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물가는 급격히 오르는 반면 수입은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가운데 오는 14일 마감되는 총선을 앞둔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기만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경제가 다른 나라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뉴질랜드 자체만으로 어려운 경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은 모든 유권자도 잘 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달 들어 뉴질랜드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려면 연간 소득이 얼마나 돼야 하는지’에 대한 한 연구 자료가 발표돼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나온 해당 자료와 함께 이전에 공개된 관련 내용 및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행복과 소득의 상관관계’를 소개한다.
▲ 매년 3월 20일은 ‘국제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
<NZ, ‘행복한 나라’ 세계 10위?>
지난 3월 20일 유엔(UN)이 정한 ‘국제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에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한 ‘2020~2022년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는 뉴질랜드가 137개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 10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뽑혔다.
1위는 6년 연속 정상을 차지한 북유럽의 핀란드였으며 2위와 3위 역시 같은 북유럽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가 차지했고 특이하게도 이스라엘이 4위에 오른 가운데 네덜란드(5위)와 스웨덴(6위), 노르웨이(7위), 스위스(8위), 룩셈부르크(9위) 등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가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10위인 뉴질랜드 뒤로는 오스트리아와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와 미국이 차례대로 11위부터 15위에 올랐으며, 또한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와 아랍 에미리트, 타이완이 각각 25~27위로 앞선 가운데 일본은 47위, 한국은 57위, 그리고 중국은 64위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127위의 마다가스카르와 128위의 탄자니아를 포함해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하위권에 위치했으며, 몇 년째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는 중인 레바논과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이 최하위인 136위와 137위에 이름을 올렸다.
▲ SDSN의 ‘2020-2022 행복지수’ 상위 10개국
<팬데믹으로 전반적 행복지수는 감소>
‘세계 행복 보고서’에 실리는 ‘국가 행복지수’는 SDSN이 미국 심리학자인 하들리 캔트릴(Hadley Cantril)이 고안한 삶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캔트릴 사다리 척도(Cantril Ladder Scale)’ 설문조사를 통해 산출한다.
이 척도는 0부터 10까지로 구성돼 자신의 인생을 사다리라고 가정했을 때 ‘0’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태’이며 ‘10’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최상의 상태’로, 설문은 “당신의 삶은 0부터 10까지의 이 사다리에서 몇 점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또한 보고서에는 국가 행복지수와 연관이 깊은 지표인 GDP와 기대수명을 포함한 보건, 사회적 지원, 인생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등도 함께 감안해 산출한다.
2012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이 보고서에서 뉴질랜드는 꾸준히 10위 안에 들었지만 최근 들어 두 계단이 떨어졌으며 실제로 직전 조사 때보다 점수도 7.123으로 0.077점이 떨어졌는데, 1위인 핀란드도 7.821점에서 7.804점으로 내려가는 등 전반적으로 점수가 이전보다 하향 추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22년에도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됐으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기후변화에 따른 수많은 재난과 비상사태 등 곳곳에서 심각한 위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행복 보고서는 전 세계 삶의 만족도 평균이 팬데믹 이전과 비슷해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지만 전반적으로 행복지수가 약간 떨어졌는데, 갤럽 여론 조사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기록 발표가 시작된 이후 평균 행복지수가 0.08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10년간 동유럽(0.4점)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0.2점) 지역에서는 행복지수가 오히려 올랐지만 서유럽(-0.8점)과 북미(-0.4점)에서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세계 각 나라의 ‘행복지수’(2021년 자료임)
<타인과의 비교는 ‘행복을 빼앗아 가는 도둑’>
한편 해당 보고서에서는 통상적인 행복지수를 측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를 ‘행복 격차(happiness gap)’라고 지적하는데, 통계를 분석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과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가 큰 국가는 행복지수 순위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가장 행복한 국가’는 국민 간에 불평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행복 평등(happiness equality)’은 소득이나 GDP에 전적으로 달려 있지 않지만 행복 격차와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에서 사람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는데, 이는 결국 자기가 가진 것을 다른 이와 비교하는 것이 ‘기쁨을 빼앗아 가는 도둑(thief of joy)’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보고서와 관련된 대학교수는, 올해 나타난 가장 흥미로운 점이 ‘관용(generosity)’의 증가 추세라면서, 2년째 우리는 낯선 사람 돕기, 자선 단체 기부, 자원봉사 등 다양한 형태의 일상적 관용 베풀기가 팬데믹 이전보다 활발해진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 NZ와 호주의 도시별 ‘행복 비용’ 금액과 순위(단위: NZ$)
<뉴질랜드의 ‘행복 비용’은 연간 19만 3,800달러 >
한편 이달 초에는 뉴질랜드에서 행복하려면 연간 소득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색적인 해외의 조사 결과가 보도돼 시선을 끌었다.
지난 2018년 호주 퍼듀(Purdue)대학 연구진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오래된 격언을 학문적 가설로 전환해 연구한 뒤 ‘진정 행복해지려면 사는 지역에 따라 일정한 수준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164개 나라에서 170만 명의 표본을 사용해 ‘행복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최대 소득(maximum income after which happiness no longer improves)’을 조사했다.
최근 환전회사인 ‘에스 머니(S Money)’는 당시 퍼듀대학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IMF의 국가별 구매력 비율과 현지 생활비, 환율을 감안하고 이를 미국 달러로 계산해 이른바 ‘행복 비용(cost of happiness)’의 각 나라 순위와 함께 518개에 달하는 세계 도시별로 각 도시의 ‘평균 행복 비용(average cost of happiness)’을 산출해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연간 평균 19만 3,700달러(114,600US$, 이하 뉴질랜드 달러)의 소득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는 전 세계 국가 중 행복 비용이 7번째로 비싼 나라로 확인됐다.
이는 통계국이 발표한 지난해 뉴질랜드의 평균 가계 소득이 그보다 훨씬 적은 약 11만 7,126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사람에게 행복은 여전히 머나먼 꿈이라는 현실을 숫자로 확실하게 보여준 셈이다.
또한 뉴질랜드에서는 4개 도시가 목록에 올랐는데 그중 오클랜드가 연간 행복 비용이 20만 7,000달러가 넘으면서 전 세계에서 20번째로 비싼 도시가 됐고, 웰링턴 역시 20만 7,000달러로 22위가 됐으며 해밀턴이 18만 2,000 달러로 67위, 그리고 크라이스트처치는 행복 비용이 연간 18만 달러로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순위는 72위였다.
▲ ‘평균 행복 비용’ 상위 10개국(단위: US$)
<행복 비용 세계 10위 안에 든 브리즈번과 시드니 >
호주에서는 평균 행복 비용이 뉴질랜드보다 1만 2,000달러 이상 많은 20만 5,800달러나 돼 세계에서 3번째로 비싼 나라로 나타났다. 특히 22만 4,000달러의 브리즈번과 22만 2,000달러의 시드니는 모두 행복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전 세계 상위 9위와 10위 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22만 1,000달러의 캔버라와 애들레이드가 나란히 11위와 13위가 됐으며 21만 9,000달러의 퍼스가 14위, 그리고 멜버른은 21만 2,000달러로 17위가 되면서 행복 비용 상위 20위 안에 호주에서 6개나 되는 도시가 이름을 올렸다.
한편 세계에서 행복 비용이 가장 비싼 나라는 이란으로 23만 9,700US$나 됐는데 하지만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이란의 평균 가계 소득은 도시는 3,340US$, 농촌은 1,970US$에 불과했다.
인구 9명 중 한 명은 하루 5.5US$ 미만으로 사는 등 인구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이며, 올해 2월 기준 인플레이션은 47.7%로 일반 생활용품 가격도 수십 배 올라 국민 삶이 황폐화한지 오래다.
이처럼 소득과 비교해 행복 비용이 어마어마한 격차를 보인 나라 중에는 17만 2,140US$로 세계 2위인 예멘이 포함됐고, 11만 8,342US$인 짐바브웨도 세계 4위로 이름을 올리면서 이들 나라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엄청난 비용을 국민들이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부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은 연간 행복 비용이 1만 4,711US$로 전 세계에서 행복 비용이 가장 저렴한 국가로 나타났으며 남미의 수리남(1만 7,424US$), 그리고 인도양의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1만 9,293US$)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보통 행복 비용은 농촌 지역보다 도시에서 더 많이 들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도시도 있는데, 남미 콜롬비아의 안데스산맥에 자리 잡은 부카라망가(Bucaramanga)는 인구가 58만 명이 되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지만 행복 비용이 연간 1만 6,900US$로 상당히 적어 세계에서 행복 비용이 가장 적은 도시로 선정됐다.
한편 한국은 행복 비용이 6만 3,966US$였으며 일본은 이보다 높은 7만 3,994US$로 나타났고 중국은 6만 2,461US$, 그리고 싱가포르가 7만 5,320US$를 나타낸 가운데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는 3만 5,000~3만 8,000US$ 정도의 행복 비용을 보여줬다.
▲ ‘10만 US$ 이상 및 이하’로 구분된 세계 도시별 행복 비용
<돈으로 행복은 못 사도 휴가는 살 수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와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 무한정 증가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래된 학문적 논쟁이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에서 출간한 ‘If Money Doesn’t Make You Happy Then You Probably Aren’t Spending It Right(돈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돈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돈과 행복 사이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휴가(vacations)’는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투자로 확인됐는데, 위의 논문을 발표한 하버드대의 다니엘 T. 길버트(Daniel T. Gilbert) 교수는, 여행을 떠나는 데 대한 기대감이 실제 휴가를 통해 얻는 행복보다 더 큰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는 1997년에 나온 여행 관련 연구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여행하는 때보다 떠나기 전 휴가를 더 긍정적 시각으로 보았다면서, 이는 ‘때로는 실제 상황과 부딪히기 전에 갖는 기대감이 돈을 직접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휴가를 예약하면 여행자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고 또한 여기에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도 더해지는데, 이에 따라 한두 개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저축하는 것보다는 평생에 걸쳐 소소한 여행을 하는 게 더 행복을 누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길버트 교수는 2006년에 ‘행복에 걸려 넘어진(Stumbling on Happiness)’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고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심리학의 고전 중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