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열리는 해에는 보통 정부 예산이 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발표된 2011 회계연도 정부 예산안은 총선을 여섯 달 앞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신규 지출을 동결한 ‘제로 예산’이었다. 이처럼 총선의 해에 예산이 삭감됐던 경우는 1931년 이후 80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집권 국민당이 월등한 차이로 지지도에서 계속 앞서고 있으며 노동당이 현재로선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국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정부 재정이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08년 이후 정부재정 급속 악화경기침체가 닥쳤던 2008년 이전까지 뉴질랜드 정부는 15년 연속 재정 흑자를 이루었다.
3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사상 최고 수준인 167억달러의 재정 적자를 안고 있다.
이는 2008년 총선 전에 예상했던 24억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결과로써 더딘 경제 회복으로 세입은 줄어 들고 실업수당과 같은 정부 지출이 늘면서 나라 살림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부채시장은 15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뉴질랜드 정부의 부채에 경계의 눈빛을 주지 않아 쉽게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던 점도 재정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뉴질랜드 정부 채권의 약 63%는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BNZ의 이코노미스트 토니 알렉산더(Tony Alexander)는 “해외에서 ‘뉴질랜드’라는 이름은 잘 팔린다”며 “이는 15년간의 재정 흑자와 뉴질랜드 은행 체계에 대한 신뢰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9월에 이어 지난 2월 크라이스트처치를 강타한 두 차례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주택, 상업용 건물, 기간 시설 등을 포함해 15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8%에 해당되는 것으로 지난 3월 발생했던 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의 3~5%보다도 높다.
정부는 크라이스트처치 피해 복구를 위해 올 예산에 55억달러를 배정했고 ‘지진 키위 본드’를 발행할 계획으로 있어 추가적인 부채 부담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2011 회계연도 정부 수입은 개인소득세(243억달러), 법인세(81억달러), 부가가치세(150억달러) 등을 포함해 611억달러이고 정부 지출은 사회복지(229억달러), 보건(144억달러), 교육(123억달러) 등 730억달러로 아직 흑자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키위세이버’와 ‘워킹포패밀리’ 삭감
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는 그 규모보다는 증가속도에 있다.
정부의 순부채 규모는 2008년 6월 국내총생산의 5.6%였던 100억달러에서 현재 21% 정도인 420억달러로 급증했다.
총부채도 같은 기간 310억달러(17.2%)에서 670억달러(33.3%)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당 평균 3억8,000만달러를 차입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정부는 이런 속도로 부채 증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올해 이를 1억달러로 줄이려 하고 있다.
2011 회계연도 정부 예산안에는 2015년까지 재정 흑자를 거두기 위해 ‘키위세이버(KiwiSaver)’와 ‘워킹포패밀리(Working for Families)’를 삭감하고 에어뉴질랜드(Air New Zealand), 제네시스 에너지(Genesis Energy), 메리디안(Meridian), 마이티 리버 파워(Mighty River Power), 솔리드 에너지(Solid Energy) 등 5개 국영기업을 일부 매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되어 높은 정부 보조금으로 가입자가 167만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키위세이버는 1,000달러의 가입장려금에는 변동이 없지만 연간 최고 1,042달러까지 지원됐던 정부 보조금이 절반으로 줄게 된다.
정부 보조금이 감소하는 대신 개인과 고용주가 분담하는 저축 비율은 증가한다.
고용주와 근로자는 현재 급여의 2%를 각각 분담하고 있으나 이번 예산안이 시행되면 2013년 4월부터 3%로 최소 분담비율이 늘어난다. 정부는 키위세이버 삭감을 통해 2010 회계연도 가입자에 지원했던 8억8,000만달러의 보조금을 절반 수준인 4억4,400만달러로 축소할 계획이다.
워킹포패밀리는 내년 4월부터 고소득 가구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는 대신 저소득 가구에 대한 지원을 늘릴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28억달러에 달하는 워킹포패밀리 지원비용을 향후 4년간 4억4,800만달러 절감하게 된다.
정부는 또 에어뉴질랜드와 4개 국영 에너지 회사들을 민간에 일부 매각해 50~70억달러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학생대출을 엄격히 적용해 55세 이상 만학도와 파트타임 학생의 지급 자격을 제한하고 해외체류자의 상환금 미납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한편 정부조직을 축소해 3년간 9억8,000만달러를 삭감할 방침이다.
높은 대외 채무와 해외 투자자 의존도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Moody’s)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정부 예산안 발표후 뉴질랜드의 국가신용등급을 현 상태로 유지했지만 높은 수준의 대외 채무와 해외 투자자 의존도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해외자산에서 해외부채를 제한 해외 순부채는 작년말 현재 1,590억달러로 뉴질랜드 국민 1인당 평균 3만6,000달러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는 GDP 대비 약 82%로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해외 순부채의 73% 정도는 민간 은행들이 국내 대출 용도로 해외에서 빌려온 돈이다.
이렇게 빌려온 돈은 생산활동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주택구입이나 소비활동에 주로 사용돼 왔다는 점이 문제다.
2000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10년 동안 가계와 회사, 농부들이 은행에서 빌려간 돈은 1,170억달러에서 3,020억달러로 2.6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가계의 모기지 빚은 2.7배 늘어나 1,690억달러에 이르렀다.
뉴질랜드경제연구소(NZIER)의 장 피에르 드라드(Jean Pierre de Raad) 이사는 뉴질랜드 정부 부채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만성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드라드 이사는 “인구의 노령화와 저조한 가계 저축률 등의 압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10~20년 후를 걱정해야 한다”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정책은 노후연금이나 보건 예산을 제한하지 않고도 재정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이다”고 주장했다.
사상최고 뉴질랜드달러, 경제 역풍 우려
정부 예산안 발표 이후 뉴질랜드달러화가 미국달러화 대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경제 회복의 역풍이 불고 있다.
정부 예산안에 담긴 예상보다 이른 재정 흑자로의 회복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긍정적인 평가, 중국의 뉴질랜드 자산 매입 기대, 11억달러의 역대 최대 월간(4월) 무역흑자 규모, 그리고 미달러화의 약세 등이 맞물리면서 1키위달러 가치는 지난달 31일 뉴질랜드가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1985년 이래 사상 최고치인 0.8260 미달러를 기록했다.
뉴질랜드달러는 지난 3개월간 미달러 대비 10%가 절상돼 주요 16개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지진 여파로부터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소매시장도 여전히 미약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경제가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서 등장한 키위달러화의 고공행진은 수출 부문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계획보다 1년 일찍 예산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이는 장밋빛 경제성장 전망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률이 전망치보다 낮거나 크라이스트처치 재건이 지연될 경우 흑자 전환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뉴질랜드 정부 경제전망 (매년 3월말 기준)
구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실질 경제
성장률
1%
1.8%
4%
3%
2.7%
연간 물가
상승률
4.5%
3.1%
2.4%
2.5%
2.6%
90일 이자율
3%
3%
3.9%
4.7%
5%
실업률
6.8%
5.7%
4.8%
4.8%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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