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후면 앞으로
3년 동안 뉴질랜드를 이끌 정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지난 6년 동안 집권한 노동당의 지지도가 하향 추세를 보이며 국민당에 뒤지고 있고 지난 총선에서 한 명의 의원도 당선되지 않았던 뉴질랜드제일당이 여론조사에서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준선인 5%의 지지도에 근접하면서 복귀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소중한 투표 행사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들을 정리했다.
채소 및 과일의 부가가치세 제거
노동당의 대표적인 공약 가운데 하나가 채소와 과일 가격에서 부가가치세(GST)를 빼는 것이다.
감세와 부유세, 양도소득세 등을 배제한 노동당은 최대 관심사인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10포인트’ 계획의 일환으로 재집권하게 되면 내년 4월부터 신선 및 냉동 채소와 과일에 15%의 GST를 제거할 것이라고 지난 8월 밝혔다.
이 계획이 시행되면 가구당 평균 주간 소비액 32.50달러를 기준으로 4.25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추산이다.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총리는 “식품비는 7월 기준 연간 10% 정도 올랐고 채소 및 과일 가격은 특히 변동이 심해 사람들이 더욱 싸고 덜 건강한 대체품을 선택한다”며 “식품비를 포함한 인플레이션은 하향 추세이지만 음식은 가정에서 생활비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는 좋은 정책이다”고 설명했다.
4년에 걸쳐 20억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는 이 정책은 일견 채소 및 과일의 소비자 가격을 낮춰 인기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학자들과 세금 전문가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고 노동당내에서도 시행하기 어렵고 저소득층을 돕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이견이 있었다.
이에 대해 힙킨스 총리는 전자 거래가 이뤄지는 현재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일은 간단하고, 호주와 같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채소 및 과일에 GST를 빼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에서 특정 품목에 대해 GST를 별도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해 뉴질랜드는 이와 관련해서 문외한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 변화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식품비를 걱정하지 않는 이들이다”며 “이 정책은 계산대에서 1달러를 중요하게 여기는 뉴질랜드인들을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신설된 식료품 위원회가 슈퍼마켓의 가격 책정을 감시하여 채소 및 과일의 GST 제거 효과가 소비자에 전달되도록 할 것이며 GST를 제거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힙킨스 총리는 “저소득 뉴질랜드인들이 생활비 가운데 신선 채소 및 과일에 지출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다”며 “감세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뉴질랜드인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당은 노동당의 새로운 GST 감면의 유일한 승자는 슈퍼마켓들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당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대표는 “비용을 절감하는 층은 국민들이 아니라 소매업자들이다”며 “우리는 중간업자를 줄이고 사람들의 은행 계좌에 직접 세금 혜택을 주는 방식이 낫다고 믿는다”고 반박했다.
노동당은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내년 4월부터 ‘워킹 포 패밀리’(Working for Families)를 주당 25달러 인상해 16만 가정에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은 또한 30세 미만의 사람들에게 무료 치과 진료에 대한 단계적 접근을 시작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당의 외국인 주택 구입세
국민당이 내세운 공약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뉴질랜드의 고가 주택을 구입하는 외국인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국민당은 이를 통해 연간 7억4,000만달러의 세수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2억1,000만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민당은 지난 2018년 10월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뉴질랜드 주택의 외국인 구매 금지를 변경하여 200만달러 이하의 주택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200만달러 초과의 주택에 대해서는 15%의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국민당의 이 공약은 우선 국제조세협약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오클랜드 대학의 크레그 엘리페(Craig Elliffe) 교수는 “국민당의 외국인 주택 구입세 제안은 상대국들의 이중과세협약을 종료하거나 협정의 여러 부분을 무효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 구매 부동산 수 (자료: 뉴질랜드 통계청)
또 다른 문제는 이 세금의 추산액이 국민당과 전문가들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정보회사 코어로직(CoreLogic)의 닉 구달(Nick Goodall)과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레델(Michael Reddell), 샘 워버튼(Sam Warburton) 등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당이 제안한 세금은 연간 2억1,000만달러로 국민당의 예상치인 7억4,000만달러와 비교하여 5억3,000만달러의 커다란 차이를 나타냈다.
보고서는 추산치를 높게 잡아도 연간 2억9,000만달러의 세수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당은 공약한 감세를 메꾸기 위해 연간 5억9,400만달러의 세수를 찾아야 하고, 외국인 부동산 구입세가 대안이었지만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국민당의 추산치보다 휠씬 작다면 정부기관들의 예산 삭감이 이뤄져야 한다.
보고서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링에서 200만달러 이상 주택의 외국인 구매를 연간 520건으로 분석하여 국민당의 추산치인 1,700건에 비해 크게 낮았다.
매매당 평균 가격도 270만달러로 국민당의 290만달러보다 낮게 분석했다.
이 모델링에서 국민당이 추산하는 세수를 확보하려면 1,900명의 외국인 구매자들이 평균 220만달러의 주택을 구매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국민당의 니콜라 윌리스(Nicola Willis) 재무 대변인은 “우리의 추산치는 카스탈리아(Castalia) 경제 조언팀의 분석에서 나왔고 외국인 부동산 구입 금지가 시행되기 이전 매매 수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보수적인 접근이다”고 맞받았다.
국민당은 집권하게 되면 2024년 4월 1일부터 중산층의 세후 지급액을 증가하는 백 포켓 부스트(Back Pocket Boost) 정책을 통해 소득세 기준을 조정하고 ‘워킹 포 패밀리’를 인상하는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국민당은 또한 실업수당 제도에 신호등 체제를 도입해 구직 활동을 이행하지 않는 수급자들에 벌칙을 부과하고 현행 12개월인 실업수당 재신청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 대 크리스
이번 총선은 양대 정당 대표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 대 크리스 대결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달 23일부터 26일 사이에 1,002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1뉴스 베리안(1News Verian)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당은 이전 조사보다 1%포인트 떨어진 36%로, 역시 1%포인트 내려 26%를 기록한 노동당을 앞섰다.
힙킨스 총리가 공식 취임한 지난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1,008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1뉴스 칸타(1News Kantar)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38%로, 37%를 기록한 국민당을 앞섰던 것에 비하면 8개월 사이에 양당의 지지도가 반전됐음을 보여준다.
당시 총리 선호도 조사에서 23%로 단번에 1위에 오른 힙킨스 총리는 이번 조사에서도 23%를 기록했으나 국민당 럭슨 대표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정당 지지도에서 국민당과 노동당에 이어 녹색당이 1%포인트 오른 13%를 기록했고 액트(Act)당이 12%를 나타냈다.
지난달 17일부터 23일 사이에 실시된 뉴스허브-레이드(Newshub-Reid) 여론조사 결과에 서도 국민당이 이전 조사보다 1.8%포인트 떨어진 39.1%로, 0.3%포인트 내려 26.5%를 기록한 노동당을 앞섰다.
녹색당이 1.9%포인트 오른 14.2%로 뒤를 이었고 액트당은 1.3%포인트 내린 8.8%를 기록했다.
피터스 대표, 킹메이커로 부활하나
1뉴스 베리안 여론조사에서 뉴질랜드제일당이 이전 조사보다 1%포인트 오른 6%를 차지하면서 의회 입성 기준인 5%를 한층 넘어섰다.
여론조사 결과를 의석으로 환산하면 국민당 45석, 노동당 33석, 녹색당 17석, 액트당 15석 등으로 국민당과 액트당의 우파와 노동당과 녹색당의 좌파 모두 과반수를 넘지 못해 8석의 뉴질랜드제일당에 의해 힘의 균형이 결정될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뉴질랜드제일당이 2.6%의 정당 득표율에 그쳐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고 몰락할 때만 해도 고령의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대표에 대한 정계 은퇴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 78세의 피터스 대표가 다시 한 번 킹메이커로 복귀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노동당과 뉴질랜드제일당의 연립정부를 구성한 경험이 있었던 노동당의 힙킨스 총리는 피터스 대표와 연립을 배제하면서 집권 가능성을 더욱 낮추고 있다.
반면에 럭슨 대표는 필요하다면 피터스 대표와 연립정부 구성에 대해 제안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액트당의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피터스 대표와 내각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단정적으로 배제한다고 언급했다.
국민당, 액트당, 뉴질랜드제일당의 3당 연립정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할 것으로 우려했다.
뉴스허브-레이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대 다수인 63%가 3당 우파 연립정부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답했고, 안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한 응답자는 26.4%에 불과했다.
한편 지난 2008년 국회에 진출한 5선의 한인 멜리사 리(Melissa Lee) 국민당 의원이 6선에 도전한다.
리 의원은 오클랜드 마운트 앨버트 지역구에 출마해 노동당의 헬렌 화이트(Helen White) 후보와 맞붙게 된다.
리 의원은 지난 8월 발표된 국민당 후보 중 당 서열 13위에 올라 지역구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확실시된다.
리 의원은 현재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를 대비한 예비 내각인 ‘그림자 내각’의 방송•미디어, 디지털경제•통신, 다민족 사회 등 3개 분야 대변인을 맡고 있어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들 3개 부처를 책임지는 장관으로 임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뉴질랜드의 선거제도는 혼합비례대표제(MMP)로 유권자들이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대해 각각 투표하며, 정당 득표율이 5%를 넘거나 지역구에서 1석 이상 승리한 정당은 자신들이 얻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게 된다.
임기 3년의 국회의원 수는 지역구 70명과 비례대표 50명 등 120명이지만 혼합비례대표제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다 보면 1∼2석 늘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