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규제가 서서히 풀리면서 그 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이민이 다시 정치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닫혔던 국경이 점차 열리면서 지금까지 해외로 나갈 수 없었던 많은 키위들의 탈(脫) 뉴질랜드 우려도 나온다. 이민정책은 노동당 정부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계획에서 핵심적인 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경 개방 후 이민 ‘리밸런스’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추진되고 있는 이민정책은 이민자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계에 충격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민 ‘리밸런스’로 개명된 새로운 이민정책
노동당 정부는 작년 5월 국경을 다시 전면 개방하면 기존 이민 정책을 지속할 수 없다며 부유한 투자자와 높은 기술 이민자를 타겟으로 하고 저임금 이민자에 의한 경제 의존도를 감소하는 방향으로 이민 정책을 재설정할 계획이라는 이민 ‘리셋’을 발표했다.
이제 국경을 단계적으로 개방할 계획인 정부는 이민 ‘리셋’을 이민 ‘리밸런스’로 개명하면서 이민자를 더욱 통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데이 스타 타임즈 지가 최근 정부의 관련 서류를 단독 입수하여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새로운 이민 ‘리밸런스’ 정책의 방향을 보여 준다.
정부가 계획하는 이민 리밸런스는 이민자들이 직업을 찾기 어렵게 하고 이민자 수를 건축허가 수와 연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택된 산업에서 협정에 따라 인증된 고용주들이 임시 저임금 노동자들을 해외에서 데려올 수 있도록 허용한다.
선택되지 않은 산업계는 학생비자나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에서 임시 직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높은 기술의 고임금 이민자를 고용하려는 산업 부문은 쉽게 필요 인력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질랜드로 이주하는 기술 이민자는 배우자와 가족 구성원을 데려오기 어렵게 된다.
이는 배우자들이 별도의 기술과 노동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민 리밸런스의 중요한 변화는 이민자와 그 가족이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군을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산업과 사업체, 지역들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낮은 기술의 저임금 이주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관광업, 소매업, 접대업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접대업과 요양시설 업계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워크비자 규정이 엄격해 필요한 해외 인력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퀸스타운처럼 작은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관광업이나 1차산업 관련 사업체들도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 리밸런스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뉴질랜드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샤무빌 이큅(Shamubeel Eaqub)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고급 인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체들에 계속 이민자들로 채운다면 국내 고급 인력 양성 과정은 필요치 않게 될 것”이라며 “낮은 기술 이민자들을 막고 고숙련, 고임금 이민자들의 고용을 쉽게 해주는 것은 오히려 국내 기술인력의 양성을 꺾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자 수를 건축허가 수와 연동 가능성
워크비자 발급 수는 영주권 자리와 연계하고 영주권 수는 경제의 흡수력 지표와 연동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축허가 건수와 인프라 부족 등의 장기 추세가 그 같은 연동을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이민정책에서도 점수제에 의한 기술이민제도가 계속되지만 영주권 신청조건이 강화되고 높은 점수의 영주권 신청이 우선적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또한 뉴질랜드 대학들보다 높은 대학 순위의 유럽 및 북미 대학을 졸업한 신청자에 우선권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선데이 스타 타임즈 지는 이처럼 알려진 노동당 정부의 이민 리밸런스 정책이 야당은 물론 여당 계열인 녹색당으로부터도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당의 에리카 스탠포드(Erica Stanford) 이민 담당 대변인은 “새로운 이민정책은 정부가 임의로 이민자를 고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녹색당의 리카르도 메넨데즈 마치(Ricardo Menendez March) 이민 담당 대변인은 정부가 계획하는 이민정책은 회사들이 주도하는 인구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과 회사에 이민 할당을 주는 것은 실제적으로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사기업에 양도하는 행위”라며 “인구정책에 대한 어떠한 변화는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는 이민정책이 인구정책이라는 꼬리표를 달 것을 두려워해 이민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큅 이코노미스트도 이민 목표치 부재를 제안된 이민 리밸런스의 큰 단점으로 봤다.
그는 “이민 리밸런스의 많은 요소들이 이민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보여지지만 낮은 인구 성장률에 직면하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이민 목표치는 낮은 인구 성장률을 보충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 착취 우려
이민자에 대한 착취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메넨데즈 마치 대변인은 이민 리밸런스 정책에서 고용주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이민자와 고용주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생기고 이민자가 직장이나 직업을 바꾸는 일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큅 이코노미스트도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새로운 제도에서 다른 직업을 가질 자유가 없기 때문에 고용주의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안된 이민 리밸런스가 실질적인 이민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팬데믹 전에는 뉴질랜드 사업체들이 다양한 부문의 이민자들을 접촉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이민정책에서는 이민자를 구할 수 있는 사업체와 직종이 정부에 의해 관리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이민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산업이 있는 한편 그렇지 못한 산업도 생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큅 이코노미스트는 “내가 접촉한 산업계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민부의 기술 리스트가 정확하지 않고 오래된 것으로 불평했다”며 “중앙 계획적 이민정책은 그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포드 대변인은 “세계적으로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시기에 뉴질랜드 정부의 이민정책은 더욱 규제적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싱크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NZ Initiative)의 에릭 크램튼(Eric Crampton)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민 리밸런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존재하지 않은 문제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차와 중고차가 이민자들이 모두 구입해서 바닥나지 않듯이 주택과 인프라 문제는 이민에 있지 않고 관련 자금이 극히 제한돼 있고 지방정부는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민자 수를 주택허가 수와 연동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지방정부들이 주택 건설을 위한 택지를 적게 공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큅도 지난 2년 동안 인구 성장이 매우 낮았는데도 주택허가 건수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주택 건축과 이민을 연동시키려는 정부의 계획에 의문을 표명했다.
그는 인구 성장이 높든 낮든 간에 건축된 주택들은 팔려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당은 이민자들이 절대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할 열쇠가 될 것이라며 노동당보다 많은 이민 목표치를 제시했다.
국민당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대표는 순이민은 연간 5만명 또는 총인구의 1%는 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경 개방 후 순이민 역조 예상
코로나19로 닫혔던 국경이 개방되면 뉴질랜드는 다시 두뇌 유출을 겪고 많은 젊은 기술 인력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두뇌 유출은 지난 50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거의 항상 일어났던 현상이다.
팬더믹으로 그러한 추세는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역전됐다.
팬더믹 이후 1만6,000여명의 해외 거주 키위들이 뉴질랜드로 귀환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키위들의 15%는 이미 국경이 다시 열리면 뉴질랜드를 떠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위뱅크는 올해 이민 순유출이 2만명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키위뱅크 재로드 커(Jarod Ker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문제는 해외로의 인력 유출을 채워줄 충분한 수의 이민 근로자 유입이 없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기업혁신고용부(MBIE)가 지난 2월 크리스 파아포이(Kris Faafoi) 이민 장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경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1년 동안 일자리를 찾거나 해외 경험을 쌓기 위해 출국하는 뉴질랜드인들이 5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년 동안 많으면 12만5,000명까지 출국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보다는 적은 5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기업혁신고용부는 보고서에서 그 동안 외국으로 나가지 못했던 해외 이주자들이 한꺼번에 출국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코로나19로 해외에 발이 묶이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수요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임금이 높은 호주 등 다른 나라들이 뉴질랜드 근로자들을 다시 찾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뉴질랜드의 튼튼한 노동 시장이 사람들을 잡아두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보고서는 해외 이주 위험의 상한선은 전체 인구의 2.5% 선이라며 이는 1년 동안에 걸쳐 노동 연령 인구 10만 명 등 12만5,000여 명이 뉴질랜드를 떠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뉴질랜드 시민이 해외로 이주함으로써 나타나는 노동력 손실의 직접적인 위험은 상당히 크지만 다른 통로의 노동력 공급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액트(Act)당의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뉴질랜드의 높은 생계비와 임금 격차 때문에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임대료와 주택담보 대출 금리, 식품비 등이 모두 오르고 있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고 있다”며 “노동당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국회 발언에서 많은 뉴질랜드인이 어느 해에나 나라를 떠나고 돌아오는 일은 늘 있었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입국 이주자에서 출국 이주자를 뺀 순이민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파아포이 장관도 뉴질랜드인들은 늘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며 국경 개방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뉴질랜드는 여전히 해외 이주자들이 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곳이라며 새로운 비자 처리로 최소한 중간 임금을 받는 기술 이민자들은 이주가 더 쉬워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