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가격이 고공 행진을 지속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렌트로 살고 있다. 지난 2018년 센서스에 따르면 약 140만 명의 뉴질랜드인들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집값 급등에 따라 이 수치는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가보유율이 7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현실에서 렌트 생활자는 경제활동 경력이 짧은 젊은층뿐 아니라 중·장년층과 노년층 등 전체적인 연령대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는 주택 시장의 상황과 함께 각 연령대 세입자들의 케이스를 최근 뉴질랜드 헤럴드지의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뉴질랜드 집값 거품 순위 1위
뉴질랜드의 집값이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부풀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를 토대로 나라별 집값 거품 순위를 평가한 결과 주요국 집값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보지 못한 수준의 거품 경고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뉴질랜드가 1위에 올랐다.
블룸버그가 집값 거품 순위 평가에 이용한 자료는 OECD가 산출하는 렌트비 대비 주택가격 비율(PRR),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과 실질·명목 집값 상승률, 대출 증가율 등 5개 지표다. (표 참조)
▲ 블룸버그 통신 조사 집값 거품 순위
평가 결과 거품 순위 1위에 오른 뉴질랜드의 PRR은 211.1로 장기 평균치(100)의 2배 수준이었으며 PIR도 166.6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명목 집값 상승률 14.5%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집값 상승률 13.2%도 각각 가장 높았고 대출 증가율은 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덴마크, 미국, 벨기에,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한국은 PIR이 60.7로 장기 평균치 100을 크게 하회하면서 집값 거품 순위가 19위로 평가됐다.
블룸버그는 23위까지 나라별 순위 표를 공개했으나 전체 분석 대상이 몇개국인지 등 자세한 설명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 분석을 담당한 이코노미스트 니라즈 샤(Niraj Shah)는 “다양한 요인들이 혼합돼 전세계 집값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면서 “저금리와 주요국의 경기부양책, 코로나19 이후 주택 공급 제한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초 발표된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의 ‘1분기 글로벌 주택가격 지수’ 에서는 조사 대상 56개 국가의 3월 현재 주택 값이 1년 전보다 평균 7.3% 오른 가운데 뉴질랜드의 상승률은 22.1%로 32%의 터키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주택 중간가격, 1년 새 32% 급등
지난 3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후에도 집값 상승세는 아직까지 꺾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부동산협회(REINZ)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주택 중간가격은 82만달러로 작년 5월 62만달러에 비해 32.3%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REINZ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연간 주택가격 상승 폭으로는 가장 큰 것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오클랜드 지역의 주택 중간가격은 작년 5월 90만5,000달러에서 지난 5월에는 114만8,000달러로 1년 동안 26.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은행과 주요 민간 은행들이 주택시장 동향을 더 정확하게 추적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택가격 지수(HPI)는 전국은 29.8%, 오클랜드 지역은 26.3%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REINZ는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5월 경우 전국에서 매물로 나온 부동산은 1만4,833건으로 1년 전보다 6,057건이 적은 숫자이고 집계 이후 두 번째로 1만5,000건 이하로 내려간 수치라고 밝혔다.
웬디 알렉산더(Wendy Alexander) REINZ 회장 대행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주택 가격 상승세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 상승세가 완화되고 있지만 이것이 3월 23일에 있었던 정부 발표의 영향인지 혹은 단순히 겨울이라는 시기의 영향인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쿼터블 밸류(QV)에 따르면 주택시장 하위 25%의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생애 첫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찾는 주택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통계에 따르면 렌트로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약 75%는 계속 렌트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집 마련이 삶의 목표가 아닌 20~30대 무주택자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렌트로 살고 있는 실정에서 이제 ‘렌트 세대’는 따로 없다.
세입자는 어린이일 수 있고, 노인일 수 있으며, 그 사이 연령대의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모든 뉴질랜드인의 중간 연령은 37.6세이고 결혼하는 여성의 중간 연령은 29.2세이며 출산 중간 연령은 30.8세이다.
그렇다면 생애 첫 집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얼마일까?
지난 2017년 ANZ 자료에 따르면 34세로 1970년 25세에서 9세 늘었으며 신용평가기관 센트릭스(Centrix)에 따르면 36세로 2012년 31세에서 역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젊은 세입자들은 내집 마련이 더 이상 일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케이트(Kate, 29세)는 주당 235달러를 내고 오클랜드 헌 베이(Herne Bay)의 플랫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소득의 30~40%를 저축하고 있지만 주택 구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진 않다.
케이트는 경험상 그녀 연령 대에서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가족으로부터 커다란 경제적 도움을 받았거나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등의 이중 소득이 있을 경우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내 부모는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도 없었고 열심히 일해서 첫 집을 장만했고, 또 열심히 일해서 두 번째 집을 구입했다”며 “만약 내가 집을 구매하게 된다면 오클랜드 이외의 지역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엠마(Emma, 20세)는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부모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녀는 3만5,000~4만달러의 학생융자를 가지고 있지만 전공을 변경해 적어도 26세까지 돈을 벌지 못하는 또래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다.
엠마는 부동산이 재정적 안정을 주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소유한 집에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녀는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 발을 들여 놓는다면 유일한 이유는 큰 돈을 벌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식이나 다른 투자 대상을 찾을 것이다”고 말했다.
화나고 두려운 40~50대 세입자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연령대는 45~49세이다.
이들의 주당 중간소득은 1,056달러로 20~24세 중간소득의 두 배이다.
이처럼 높은 소득을 올리며 모기지를 갚아 나가는 연령대이지만 이혼과 늦어진 대학 교육, 해외 경험 등 여러 사정으로 중년의 세입자들은 남은 평생 렌트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코로나19 이후 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이혼의 중간 연령은 여성의 경우 44.4세이고 남성의 경우 47세이다.
오클랜드에서 주당 600달러에 렌트로 살고 있는 사라(Sarah, 47세)는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뉴질랜드에 돌아와 보니 집값이 급격하게 오른 현실에 놀랐다.
정부는 62만5,000달러 이하의 오클랜드 주택에 첫 주택 보조금(First Home Loan)을 지원하지만 중간가격이 100만달러가 넘는 오클랜드에서 그 가격대의 주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라는 수중에 85만달러가 있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는 주택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교육 분야로 진로를 바꾼 사라는 “걱정되는 점은 렌트가 가혹하다는 것이 아니라 25~30년 후 은퇴하면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고 털어놓았다.
필(Phil, 46세)은 17년 전 영국에서 와서 얼마 안 될 즈음 내집 마련 기회를 놓친 일을 기억하면 미칠 것 같다.
그 당시 20만달러에 오퍼를 받았던 헌 베이 아파트의 현 시세는 100만달러가 족히 넘는다는 것이다.
그 후로 주택 대출에 필요한 예치금을 마련하지 못한 필은 현재 주당 400달러를 내고 방1개 짜리 허름한 아파트에 고양이와 살고 있다.
그는 키위세이버에 가입해 있지만 40대 중반의 싱글에 많은 모기지를 갚을 정도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 남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가졌다고 해서 같은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나는 대출도 없고 누구한테 빚진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자유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해법을 찾아가는 60대 이후 렌트 생활자
통계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하우징 인 아오테아로아 2020(Housing in Aotearoa: 2020)’ 보고서에 따르면 65~74세의 80% 정도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이라는 보호장치가 없는 노년층은 장래에 대해 걱정하지만 공동생활과 보다 구체적인 지원 신청 등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65세 이상 노년층의 주당 중간소득은 415달러이고 거의 20%는 아직 갚아야 할 모기지가 있는 실정이다.
65세 이상 세입자의 3분의 1은 렌트비가 저렴한 정부주택에 살고 있다.
노년의 렌트 생활자들은 대개 온화하고 책임감 있으며 조용하게 지내는 좋은 세입자들이다.
하지만 집주인의 사정이 변하면 세입자의 사정도 변하게 마련이다.
82세의 질리안(Gillian)은 “나는 좋은 세입자였고 집주인은 나보다 어린 여자였지만 코로나19로 집을 팔려고 했다”고 전했다.
질리안은 그로 인해 작년 크리스마스 몇 주 전에 렌트비를 50% 올려 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평생 두 채의 집을 소유했는데 첫 집은 이혼하면서 처분했고, 두 번째 집은 딸을 위해 팔았다고 한다.
그녀는 “나는 은퇴촌의 주택을 구입할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50대에 결혼 생활을 마치고 다시 시작해야 사람들이 많다. 노년층의 세입자들을 지원하는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네이피어(Napier)의 방 3개짜리 주택에서 주당 400달러에 렌트로 생활하고 있는 70대 캐롤(Carol) 부부는 각각 전(前) 배우자들과 이혼하기 전까지 주택을 소유했다.
이혼을 하고 재산을 분배하고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주택 구입은 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캐롤 부부가 주택을 구입하려고 결정한 때에는 이미 늦었다.
은행들에 찾아가서 대출 상담을 받았지만 어느 은행에서도 나이 든 이들에게 돈을 빌려 주려고 하질 않은 것이다.
캐롤 부부는 그 동안 집주인들이 집을 팔아 7~8차례 렌트 집을 옮겨야 했다고 한다.
캐롤은 “우리는 재산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고 수도관이 고장났을 때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만약 집을 소유했다면 그러한 일들과 모기지 상환 때문에 걱정했을 것이다”며 렌트의 장점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