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오르기만 하는 물가 가운데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전자제품일 것이다. 3년전 6,000달러를 주어야 살 수 있었던 플라즈마 텔레비전이 이젠 899달러면 장만할 수 있고 불과 1년전 999달러였던 LCD 텔레비전은 599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 1년 동안 5% 급등한 식품가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전자제품 가격은 비싸고 식료품 가격은 쌌던 뉴질랜드의 전통적인 가격 형태가 뒤바뀐 셈이다.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판매업체들의 입장에선 생존이 달린 전자제품 가격인하 전쟁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TV가격 지난해 20~30% 하락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기 및 전자제품 매출은 2001년 15억9,100만달러에서 2007년 24억5,000만달러로 꾸준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2007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출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계속된 경기침체 탓도 있지만 소매점들은 이에 대한 원인을 과도한 가격인하 경쟁에서 찾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기술력도 급속하게 발전했지만 가격 또한 급속하게 떨어졌다.
2010년 한 해 동안 평판 텔레비전 가격은 20~30% 떨어졌다.
새로운 제품들이 빠르게 출시되는 전자업계의 전례를 보아도 상당한 하락폭이다.
제이비 하이파이(JB Hi-Fi)의 테리 스마트(Terry Smart) 사장은 “이제 가격인하는 전자제품 판매의 일부분이 되었다”면서 “특히 텔레비전의 경우 지난 12~18개월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가격파괴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텔레비전은 전자제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품목인데다 더욱 많은 소매점들이 시장에서 다투고 있어 업계의 생존을 위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호주 업체들 진출로 경쟁 가열
뉴질랜드의 1인당 전자제품 매장수는 이제 호주에 비해 4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하비 노만(Harvey Norman), 제이비 하이파이, 굿 가이즈(Good Guys) 등과 같은 호주의 대형체인들이 속속 뉴질랜드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의 출혈 경쟁이 벌어져 래드포드(Radford’s), 힐 앤드 스튜어트(Hill & Stewart), 이스턴 하이파이(Eastern Hi-Fi)와 몇몇 중소업체들이 쓰러졌고 진공청소기 전문업체인 갓프리(Godfrey)도 최근 고전하고 있다.
경쟁 심화와 소비 감소로 앞으로도 전자제품 소매업체들의 이 같은 폐업사태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규모가 큰 전자제품 판매점은 그나마 괜찮으나 소규모의 매장들은 높은 렌트비 막기에 급급한 것이 요즘 전자제품 업계의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매점들은 전자제품 가격인하 전쟁의 책임을 제조업체들에 돌리고 있고 반대로 제조업체들은 소매점들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뉴질랜드 텔레비전 시장의 선두주자는 삼성이고, 그 뒤를 파나소닉이 바짝 쫓고 있으며 소니와 LG가 다음을 형성하고 있다.
스마트 사장은 “양쪽이 모두 책임이 있지만 경쟁적인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소매점들에 더욱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많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서 할인가격을 더욱 높게 제시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털어 놓았다.
전자제품 판매업체들 대부분 이익 감소
1990년대 후반에 뉴질랜드에 진출한 하비 노만은 그 동안 뉴질랜드 토착 마케팅으로 점포수를 30여 개로 늘렸으나 지난해 경기침체와 부가가치세 인상 등으로 매출이 4.7%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온라인 쇼핑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한 하비 노만은 앞으로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제품 판매시장의 약 30%를 차지하는 대형업체로 노엘 리밍 그룹(Noel Leeming Group)이 있다. 뉴질랜드에는 본드 앤드 본드(Bond & Bond) 30개 매장을 포함해 80여 개의 판매 체인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룹의 호주 소유 회사인 그레샴(Gresham)은 이익을 갉아먹는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고, 하비 노만과 웨어하우스(Warehouse), 브리스코(Briscoes), 제이비 하이피이 등이 사업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에 13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제이비 하이파이 역시 지난해 손실폭을 줄였으나 아직 뉴질랜드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호주의 대형소매그룹인 울워스(Woolworths)가 소유라고 있는 딕 스미스(Dick Smith)도 경쟁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이 회사의 연간 재무제표를 보면 세전 이익이 1,030만달러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전년 대비 절반이나 감소한 수치이다.
판매업체 2~3개로 줄 때까지 가격인하 경쟁 계속될 듯 뉴질랜드달러화의 강세가 완강하게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자제품 소매점들은 이러한 가격인하 경쟁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는지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뉴질랜드 파나소닉에 따르면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약 40만대의 평판 텔레비전이 팔려 나갔다.
이런 추세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2년 내에 뉴질랜드의 모든 가정에는 새로운 텔레비전이 보급되는 셈이다. 그러나 한 집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 같은 단순한 계산은 정확하진 않을 것이다.
현재 셋톱박스를 포함해서 뉴질랜드의 디지털 텔레비전 보급률은 약 70%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시장이 포화되기 전까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텔레비전이 팔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사이다.
파나소닉의 그랜트 쇼(Grant Shaw) 부장은 “올해 2D를 3D로 자동 변환해 주고 더욱 얇은 텔레비전이 출시되면서 가격할인 전쟁도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어떤 모델이 단종되면 가격이 인하되고 신형 모델이 나오면 다시 가격이 오르곤 하는데 이제 거의 모든 구형 텔레비전이 퇴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시판 텔레비전의 80% 정도는 3D이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특징을 갖추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직 처분해야 할 구형 재고가 많다고 털어 놓는 소매점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마트 사장은 “호주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상황이 뉴질랜드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작은 업체들은 가격인하 경쟁에서 밀려 퇴출되고 업체간 합병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2개 또는 3개 업체들로 압축될 때까지 전자제품 판매업체들의 사활을 건 가격인하 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연도별 전기 및 전자제품 판매액 (단위:10억달러)
연 도 |
금 액 |
2001년 |
1,592 |
2002년 |
1,752 |
2003년 |
1,837 |
2004년 |
2,002 |
2005년 |
2,178 |
2006년 |
2,291 |
2007년 |
2,450 |
2008년 |
2,382 |
2009년 |
2,480 |
2010년 |
2,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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