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9월 19일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때문에 오는 17일로 연기된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전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 치러지고 있는 이번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제1야당인 국민당은 새로운 대표와 각종 공약들을 앞세워 추격하고 있다. 또 액트(Act)당의 약진이 돋보이는 한편 뉴질랜드 제일(New Zealand First)당은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최저정당 지지율인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진을 겪고 있다. 이번 총선에는 또한 안락사 및 대마초 합법화 등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어느 때보다도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
노동당 18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세금 인상
노동당은 재집권할 경우 연간 18만달러를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39%의 새로운 최고세율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최고 소득세율은 33%로 7만달러 초과 소득에 적용된다.
노동당은 새로운 최고 세율이 국민의 2%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금 인상으로 추산되는 연간 5억5,000만달러의 추가 수입은 보건, 교육, 코로나19로 발생한 부채 상환 등에 사용된다.
노동당은 최고 소득세율 인상 외에 법인세를 비롯한 다른 세율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며 다국적 기업들이 공정한 세금을 납부하도록 보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은 재집권하면 2022년부터 마오리 새해인 마타리키(Matariki)를 뉴질랜드의 12번째 공휴일로 지정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전문가 그룹이 날짜를 결정할 것이지만 마타리키 기간내에 월요일이나 금요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마타리키가 공휴일로 지정되면 1973년 와이탕이 데이 공휴일 지정 이후 거의 50년 만에 새로운 공휴일이 되는 것이다.
국민당 단기 세금 감면
국민당은 올해 1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6개월 동안 단기적인 세금 감면을 공약했다.
이는 소득세율 구간별 기준 소득을 올리는 방법으로 실시되어 1만4,000달러는 2만달러로, 4만8,000달러는 6만4,000달러로, 7만달러는 9만달러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국민당은 이로 인해 평균 소득자는 주당 46.50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전체적으로 47억달러의 감세 혜택을 줄 것으로 추산했다.
녹색당은 국민당의 세금 감면 공약이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적은 혜택을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순재산 100만달러 이상의 뉴질랜드인에 순재산의 1%, 200만달러 이상의 뉴질랜드에 순재산의 2%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부유세를 연정 협상으로 기본선으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녹색당의 연정 파트너인 노동당은 부유세에 대해 반대하고 있어 두 정당간 연정의 걸림돌로 작용될 전망이다.
국민당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체에 1만달러의 현금 지급을 공약했다.
국민당은 코로나19와 관련해 국제선으로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출발 전 코로나19 음성 검사결과를 요구할 계획이다.
안락사 합법화 묻는 국민투표
안락사는 그 동안 뉴질랜드에서 뜨거운 찬반 논란을 일으킨 사안이다.
뉴질랜드의 1961년 개정 형법은 ‘자살을 돕거나 선동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1995년 ‘존엄사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반대 61 대 찬성 29로 부결됐다.
2003년에도 존엄사 법안이 올라왔는데 이 때에는 반대 59 대 찬성 58로,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번에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생명종식 선택법(End of Life Choice Act 2019)’은 지난 2017년 데이비드 시모어(David Seymour) 액트당 대표가 발의해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번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정확한 질문도 ‘생명종식 선택법안의 발효에 찬성하십니까?’이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50% 이상 찬성하면 최종 결과 발표일로부터 12개월 뒤 발효되고 과반 찬성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법안은 폐기된다.
이 법안은 말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로 6개월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회복 불가능한 육체적 쇠약 상태에서 진정될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될 경우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끝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때 환자는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할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의사 2명이 승인을 해야 한다.
환자는 18세 이상 뉴질랜드 시민권자이거나 영구 영주권자여야 한다.
단순히 노령이나 장애, 정신 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하거나 의사나 간호사가 먼저 안락사를 제안해서는 안 된다.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고 고령화가 진행중인 세계에서 안락사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로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2019년 6월 합법화하는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됐거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뉴질랜드가 처음이다.
뉴질랜드텔레비전(TVNZ) 1뉴스가 8월 말부터 자체적으로 가동한 온라인 투표 프로그램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락사 법안에 77%가 찬성을 피력했고 반대는 15%를 기록하는 등 최근 실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초 합법화 묻는 국민투표
‘대마초 합법화 및 관리 법안(Cannabis Legalisation and Control Bill)’은 생명종식 선택법안과 달리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국민투표에서 50% 이상 찬성한다고 해도 기호용 대마초 사용을 곧바로 합법화하는 것은 아니다.
총선 후 차기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 통과 절차를 거쳐야 효력을 갖는다.
노동당과 녹색당이 재집권할 경우 이 법안을 지지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국민당과 액트당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만 나중에 선택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할 경우 그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50% 이상 반대하면 기호용 대마초 사용은 지금처럼 불법이지만 이번 국민투표와 관계없이 의사 처방이 있는 의료 목적의 대마초 사용은 여전히 합법이다.
대마초 합법화 법안은 대마초 관련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청소년들의 대마초 사용과 불법적인 공급을 차단하고 20세 이상 성인들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마초는 뉴질랜드에서 불법이지만 약 80%의 뉴질랜드인이 25세가 될 때까지 시도해 볼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던 총리도 뉴스허브(Newshub) 양대 정당 대표 토론에서 오래 전에 사용한 적이 있다고 실토할 정도다.
법무부가 주관하여 경제조사회사 Berl(Business and Economic Research Ltd)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5세 이상 55만7,000명이 연간 74톤의 대마초를 소비하고 80%는 매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초와 관련된 범법자는 2010/11년 8,191명에서 2019/20년 3,353명으로 59.1% 줄었다.
대마초 사용 및 소지 위반자도 같은 기간 5,288명에서 2,110명으로 60.1% 감소했다.
Berl은 대마초가 합법화되면 초기 사용량이 25% 급증하다가 결국 합법화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고 6억7,500만달러의 세금 수입이 발생하여 보건 분야에 사용될 것으로 분석했다.
캐나다도 지난 2018년 10월 대마초가 합법화되면서 2019년 소비자의 52%가 대마초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젊은 사용자와 상습 사용자 등이 규제되지 않은 암시장에서 엄격한 관리하의 합법 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마초 합법화가 오히려 더 싸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암시장을 조성하고 20세 미만 청소년들의 대마초 사용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달 17-21일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쿠리아 마켓(Curia Market)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대 의견이 49%로, 찬성 36%보다 높았다.
반대한 응답자는 45세 이상, 유러피언, 은퇴자, 국민당 지지자들에서 많았고, 찬성한 사람은 30세 미만, 학생, 마오리, 웰링턴 거주자들에서 많은 경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