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신임 총리가 2023년 1월 25일(수) 선서식을 마치고 제41대 뉴질랜드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이보다 앞서 1월 19일(목)에 저신다 아던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으며 채 한 주가 안 돼 새로운 총리가 탄생했다.
신임 총리는 팬데믹 초기부터 ‘코비드19 대응부’ 장관을 역임해 국민들에게는 이미 낯이 익은 인물이다.
이번 호에서는 아던 전 총리의 집권 당시 상황과 재직 중 활동, 그리고 사임 발표까지의 과정을 소개하는 한편 힙킨스 총리와 카멜 세풀로니(Carmel Sepuloni) 부총리의 선임 과정과 개인적 소개와 더불어 뉴질랜드 정가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 선서식 후 신디 키로 총독(중앙)과 함께 한 신임 총리(우)와 부총리
<연료 탱크가 비었다는 아던 전 총리>
설날을 며칠 앞둔 지난 1월 19일(목) 오전에 열린 ‘노동당 의원 총회(Labour party’s caucus meeting)’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전격적인 사임 의사를 발표했다.
아던 총리는, 사임 이유는 ‘간단하다(simple)’면서 “자신에게는 더 이상 직무 수행 탱크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I know that I no longer have enough in the tank to do it justice)”라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표현했다.
또한 “자신도 인간이며 정치인도 인간이다.(I am human, politicians are human)”라면서, 이제 올해 학교에 갈 딸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사직 발표 자리에 함께 있었던 파트너인 클락 게이퍼드(Clark Gayford)에게 이제 결혼하자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이는 아던 총리가 코비드19 팬데믹 기간을 포함해 그동안 5년 6개월 여에 걸쳐 당 대표와 총리직을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몇 차례 살해 위협을 포함해 과중한 업무로 인해 크게 시달렸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던 총리는 올해 10월 14일(토)로 예정된 총선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말해 정계를 완전히 떠나겠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아던 총리와 함께 그랜트 로버트슨(Grant Robertson) 부총리도 함께 사임했다.
이에 따라 노동당은 오는 10월 총선까지 약 10개월간 당을 이끌고 선거운동도 지휘해야 할 당 대표이자 총리를 새로 뽑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한편 이런 상황은 지난 2016년 12월에 당시 국민당 대표이자 총리로 대중적인 인기 속에 세 차례나 연임하며 국정을 이끌던 존 키(John Key) 전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직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에도 키 전 총리는 자신을 직업 정치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총리직을 사임하고 정계를 떠난다고 발표했었다.
당시에도 총선은 약 9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었으며 빌 잉글리시(Bill English) 부총리가 총리직을 인수해 당을 이끌었지만, 당시 혜성처럼 등장해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던 아던의 노동당과 총선에서 접전을 펼친 끝에 막판에 뉴질랜드 제일당과 연합에 성공한 노동당 연립정부에 9년 만에 정권을 넘겨준 바 있다.
▲ 고별 연설 중인 저신다 아던 전 총리
<혜성처럼 등장해 역대 최고 지지율 기록했던 아던>
1980년생인 아던 총리는 28세이던 지난 2008년 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이 된 뒤 세 차례 비례대표 의원으로 재임하던 중 37세였던 2017년에 오클랜드의 마운트 앨버트(Mt. Albert) 선거구 보궐선거를 통해 처음 지역구 의원이 됐다.
그후 총선을 겨우 7주 남겨둔 그해 8월에 노동당 역사상 가장 젊은 당 대표로 전격적으로 선출됐으며 10년 만에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을 처음으로 앞서는 등 뉴질랜드 정계에 그야말로 초대형 태풍을 불러온 끝에 종전보다 19석이나 의석을 늘린 46석을 획득하면서 선거에서 승리자가 됐다.
비록 56석을 얻은 국민당보다는 의석이 적었지만 당시 전통적 우당인 녹색당(8석)과 함께 9석으로 캐스팅 보트를 쥔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의 뉴질랜드 제일당과 지루했던 협상에 성공하면서 뉴질랜드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총리(취임 당시 37세 92일, 최연소는 1856년 37세 40일의 나이로 취임했던 에드워드 스태퍼드<Edward Stafford>)로 취임했다.
또한 당시에는 세계 최연소 정부 수반으로서 세계 언론을 통해 널리 소개되면서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총리 재임 중인 2018년 6월에 딸을 낳고 출산휴가를 다녀왔으며 3개월 된 딸을 안고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등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 됐다.
한편 아던 총리는 2019년 3월에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라는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우리 모두는 하나’라면서 국민 화합을 이끌었고 또한 과감한 총기 규제 법률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2020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비드 19 팬데믹 사태에서는 초기에 국경을 닫는 등 단호하고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감염 확산을 막아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그해 10월에 실시된 총선에서는 120석의 전체 국회의석 중 65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면서 1996년에 ‘혼합비례대표제(MMP)’가 도입된 이래 항상 연합정부를 구성해왔던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노동당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장기화로 경찰국가 논쟁까지 일어나는 가운데 작년 2월에는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그룹이 국회의사당 정원에서 23일에 걸쳐 장기간 격렬한 폭력 시위를 벌였다가 경찰에 의해 강제 진압되기도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지면서 국내외적으로 발생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의 삶이 고달파진 가운데 지금은 노동당과 아던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며 야당에 밀리는 모습이다.
작년 12월 초의 ‘1News Kantar Public Poll’을 보면 노동당은 종전 같은 조사보다 1%p 떨어진 33% 지지율을 기록해 1%p가 오히려 오른 38%의 국민당에 뒤쳐졌으며, 총리감 후보에서도 아던은 전보다 1%p가 내려가 총리 취임 전인 2017년 8월 이후 처음으로 30%선 아래인 29%를 기록했는데, 한창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60%에 달한 적도 있었다.
▲ 파트너, 딸과 함께 유엔 총회장에 앉은 아던 전 총리
<사흘 만에 선출된 신임 총리>
아던 총리의 전격적인 사임 발표는 즉각 언론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특히 외신들은 ‘자신은 인간이며 정치인도 인간이다’라는 발언과 함께 파트너에게 ‘이제 우리 결혼하자’고 던졌던 아던의 말을 가십성으로 전해 더욱 큰 화제가 됐다.
한편 노동당은 곧바로 1월 22일(일)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후임 당 대표와 총리 선임을 논의해 별다른 이견 없이 당시 경찰부와 교육부를 맡고 있던 크리스 힙킨스 장관을 단독 후보로 선임하고 이를 당일 언론에 발표했다.
이에 따라 힙킨스 신임 총리는 카멜 세풀로니 의원을 신임 부총리로 지명했으며 두 사람은 1월 25일(수) 오전에 웰링턴 총독 관저(Government House)에 도착해 각료들이 배석한 가운데 신디 키로(Dame Cindy Kiro) 총독 앞에서 선서식을 가졌다.
제41대 총리로서의 공식 업무를 이날부터 시작한 힙킨스 총리는 당일 오후 3시 30분에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그는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정부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일부 정책 및 집행을 재평가하고 정부 지출을 평상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다음 주에는 새로 구성될 내각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말했으며 취임 이튿날에는 오클랜드에서 경제계 인사들과 만났다.
▲ 선서식에서 대화하는 총독과 신임 총리 및 부총리
<새 총리 “대학 때 시위로 구금 경력도…”>
본명이 ‘크리스토퍼 존 힙킨스(Christopher John Hipkins)’이며 현재 44세(1978년생)인 신임 총리는 북섬 남부 헛 밸리(Hutt Valley)에서 태어나 ‘워털루(Waterloo) 프라이머리’와 ‘헛 인터미디어트 스쿨’을 졸업했으며, 이후 ‘헛 밸리 메모리얼 컬리지(나중에 Petone College로 바뀜)’를 거쳐 웰링턴의 빅토리아대학에서 ‘정치학과 범죄학(politics and criminology)’을 전공했다.
1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300여 명의 학생이 국회로 행진해 당시 대학과 학생을 기업으로 보려 한다면서 ‘Tertiary Review Green Bill’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그를 포함한 일부가 경찰에 체포돼 알몸 수색까지 당했다.
이 사건은 이후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12년이 지난 2009년에서야 법원에서, 당시 학생들이 평화적 시위를 벌였음에도 경찰이 과잉 진압했다는 결론과 함께 41명에게 20만 달러 이상을 보상하도록 판결이 내려졌다.
보상금은 대부분 변호사 비용으로 쓰였고 나머지는 국제사면위원와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됐는데,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으며 그는 이후 2000년과 2001년 ‘학생회장(president of the student association)’을 역임했다.
대학 졸업 후 ‘산업훈련협회(Industry Training Federation)’와 ‘토드 에너지(Todd Energy)’에서 근무하다가 트레버 맬러드(Trevor Colin Mallard) 전 국회의장과 헬렌 클락 전 총리 사무실 등 국회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웰링턴 북쪽의 ‘리뮤타카(Rimutaka, 2020년에 Remutaka로 개명)’ 지역구에서 노동당 후보로 나서 처음 당선되면서 29세의 젊은 정치인으로 등장했다.
이후 2020년 총선까지 같은 지역구에서 4차례 연속 당선되면서 5선 의원이 됐는데, 특히 2020년 총선에서는 68.5%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받아 노동당에서는 아던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격차로 차점자를 이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첫 등원 당시 야당이었던 노동당에서 주로 교육 분야에서 일한 그는 지난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교육부와 함께 원내 대표직 등을 수행했다.
특히 2020년 3월부터 코비드19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해 7월 데이비드 클락(David Clark) 보건부 장관이 봉쇄 지침 위반 논란 끝에 사임한 뒤 후임 임시 보건부 장관이 됐으며, 이후에는 정식으로 ‘코비드19 대응부(COVID-19 response)’를 맡아 자주 언론 브리핑에 등장해 애슐리 브룸필드(Ashley Bloomfield) 보건국장과 함께 국민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됐다.
공공서비스부(Public Service) 장관이기도 했던 그는 2명의 자녀를 두었고 부인인 제이드(Jade)와는 지난 2020년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현재는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18년 결혼식의 카멜 세풀로니 부총리(당시 국회의원) 커플
<통가계 첫 국회의원이었던 세풀로니, 태평양계 첫 부총리로>
카멜 진 세풀로니(Carmel Jean Sepuloni) 부총리는 1977년 타라나키 지방의 와이타라(Waitara)에서 통가 출신으로서 지난 1964년에 사모아에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던 부친과 지역 농촌 출신의 유럽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뉴플리머스(New Plymouth) 걸스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오클랜드 교육대학과 오클랜드대학 및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정계 입문 전에는 사모아에서 1년간 교사로 있는 등 주로 교육 분야와 태평양계 보건 프로젝트 관리자 등으로 일했다.
지난 2008년에 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되면서 통가계 후손으로서는 첫 번째 국회의원이 됐는데, 2011년 총선에서는 오클랜드 와이타케레(Waitakere) 지역구에서 현직이었던 폴라 베넷(Paula Bennett) 국민당 의원에게 11표 차이로 앞섰다가 재검표 결과 9표 차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후 2014년부터는 오클랜드의 켈스턴(Kelston) 지역구에서 지금까지 3차례 연속 당선됐으며, 노동당 집권 후인 201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 장관을 맡았고 2020년 7월부터는 ACC 장관도 겸직했다.
이번에 힙킨스 총리에 의해 부총리로 발탁되면서 태평양 제도 출신으로서는 첫 번째 부총리이자 또한 여성으로는 3번째 부총리가 됐는데, 힙킨스는 자신이 총리로 지명될 당시 가장 먼저 세풀로니를 부총리로 떠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에 피지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음악가인 대런 카말리(Daren Kamali)와 피지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현재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