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뉴질랜드의 빈곤에 관한 부끄러운 민낯

복지국가 뉴질랜드의 빈곤에 관한 부끄러운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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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복지 선진국에서 국민은 적어도 먹고 주거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야 하지만 뉴질랜드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선단체에서 나눠주는 음식 꾸러미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텐트나 자동차에서 지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한번 빈곤의 그물에 갇히면 빠져 나오기 어려운 사회 구조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심각해진 뉴질랜드의 빈곤 문제에 대해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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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정부에서 더욱 늘어난 홈리스 


지난 2017년 노동당이 집권한 이후 비싼 집값과 렌트비 때문에 자동차나 텐트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1뉴스 보도에 따르면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아동 수가 2017년말 51명에서 지난 6월말 228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사회개발부가 도움을 신청하는 사람들로부터 수집하는 주거 장소나 부양 아동 등의 자료로부터 나온 것으로 실제로는 그보다 휠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텐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수는 2017년말 21명에서 지난 6월 84명으로 늘었다.


집권하기 전인 지난 2017년 8월 뉴질랜드는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텐트나 자동차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난 사실과 관련, “1만 채의 공영주택을 건설하고 임시주택을 4배나 늘린 상황에서 아직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가족이나 개인이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이어 “2017년 당시에는 그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며 “이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자료를 더욱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민당의 크리스토퍼 럭슨(Christopher Luxon) 대표는 “노동당 정부는 아동 복지에 실패했다”며 “변명을 중지하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한번 빠지면 빠져 나오기 힘든 가난의 굴레


뉴질랜드는 지난 1991년 최대 27%에 이르는 대폭적인 복지 혜택 감축을 단행했다.


그 이후 빈곤 문제는 악화 일로이다.


복지 전문가 자문 그룹(WEAG)이 지난 2019년 2월 사회개발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 복지제도에서 인간의 자존감과 존경심은 사라졌고 긴급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1명의 복지 전문가들로 구성된 WEAG가 3,000여 명의 복지 수당 수급자, 사회 복지사, 사회개발부 공무원 등과 직접 만나 작성한 216쪽의 광범위한 이 보고서에서 “뉴질랜드의 현행 복지제도는 신뢰를 떨어뜨리고 분노를 일으키며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복지제도는 가난의 덫과 관리할 수 없는 복잡성을 만들고 복지 수당 수급자와 저임금 직업 사람들의 소득은 사회에 대한 참여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비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만이 적절한 상담을 받아 직업을 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지수당을 끊기면서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다가 다시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WEAG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굶는 어머니들과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한 복지수당 때문에 현금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윤락업에 종사하는 여성, 그리고 재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파트너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장애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적당한 주택에 기본적인 영양 섭취, 적절한 의료 치료,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는 비용은 복지수당보다 12~47%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한 격차를 해소할 52억달러의 자금이 긴급히 투여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보고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삶을 살고 있고 복지제도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WEAG의 멤버인 필 오레일리(Phil O’Reilly) 전(前) ‘비즈니스 뉴질랜드’ 회장은 “복지제도의 실상을 보고 뉴질랜드인으로서 자랑스럽지 않았다”며 “현재의 복지제도는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복지수당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멤버인 수잔 세인트 존(Susan St John) 이코노미스트는 복지제도가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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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소득 50% 이하 가정 아동 비율 (자료: 통계청)


복지수당만으로는 생활비 턱없이 부족 


당시 보고서의 42개 주요 추천 사항들과 120개 세부 추천 사항들 가운데 즉각 시행된 것은 263명의 사회개발부 일선 인력 충원 등 3개에 불과했다.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실업수당, 편부모수당, 생활비 지원 등 주요 수당들은 보고서가 추천한 2018년의 명목 생활비 수준에 있다.


수당을 받는 사람이 일해서 버는 금액만큼 수당을 환수하는 제도도 지난해 폐지됐다.


편부모수당을 받는 편부모들이 그들의 막내가 한 살이 되면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제재도 없어졌다.


하지만 ‘아동 빈곤 활동 그룹’이 작년 말 세부적인 평가 결과 WEAG 보고서의 42개 주요 추천 사항들 중 아무 것도 완전히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밝혔다.


‘아동 빈곤 활동 그룹’의 인네스 애셔(Innes Asher) 명예교수는 “정부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15만명의 아동을 포함한 극빈 가정의 소득을 높여줄 정책을 적절히 변경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사람들을 복지정책으로 잘 보호해 줄 것을 주문했지만 정부는 소득보험제도를 추진하면서 비난을 사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보험제도는 근로자와 회사가 각각 급여의 일정액을 부담금으로 납부하고 근로자가 실직했을 때 급여의 최대 80%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측은 특히 경제 충격시 실직한 근로자들이 복지제도에만 의존하는 것을 막는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있지만 야당인 국민당은 고물가 시대에 수입을 감소시키는 새로운 세금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빅토리아대학 정치연구소는 ACC가 관장하게 될 강제적인 소득보험제도는 현행 사회복지제도의 중산층 이용을 감소시킴으로써 복지제도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단체의 연합체인 ‘더욱 공정한 미래’(Fairer Futures)의 분석에 따르면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복지수당 수급 가정 13곳 가운데 9곳은 매년 수 천 달러의 생활비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이 있고 일반 렌트로 사는 가정의 연간 부족액은 1만6,000달러이고 1인 가구의 경우 7,600달러, 장기 장애가 있는 공영주택 거주 1인 가구는 3,365달러가 각각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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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랜드 시티 미션 음식 꾸러미 배급 현황 (자료: 오클랜드 시티 미션)


팬데믹 이후 악화된 빈곤 문제 


코로나19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복지 혜택을 받는 가정에 살고 있는 아동 수는 2020년 한해 2만3,000명 이상 늘었다.


2020년말에 발표된 아동 빈곤 모니터 자료에 따르면 뉴질랜드 아동 5명 가운데 1명, 즉 23만5,400명은 중간소득의 50% 이하를 버는 빈곤 가정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세군은 2020년에 2019년보다 두 배 많은 11만개의 음식 꾸러미를 전달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WEAG의 멤버였던 사회운동가 케이 베레튼(Kay Bereton)은 “지금 보고서를 작성하면 3년 전과 다른 내용이 될 것”이라며 “현재의 빈곤은 당시의 빈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고 전했다.


오클랜드 시티 미션의 헬렌 로빈슨(Helen Robinson)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무료 음식 꾸러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특히 아이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들이 많다”고 전했다.


노동당 정부는 수 십 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복지수당을 인상했다고 강조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무료 음식 배급은 300% 급증했고 사회개발부의 하드쉽(Hardship) 승인 건수는 224% 증가했다.


더욱 많은 공영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대기자 수는 2만7,000명을 넘고 올해 주거보조 및 비상주택에 들어가는 비용이 2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개발부 카멜 세푸로니(Carmel Sepuloni) 장관은 노동당 집권 이후 민원인들에게 존경심을 갖고 업무를 처리하게 하는 등 ‘문화 변화’를 추진했다고 밝혔지만 방문객을 위한 기본적인 화장실 시설조차 없는 ‘워크 앤 인컴’ 사무실이 많은 실정이다.


‘키드캔’(KidsCan)의 창립자 줄리 채프먼(Julie Chapman)은 “정부는 아동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18년전 설립된 이 자선 단체는 요즘 877개 학교와 156개 유아교육시설의 4만4,000여명의 아동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신발과 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채프먼은 “요즘처럼 많은 수요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다. 지난 2~3년간 사정이 극도로 나빠졌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정부의 태도가 진정으로 변화했다면 WEAG의 추천사항들을 휠씬 많이 시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가난하고 수당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이 있고 복지 혜택을 크게 증가시키는 것이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맞지 않는 사항이기 때문에 빈곤에 대한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예산 서비스’의 데이브 마라(Dave Marra) 매니저는 실업률이 3.3%의 낮은 수준이라고 발표됐지만 복잡한 복지제도로 야기된 숨겨진 실업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마라 매니저가 알고 있는 한 편부모는 ‘워크 앤 인컴’의 주선으로 간호보조 일을 했지만 근무시간이 띄엄띄엄 있고 중간에는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당보다 오히려 수입이 낮았다는 것이다.


수당 수급자가 인력알선업체를 통해 불안정한 직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통지없이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워크 앤 인컴’ 일선 직원들이 수당 수급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 실정이다.


마라 매니저는 “단지 19%만이 워크 앤 인컴을 통해 실제 도움이 되는 직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며 “사람에 대한 투자가 없고 직업에 대한 가교 역할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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