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 함께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특히 섬나라인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큰 위기를 부를 국가적 문제인데,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발생하는 해안 침식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해, 최근 나온 통계국 자료와 학술 자료, 그리고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이를 종합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 웨스트 코스트 마을 ‘그래니티’의 1950년대 항공 사진
BBC 프로에 등장한 웨스트 코스트 해안 마을
남섬 서해안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에 위치한 ‘그래니티(Granity)’는 인근의 작은 도시인 ‘웨스트포트(Westport)’에서도 국도 67호선을 따라 북동쪽으로 28km나 더 올라가는 외딴 마을이다.
현재 200명도 채 안 되는 인구가 그나마도 계속 주는 작은 마을이지만 1900년대 중반까지는 인근에서 채굴되는 양질의 석탄으로 주목받던 곳이다.
1892년부터 웨스트포트와 나카와우(Ngakawau) 구간에는 기차도 운행했지만 지금은 폐광이 되면서 역도 오래 전에 폐쇄됐으며 ‘그래니티 스쿨(Y1~Y8)’도 2022년 7월 기준으로 전교생이 27명에 불과하다.
지명은 인근에 ‘화강암(granite)’이 많은데서 유래했는데 이 마을이 최근 영국 BBC 방송이 뉴질랜드 연안을 배경으로 제작한 ‘BBC Earth’ 시리즈의 ‘Coast New Zealand’ 촬영지 중 한 곳이 되면서 주목받았으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해안 침식(coastal erosion)’ 문제 때문이었다.
해당 프로의 시즌 2 중 ‘남섬 서부 해안’ 편 영상에서는 해안 침식 문제가 특히 그래니티 스쿨을 중심으로 소개됐는데, 하지만 이 마을과 북쪽 인근 나카와우와 헥터(Hector) 등 3개 마을의 해안 침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의 문젯거리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인구가 적은 남섬 서해안 중에서도 인구가 희박한 작은 외딴 마을 문제라 몇 차례 언론에 등장했지만 계속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래니티 등 이곳 마을은 위 사진에서 보듯 바다 가까이까지 가파르게 내려오는 서던 알프스 산맥과 험악한 태즈먼 바다 사이에 띠처럼 좁은 해안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 그래니티 스쿨 전경
학교 수영장에 가득 찬 파도에 실려 온 돌덩어리
BBC 프로에서는 교장이 등장해 진행자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교장은 테니스장은 이미 바다가 삼켜버렸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려면 한때는 근사했던 수영장을 봐야 한다면서 진행자를 안내한다.
이미 폐쇄된 수영장에는 파도에 날아온 돌덩이들이 여기저기 널렸는데, 이 학교는 국내 학교 중 바다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학생들은 등교하면 교실에서 파도치는 모습을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다.
학교를 침식 피해로부터 막고자 중앙정부에서 3차례 걸쳐 20만 달러가 넘게 지원해 돌로 ‘호안 둑(stopbank)’을 만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침식은 파도와 조류, 그리고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데 깎여나간 해변 모래와 암석은 조류를 따라 북쪽으로 옮겨져 남섬 북단의 페어웰 스핏(Farewell Spit)과 같은 다른 해안에 도착하는데, 이 때문에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퇴적 현상으로 해변이 더 넓어지기도 한다.
해변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침식과 퇴적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래니티는 침식만 계속 이어져 이제는 마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다.
▲ 웨스트 코스트의 그래니티 마을 위치
해수면 상승으로 가속화하는 해안 침식
지난 2016년 ‘국립수대기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Water & Atmospheric Research, NIWA)’는 웨스트 코스트 시청 요청으로 그래니티를 포함해 위에 언급된 3개 마을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 연구소는 5km에 걸친 해변을 12개 구획으로 나눠 침식 정도와 앞으로 진행 상황, 그리고 이를 막을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에서는 처음 마을이 조성될 때부터 바다에 너무 가까이 붙은 데다가 침식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여기에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함께 이전보다 더 강력해지고 빈도도 높아진 폭풍우가 침식 형상을 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장기간에 걸쳐서 나카와우 및 헥터에서는 연간 평균 0.3~0.4m씩 해안선이 내륙으로 후퇴했으며 그래니티는 이보다 큰 0.6~0.8m씩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그래니티 스쿨의 해변에는 201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돌로 만든 길이 230m의 호안 둑이 있는데 부실공사뿐만 아니라 규모도 작아, 해변에서 불과 20m 떨어진 학교 건물을 결국은 재배치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NIWA 조사 전인 2012년에도 중앙정부 지원금 6만 달러로 둑을 쌓았지만 폭풍우는 이를 가볍게 넘어버렸고 돌 일부는 바다로 휩쓸려 사라졌는데, 당시의 조사 보고서에서도 호안 둑은 단기 대책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건물을 옮겨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또한 당시 보고서에서는 호안 둑은 인근의 다른 지역 해안에서 침식 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전년에 푸나카키(Punakaki) 해변에서 발생한 침식 사태를 예로 들었다.
또한 보고서는 특히 전 세계적 이슈인 해수면 상승이 계속되면서 앞으로도 이곳 해안 침식은 더욱 빠르고 또한 규모도 커지며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2020년부터 그래니티에서는 아래 사진처럼 해안에 돌 대신 육각형의 새로운 콘크리트 구조물을 퍼즐식으로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침식을 방지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 그래니티 해안에 구축 중인 육각형 콘크리트 구조물
해수면 상승은 이제 내 발등의 불
이처럼 그래니티가 고통받는 가운데 이제는 해안 침식과 더불어 해수면 상승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자기 발등의 불로 튄 지역과 동네가 전국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미 태풍과 폭풍우, 집중호우 등 극단적 기후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물난리를 겪는 지역이 넘쳐나면서, 방글라데시나 남태평양의 투발루(Tuvalu)와 같은 다른 나라만의 일이 아닌 뉴질랜드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일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이런 현상이 규모도 더 크고 더욱 자주 생기면서 앞으로도 상황은 더 악화할 거라는 암울한 예상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중순 통계국은 해수면 상승 관련 통계인 ‘연안 해수면 상승 지표(Data for the coastal sea-level rise indicator)’를 발표했는데, 이 자료는 NIWA와 ‘토지국(Land Information NZ)’에서 배경 자료를 제공한다.
이번에 나온 자료는 1890년대부터 측정 자료가 있는 오클랜드와 웰링턴, 그리고 크라이스트처치의 리틀턴과 더니든 등 모두 4개 지역 해수면 변화를 조사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뉴질랜드 주변의 해수면은 지난 20세기 전반부에 비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더욱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웰링턴에선 1891년, 오클랜드 및 더니든은 1899년부터 그리고 리틀턴은 1901년부터의 측정 자료가 남아있는데 한편 이들 4곳 외에도 국내에서는 마운트 마웅가누이의 모투리키(Moturiki)와 뉴플리머스에서 지난 1950년대부터 해수면 변화를 기록해왔다.
그 결과 1901년부터 1960년까지에 전반부 60년 동안에 비해 그 이후 1961년부터 2020년까지의 후반부 60년간 해수면은 더욱 빠르게 상승했는데, 4곳 중 오클랜드를 제외한 3곳에서는 상승 속도가 그 이전의 2배나 됐다.
특히 리틀턴은 지난 120년에 걸쳐 매년 2.24mm(오차는 0.09mm)로 4곳 중 장기간에 걸쳐 가장 빠른 상승을 보였으며, 반면에 웰링턴은 후반 60년 동안 가장 높은 상승치를 기록했다.
한편 해수면 측정에는 해당 지역 육지가 수직으로 움직인 정도도 측정 요소로 함께 적용되는데, 땅이 수직으로 움직이는 원인은 지각 및 화산 활동 같은 지질학적 과정에서 벌어지는 침강이나 융기뿐만 아니라 지반 침하를 유발하는 인간 활동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활발한 뉴질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이와 같은 수직적 이동이 해수면 상승에 주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큰데, 특히 웰링턴 해안 대부분은 지진의 영향으로 지반 침하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GNS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앞으로 100년까지 해수면 상승에 가장 취약한 곳은 북섬 남동부 와이라라파 해안이 되고 반면 땅이 융기하는 베이 오브 플렌티의 피코와이(Pikowai)는 오히려 해수면이 낮아질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보다도 지구 기후 변화이며, 이는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 대기를 뜨겁게 만들고 그 열이 바다로 흡수돼 바닷물이 팽창하고 여기에 빙하와 빙산 및 남극대륙의 얼음까지 더 많이 녹아 해수면이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 1901년부터 2020년 사이의 6개 지역의 해수면 상승(단위: mm)
100만 불 주택의 침수 담보 보험료가 연간 10만 불?
미국 USGCRP의 연구 자료를 보면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은 1880년 기록 시작 이후 약 21cm 상승했고 그중 7.5cm는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육지 얼음이 급속하게 녹기 시작한 1993년 이후 발생했다.
현재는 10년에 2.5cm씩 상승 중인데 NASA와 다른 연구기관들은 2050년까지는 25~30cm가 더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지반이 침하하는 뉴질랜드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같은 해수면 상승은 지역사회와 도로,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은 물론 해안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까지 골고루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 예측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도 주민이 많이 사는 하구를 비롯해 해안 습지 및 해안 주변은 해수면 상승에 따른 침식과 홍수로 거주는 물론 경작과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또한 기존의 빗물 배수 체계도 홍수와 넘치는 파도, 지하수 수위가 올라가면서 처리 용량이 부족해지며 나아가 지하 대수층은 바닷물 침투로 오염될 위험도 있다.
해안 저지대의 마라에(marae)를 포함해 유적과 문화시설도 위험에 처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주민의 정체성이나 산업과 경제, 문화 활동을 비롯한 사회 복지 등 인간의 삶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수면 상승을 감안해 올해 크라이스트처치 뱅크스 페닌슐라의 아카로아(Akaroa)에서는 134년 전 만들어진 부두를 다시 만들기로 하면서 크기와 모양은 기존과 같으면서도 높이는 60cm를 높여 설계했다.
한편 지난달 웰링턴에서는 계획 중인 경전철 노선이 해수면 상승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 이보다 앞선 8월에는 웰링턴의 페톤(Petone)에서는 100만 달러짜리 집이 현재 연간 1500달러 정도인 침수를 담보하는 보험료가 2, 3년마다 2배로 증가해 빠르면 20년 안에는 10만 달러까지 뛸 수 있다는 어이없는 전망까지도 나왔다.
실제로 한 보험사는 국내 주택 중 5%인 9만여 채는 집값의 1%에 상당하는, 또 다른 2%는 집값의 2% 이상인 연간 1만 달러가 넘는 침수 담보 보험료를 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는데, 2020년에 나온 한 연구에서는 한 발 더 나가 2050년까지 웰링턴과 더니든, 오클랜드와 더니든에서 최소한 1만 채가 아예 침수 피해 담보 보험에 가입도 못 한다는 예측도 나왔다.
현재 전국의 주택 중 약 45만 채가 해변에서 1km 이내에 있는데 이처럼 보험이 문제가 되는 건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빈발하는 홍수로 인한 침수 위험도 또 다른 이유이다.
▲ 오클랜드에서 2050년에 침수가 예상되는 지역(붉은색)
막을 수 없는 해수면 상승, 비용 부담 주체 놓고 논란
뉴질랜드인 7명 중 한 명꼴인 70여만 명은 홍수 위험 지역에 사는데,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는 앞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영향을 받을 관할 지역을 공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위험 관리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개발 자체를 불허하기도 한다.
위에 첨부된 지도는 지난 2020년에 ‘Climate Central’에서 발표한 것으로, 2050년에 오클랜드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기한 것인데, 당시에도 그 이전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침수 예상 지역이 더 넓어졌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나간 지금은 구역도 더 커지고 시기 역시 더 빨라졌을 가능성도 높다.
한편 국내에서 각종 기상 재해로 지급된 보험금은 지난 5년간 2배로 늘어났으며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이 바람에 침수 위험이 높은 부동산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아예 계약 접수를 거부하거나 또는 상당한 보험료를 부과하는 곤혹스러운 사례가 이미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해수면 상승과 가뭄, 폭염, 산불, 폭풍 등 기후 변화 재난에 대비하는 국가적 계획을 준비하면서 지난 4월에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은 ‘자연환경’과 ‘주택’, ‘건축 및 지역’, 그리고 ‘지역사회’와 ‘경제 및 금융 시스템’ 등 총 5개 분야의 정책을 다루고 있으며, 이후 침수 피해를 보장하는 공공보험 도입 여부를 포함해 보조금 지급 등 전국적으로 실시할 관련 조치와 세부적인 계획을 계속 논의 중이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이나 침식 등으로 안전이 위협을 받아 주거지를 이전해야 한다든지 또는 관련 보험 가입 등이 불가능해 이를 다른 방법으로 보장해줄 때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기후 변화와 관련되는 국가의 전반적인 대책은 수립하겠지만 이처럼 민간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는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각 정책 분야별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올해 연말 안에는 결정돼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