴질랜드인들은 패밀리 택스 베네핏(family tax benefit)과 유급 출산휴가 등 일부 패밀리 페이먼트 외에는 거의 모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영주권이나 시민권도 다른 나라 이주자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해야 한다.
키위의 호주 시민권 취득 37%로 최하위권
호주는 호주내 뉴질랜드인들의 사회보장 경비로 매년 10억호주달러를 뉴질랜드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법률 개정의 책임을 뉴질랜드측에 넘겼다.
호주 당국은 늘어나는 키위들의 복지 비용과 제어할 수 없는 이주 행렬, 그리고 뉴질랜드 시민권을 획득한 후 호주로 입국하는 아시안 및 퍼시픽 아일랜드인의 징검다리 이민 등을 우려한 요구였으나, 실상은 뉴질랜드인들이 호주에서 세금으로 내는 돈은 그보다 휠씬 많은 25억달러여서 호주는 뉴질랜드인 1인당 3,000달러의 이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뉴질랜드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의 호주 비용을 뉴질랜드 납세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심지어 이 법률은 소급 적용되어 이전에 호주에 살았어도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임시 거주자로 취급되는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시민권이 없으니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뉴질랜드인들의 호주 시민권 취득률은 37%로 최하위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97%) 베트남(91%) 이탈리아(80%) 남아프리카공화국(69%) 영국(67%) 중국(58%) 출신 이민자들에 비하면 한참 뒤진 것이다.
이처럼 키위들의 호주 시민권 취득이 저조한 요인은 2001년 법률 개정 이전에 이주한 키위들은 시민권 취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 이후에 도착한 키위들은 여러 가지 제약으로 취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직업이나 돈, 백업계획 없으면 성공 어려워
뉴질랜드측은 차별적이고 인권 위반 논란까지 있는 이러한 호주의 조치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진 못하다.
머레이 맥컬리(Murray McCully) 외무장관은 “뉴질랜드 정부는 호주에 살고 있는 키위들이 처한 문제들을 알고 있고 호주 정부에 얘기했다”며 “그러나 호주의 이민정책과 사회보장 조건을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호주 정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컬리 장관은 또 “뉴질랜드인은 그래도 호주에서 살고 일하며 공부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선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며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뉴질랜드인은 국내에서 누렸던 특권의 일정 부분은 포기한다”고 덧붙였다.
야당인 노동당의 필 고프(Phil Goff) 외무 대변인은 호주내 뉴질랜드인들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호주 국회의원들과 접촉해 왔다고 밝혔다.
고프 대변인은 “지금의 제도는 명백히 불공평하기 때문에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뉴질랜드인들이 호주에 거주한 후 5년이 지나면 모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호주 이민부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이민부는 임시비자로 거주하는 뉴질랜드인들에게 8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1년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호주총리의 지시로 발족한 독립적인 정부자문기관이 호주다문화카운슬은 임시비자 체류자들이 사회복지와 대학교육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임시비자로 호주에 살고 있는 28만 뉴질랜드인들이 영원한 2등 계층으로 남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내 많은 키위들이 실질적인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 가난과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마땅한 거처가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를 따라 호주로 건너온 젊은 키위들과 퍼시픽 아일랜드인들 중에서 고등교육과 정부지원 직업훈련, 사회 안전망 등으로부터 차단되면서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고 범죄와 마약, 알코올 중독으로 멍들어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드니 서부와 멜버른 일대의 갱단도 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가족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해체됐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뉴질랜드로 돌아올 여력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는 빅키 바(Vicky Va’a)는 호주 이민을 꿈꾸는 키위들에게 “돈이나 백업 계획, 특히 직업이 없으면 호주에 오지 말 것”이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