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의회에서 양도소득세(capital gains tax) 논의는 오랫동안 정치적 자살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양도소득세에 대한 언급은 곧 차기 선거에서 승리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양도소득세 도입이 공론화되어 국민당 정권은 회의적인 입장이나 노동당은 찬성하고 있는 편이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양도소득세에 대해 알아본다.
뉴질랜드 조세체계의 구멍 ‘양도소득세’
지난 5월 뉴질랜드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중기적인 조세정책을 세우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계와 업계 전문가, 재무부 및 IRD의 관리 등 14명으로 조세연구그룹이 구성되었다.
이 그룹은 연내 뉴질랜드의 올바른 조세제도에 대한 자문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최근 미국의 조세 전문가 렌 버만(Len Burman) 시라쿠스대학 교수는 이 조세연구그룹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양도소득세의 부재는 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뉴질랜드 조세제도의 커다란 허점이라고 지적했다.
버만 교수는 “뉴질랜드 조세체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대부분의 측면에서 우수하지만 양도소득세가 없다는 사실이 눈에 띄는 단점이다”면서 “이로 인해 사람들이 세금없는 부동산에 투자하게 되고 조세 회피를 찾아 비생산적인 자산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38%의 최고 개인소득세율에 0%의 양도소득세율으로 인해 100만달러의 양도소득을 가정할 경우 38만달러의 조세 회피를 만드는 것과 같다.
버만 교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비생산적인 부동산 거래에 몰두하고 있으므로 소득의 한 종류인 양도소득에도 세금이 부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조세 개편을 주장했다.
즉 양도소득세 도입이나 GST 인상은 소득세율 인하와 함께 시행돼야 한다는 것.
미국의 경우도 로날드 레이건 정부 시절 마지막으로 양도소득세율을 인상할 때 최고 소득세율을 50%에서 28%로 낮추었다.
그는 “특정집단에만 고통을 집중시키지 말고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진국 대부분 양도소득세 시행
알다시피 양도소득세는 토지, 건물 따위를 유상으로 양도하여 얻은 소득에 대하여 부과하는 조세로 매도 금액에서 취득할 때의 가격과 필요 경비, 양도 소득 공제 및 해당되는 공제 금액을 뺀 나머지에 대하여 부과된다.
양도소득세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유럽의 공통세율은 약 30%이다.
미국과 영국은 1950년대 이미 도입하였고 이웃 호주도 198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버만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양도소득세가 소득세율과 같은 수준으로 부과될 경우 주거용 주택 부문을 제외하면 15억달러, 포함하면 40억달러의 세수를 거둬 들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질랜드에서 최근의 양도소득세 논의는 부동산 거품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빌 잉글리쉬(Bill English) 재무장관은 지난 8월 “부동산 붐을 막기 위해서라면 양도소득세 시행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앙은행 알란 볼라드(Alan Bollard)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불필요하고 불균형적인 주택시장 부활 신호를 경계하고 있다”면서 세금을 포함한 주택투기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시사했다.
ANZ National은행의 카메론 바그리(Cameron Bagrie)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주택 부문이 경제 회복을 이끈다면 뉴질랜드는 해외에서 더욱 많은 돈을 빌려 오게 된다”며 제2의 주택 붐을 우려했다.
재무부의 존 화이트헤드(John Whitehead) 국장은 “투자용 부동산을 팔아 얻은 소득에 세금이 없다는 것은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저해한다”며 양도소득세 도입을 지지했다.
정부의 양도소득세 도입 시도 매번 좌절
정부의 양도소득세 도입 검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주택에 대한 뉴질랜드인의 유별난 집착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도입한다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로 인식되어 매번 정부 정책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지난해 국제적인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40% 이상 급락했을 때에도 뉴질랜드에서는 10% 이상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노동당 필 고프(Phil Goff) 대표가 “노동당은 양도소득세 도입에 대해 정부와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라고 말해 양도소득세 도입에 대한 양대 정당의 연합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당은 양도소득세를 주거용 부동산에 적용하지 않고 투자용 부동산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고프 대표는 “노동당은 패밀리홈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부가가치세(GST) 인상은 분명히 반대하지만 정부가 다른 방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협의할 것이다”고 밝혔다.
양도소득세는 경제 및 정치적인 이유로 소유주가 직접 살고 있는 주택에 대해서는 부과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뉴질랜드의 주거형태는 △모기지 없는 집 △모기지 있는 집 △렌트로 사는 집 등이 거의 삼등분하고 있기 때문에 3분의 2는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도소득세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인 규모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의 존 쉬완(John Shewan) 회장은 “양도소득세 도입으로 모든 세금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시작하지만 시행과정에서 이것 저것 제외하다 보면 실질적으로 남는게 없는 것이 다른 나라들에서 발생한 전례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쉬완 회장은 “전체 세금의 거의 절반과 정부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소득세의 의존도를 낮출 방법이 필요하다”며 “토지세나 부동산세 또는 렌트용 부동산을 대상으로 하는 보다 세분화된 세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뉴질랜드인의 24%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며 “정부가 노동에 대해 세금을 무겁게 부과한다면 뉴질랜드 인력의 해외 유출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 키 총리 양도소득세 도입 회의적
정작 양도소득세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쪽은 존 키(John Key) 총리와 국민당이다.
키 총리는 “양도소득세가 비효율적이고 부동산 붐 방지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며 “그 같은 사실은 미국, 영국, 호주의 사례에서도 증명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당은 양도소득세를 지지하지 않지만 조세연구그룹이 제출할 예정인 자문안에 대한 어떤 제한을 두고 있진 않다”며 “부동산 투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다른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부동산 세금에 대해 고위급 검토를 하고 있고 노동당 고프 대표는 주거용 주택을 포함하지 않는 한 양도소득세 도입을 지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정부측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있다며 도입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부동산 거래에 붙는 세금의 변화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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