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이다. 15개 대도시 가운데 12개 도시가 해안가에 위치해있고 인구의 65%와 주요 기간시설이 바다로부터 5km 이내에 있다. 오클랜드 도심과 웰링턴 도심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오클랜드 국제공항도 마찬가지이다. 222km의 국도와 2,000km의 지방도로, 160km의 철로는 해수면보다 불과 5m를 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뉴질랜드에 특히 위협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해수면 상승속도 예상보다 빨라
지난해 파키스탄과 호주의 홍수, 러시아의 가뭄, 유럽 지역의 폭설에 이어 올해 방콕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한 태국의 홍수와 미국의 토네이도 등 세계의 기상이변은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해가고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크 허츠가드(Mark Hertsgaard)는 ‘지구에서 향후 50년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이제 기후변화는 제2기에 들어섰고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에 대한 대비를 시작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 세대에 발생할 문제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며, 이미 시작했을 뿐아니라 악화되고 있다”며 대비책 마련을 촉구했다.
해수면 상승은 뜨거워지는 지구가 직면한 최대 위기다.
해수면 상승 속도가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더 빨라지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은 2100년까지 최대 0.6m의 해수면 상승을 예고했지만 지난 5월 전문가들은 최대 1.6m까지 해수면이 올라갈 것이라고 고쳐 잡았고, 2m가 넘을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심지어 모든 이산화탄소 배출을 내일부터 멈춘다고 해도 수십년 동안 지속돼 온 기후변화로 빙하 붕괴와 해수면 상승은 이미 기후체계 안에 잡혀져 있기 때문에 다시 안정되기 전까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섬나라, 저지대 국가 등 세계 곳곳 ‘수몰 위기’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극지방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불어난 물은 이미 남태평양 섬나라들에 시련을 주고 있다.
남태평양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평균 해발고도가 3m에 불과한 투발루는 지난 10년 동안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 곳곳이 물에 잠기고 있다.
전체 인구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는 투발루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2040년경에는 섬 전체가 물에 완전히 잠길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최근에는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라니냐 현상 때문에 발생한 물부족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투발루는 큰 나라들이 미친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 투발루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발루 인근의 키리바시 역시 해수면 상승으로 고심하고 있다.
테부아 타라와섬과 아바누에아섬은 이미 지난 1999년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물에 잠긴 상태다.
지리적으로 남극에 가까운 뉴질랜드도 해수면 상승의 위험에서 예외일 수 없다.
뉴질랜드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1950년 이후 평균기온이 0.4도 높아졌고 해수면은 약 7cm 상승했다. 또한 서리가 내리는 날이 10~20일 적어졌고 기온 상승으로 만년설의 4분의 1 정도가 녹아 내렸다.
이처럼 뉴질랜드의 기후변화는 상당 부분 전개되었고 앞으로도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질랜드도 해수면 상승으로 위험 직면
지난 3년 동안 전세계 80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작성한 IPCC 보고서는 온실가스 상승으로 21세기에는 폭풍, 홍수, 가뭄 등 지금보다 더 심한 기상변화가 예상되고 있다며 뉴질랜드도 태평양 섬나라로서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질랜드 수자원 대기 연구소(NIWA)의 기상학자 제임스 렌윅(James Renwick)도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지역의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아 사람들이 사는 데 점점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오클랜드나 웰링턴 등 항구도시들은 폭우에 따른 홍수나 만조 때 점점 취약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며 “머지 않은 미래에 주택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 지어야 하고 해안가 방파제와 폭우 배수로 등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모범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곳은 대표적인 저지대 국가인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기후변화에 대한 200년 장기계획을 마련해 해수면이 2100년에 0.65~1.3m, 2200년에 2~4m 상승할 것에 대비하고 있다.
이 장기계획에 따라 국민 1인당 평균 450달러를 편성했고 지형적으로 취약한 지역은 ‘희생지역’으로 지정, 주거를 금지했다.
물론 해당지역의 반발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국가적 계획에 큰 마찰없이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도 30년 계획을 세우고 지난 2008년부터 모든 도로를 해수면보다 적어도 3m 이상에 짓기로 결정했고 모든 대도시에 제방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진전없는 해수면 상승 대비책
그렇다면 뉴질랜드의 상황은 어떨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기후변화에 나름 열심히 대비하고 있으나 큰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지원조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마틴 매닝(Martin Manning) 빅토리아대학 교수는 일부 카운슬은 적극적이나 일부는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매닝 교수는 “기후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이 같은 타성을 극복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해수면 상승과 폭우 등으로 뉴질랜드도 네덜란드 식의 ‘희생지역’을 시행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일부 카운슬은 범람, 침식, 폭우 등의 위험이 높은 해안위험지역을 설정하고 있다.
베이 어브 플렌티에서는 주택 1,000여채가 해안위험지역으로 묶여 있고 코로만델의 주택 920여채도 해안 침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호크스베이에서는 해안위험지역의 신개발을 제한하고 있고 타우랑가와 카피티에서는 신규주택 건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안선을 따라 수익성 높은 개발을 하려는 부동산 개발업체들과 이를 제지하려는 카운슬과의 법적 공방도 일어나고 있다.
뉴질랜드 환경부가 제시한 2100년 해수면 상승 가이드라인은 0.5~0.8m이다.
이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의 0.9m, 퀸즈랜드주의 0.8m,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1~1.4m보다 낮은 것이다.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 해안조사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NIWA의 더그 램지(Doug Ramsay)는 “개발업체 등은 하나의 고정된 가이드라인을 원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는 정확한 해수면 상승 높이를 제시할 수 없다. 최대 2m 상승을 암시하는 정보도 있지만 0.8~0.9m가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실시할 수 있었던 교토의정서가 내년말 종료된다.
종료 이후 온실가스 감축안에 대해 논의한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세계 190여개국의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11월 28일부터 12월 9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렸지만 선진국들의 책임있는 자세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허츠가드는 “기름과 석탄 등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태양열이나 풍력 등을 사용하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며 “그러한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나,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소멸되지 않을 기후변화의 여파에 대비하는 것이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