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5일(화) 오클랜드에서 ‘제36회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 요트대회’의 대회장인 ‘컵 빌리지(Cup Villiage)’가 문을 열고 ‘프라다(PRADA) 월드 시리즈’가 12월 17일(목)부터 시작되면서 대회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현재 뉴질랜드와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평소보다 줄어든 5팀이 출전한 가운데 최종 도전자를 정하는 ‘프라다컵 대회’는 1월 15일(금)부터 2월 22일(월)까지 진행된다.
이어서 프라다컵 1위팀과 팀 뉴질랜드와의 아메리카스컵 본 경기는 내년 3월 6일(토)부터 21일(일)까지 16일간의 일정으로 하우라키(Hauraki)만에서 1:1 매치 게임으로 진행된다.
아직 본격적인 경기는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호에서는 긴 전통의 대회 역사를 포함해 그동안 뉴질랜드 팀이 거뒀던 성적 등 대회와 관련된 이모저모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지구상 가장 오래된 국제 스포츠 시합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의 역사는 한 세기도 훨씬 더 전인 지난 18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생 클럽이었던 ‘뉴욕 요트 클럽(New York Yacht Club, NYYC)’에서는 존 콕스 스티븐스(John Cox Stevens) 제독을 중심으로 6명의 회원들이 대영제국을 통치하던 빅토리아 여왕이 주최하는 요트대회에 참가하려고 모임(syndicate)을 결성했다.
대회 개최지는 영국 남부의 포츠머스(Portsmouth) 항구 부근인 와이트(Wight)섬이었는데, 이들은 대회 참가를 위해 돛이 2개 이상 달린 요트인 ‘스쿠너(schooner)’인 ‘아메리카호’를 1851년 5월에 건조했다.
첫 번째 대회였다고 할 수 있는 경기는 그해 8월 22일에 ‘100파운드 컵(£ 100 Cup)’을 놓고 총 15척의 요트가 동시에 출발해 와이트섬을 일주하는 58해리(98km) 길이의 코스에서 누가 1등으로 들어오는가를 다투는 ‘플릿(fleet) 레이스’로 치러졌다.
경기 결과는 놀랍게도 당시 대서양을 건너와 처음 대회에 출전했던 뉴욕 클럽의 ‘아메리카호’가 2위였던 영국의 ‘오로라(Aurora)호’를 8분 차이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이 아직까지 먼 변방에 불과했던 미국 촌뜨기들에게 우승컵을 내주면서 바다를 제패하던 해양제국으로서의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도 놀라 주변에 2등은 누구냐고 물었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폐하, 2등은 없습니다(Your Majesty, there is no second)”라는 것이었고 이 말은 아메리카스컵을 상징하는 어구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 첫 대회에서 우승한 ‘아메리카호’
우승컵을 되찾겠다고 시작했던 경기
여왕 마마께서 친히 지켜보던 대회에서 크게 망신을 당한 영국은 미국이 가져간 우승컵을 되찾고자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뉴욕 요트 클럽 측에 제안했고 그 결과 2차 대회가 1870년에 뉴욕 앞바다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처음 우승했던 요트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스컵 대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셈인데, 그러나 17척의 요트들이 출전했던 두 번째 대회에서도 뉴욕 클럽의 ‘매직(Magic)호’가 승리했다.
당시 영국은 철도 재벌이자 요트맨이었던 제임스 로이드 애시베리(James Lloyd Ashbury)가 1868년에 야심적으로 건조한 ‘캄브리아(Cambria)호’를 가지고 그해 영국 솔렌트(Solent)에서 열렸던 시합에서 미국의 ‘사포(Sappho)호’를 이긴 뒤 자신감을 가지고 미국에 도전했지만 또 다시 패배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후 요트들이 한꺼번에 경쟁하는 플릿 방식이 아닌 우승자와 도전자 간 ‘매치(match) 레이스’로 치러졌던 1871년 대회에서도 영국은 4-1로 패하며 뜻을 못 이뤘으며, 1876년에는 캐나다의‘로열 캐나디언 요트 클럽’이 도전했지만 역시 2-1로 패해 미국의 우승 행진을 저지하지 못 했다.
이후 대회 방식이나 참가하는 요트들의 제원이 여러차례 변하기는 했지만 뉴욕 요트 클럽은 1983년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아 II호(Australia II)’에게 패하면서 우승컵을‘로열 퍼스(Royal Perth) 요트 클럽’으로 넘기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 전까지 미국 팀이 기록했던 24차례 연속 우승 기록은 지금까지 다른 국제 스포츠 종목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은 최장기 연속 우승 기록이다.
당시 호주의 퍼스 요트 클럽 등 호주 팀들은 1964년을 제외하고는 그 직전 대회였던 1962년 대회부터 7차례나 연거푸 미국에 도전한 끝에 결국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미국 ‘샌디에고(San Diego) 요트 클럽’이 우승하는 등 미국의 우승이 몇 차례 이어지기는 했지만 뉴질랜드가 1995년과 2000년, 그리고 직전 대회인 2017년에 우승하고 스위스가 2007년에 우승하는 등 미국의 독주가 계속되지는 못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 세기도 더 전에 우승컵을 되찾겠다는 집념으로 경기를 제안했던 영국은 아직까지 꿈을 못 이뤘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호주와 뉴질랜드가 우승컵을 가져가는 모습만 쓸쓸히 지켜보는 신세가 됐다.
▲ 대형 화물기로 운반되는 요트
세계 3대 스포츠 행사 중 하나?
‘볼보 오션 레이스(Volvo Ocean Race)’와 ‘월드 매치 레이싱(World Match Racing)’과 함께 세계요트연맹(ISAF)이 공인한 3대 요트대회 중 하나로 알려진 이 대회를 두고 일부에서는 ‘월드컵 축구’ 및 ‘올림픽’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 대회 중 하나라고 일컫는데 사실 그 정도까지 치켜올리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럭비월드컵이나 세계육상대회와 같은 다른 스포츠 종목들도 자신들의 대회가 지구상 3대 스포츠 행사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데, 요트가 아직은 부자나라들 중에서도 특히 해양국가들이 주축이 된 잔치라는 측면에서는 축구처럼 그야말로 전 세계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대중적인 스포츠나 행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896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근대 올림픽이나 1930년 처음 시작된 축구 월드컵에 비해서는 각각 45년과 79년이나 빨리 시작되었던,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국제대회였기 때문에 장구한 역사로 본다면 손에 꼽을만한 스포츠 행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1896년에 근대 올림픽이 시작되던 해 이전까지 아메리카스컵 대회는 이미 10차례나 경기를 치렀으며 월드컵이 시작된 1930년 같은 해에는 15번째 대회가 열린 바 있다.
더우기 매 3~4년마다 펼쳐지는 레이스는 지구촌의 수많은 이들로부터 주목받을 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하는 요트와 팀들에 투자되는 비용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거금이다.
이로 인해 클럽들을 후원하는 기업들 역시 그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세계 유명기업들로 후원 금액도 엄청난데, 기업들로서는 투자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해가 갈수록 더욱 각광을 받는 대회가 되고 있다.
또한 대회 유치로 인한 해당 국가의 경제적 효과도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내륙국인 스위스가 우승하는 바람에 지난 2000년에 32회 대회 개최권을 구입했던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는 당시 미화 63억달러에 달하는 직간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거뒀고 이후에는 유럽의 관광 중심지로 거듭나는 효과도 누렸다.
당시 관련 기관들의 분석에 의하면, 이른바 ‘경제효과 발생지수’가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에 이어 3번째였던 것으로 나타나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라는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 ‘올드 머그(Auld Mug)’ 우승컵
‘올드 머그(Auld Mug)’라 불리는 우승컵은?
한편 대회 역사가 가장 오랜 국제대회인 만큼 우승컵 역시 평범하지 않은데, ‘올드 머그(Auld Mug, 오래된 잔)’로 불리는 우승컵은 당연히 세계 스포츠 대회에서 수여되는 우승컵 중 가장 역사가 깊다.
1735 년부터 영국 왕실 전용 보석상이었던 런던의 ‘로버트 개라드(Robert Garrard & Co)’가 1848 년에 순은 함유량이 92.5%인 최상급의 ‘스털링 실버(sterling silver)’로 제작했다.
최초 이름이 ‘100파운드 컵(£ 100 Cup)’ 이었던 이 우승컵은 미국이 가져간 뒤 ‘100 기니 컵(100 Guinea Cup)’이라는 잘못 알려진 명칭으로 몸에 각인이 새겨졌다.
‘올드 머그’는 또한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갖기 어려운 우승컵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 지금까지 169년간 이어진 대회에서 미국팀을 제외하고는 뉴질랜드와 호주, 스위스 등 단지 3개 나라 클럽만이 우승컵을 들어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드 머그’는 지난 1983년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아 II호(Australia II)’가 우승해 ‘로열 퍼스(Royal Perth) 요트 클럽’으로 가져가기 전까지는 뉴욕의 뉴욕 요트 클럽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1987년에는 ‘스타 앤 스트라이프스 87(Stars & Stripes 87)호’로 우승했던 미국 ‘샌디에고 요트 클럽’이 가져가기도 했으며 1995년과 2000년 우승으로 한동안 뉴질랜드 땅에 머물기도 했다.
컵 몸체에는 지금까지 우승한 35개팀 이름과 함께 경주가 열렸던 코스 길이, 그리고 우승 장소와 시간, 클럽 이름들이 각인됐는데, 최초 제작 시 27인치(68.5cm)였던 컵 높이는 계속 늘어난 각인으로 베이스가 2개 추가돼 현재는 44인치(111.7cm)에 달한다.
또한 컵 무게는 32.4파운드(14.7kg)인데 지난 33회 대회에서 우승했던 ‘오라클 레이싱(Oracle Racing)’이 나무로 만들어진 베이스를 자신들의 요트인 ‘USA 17’ 제작에 사용됐던 것과 동일한 탐소섬유(carbon fiber)로 대체하기도 했다.
한편 우승컵은 한때 큰 수난도 겪었는데 1997년 뉴질랜드에서 요트 클럽에 침입한 벤자민 페리 네이선(Benjamin Peri Nathan)이라는 마오리 운동가가 대형 망치(sledgehammer)로 트로피를 공격하는 바람에 크게 파손됐다.
결국 컵은 최초 제작사인 런던의 개라드로 보내져 장인 3명이 3개월에 걸쳐 수리했으며, 범인은 기소돼 34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해 18개월로 감형됐다.
현재 컵은 150주년을 기념해 ‘루이 뷔통(Louis Vuitton)’에서 디자인해 기부한 전용 케이스에 담겨 항상 2명의 보안요원들과 함께 비행기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운반된다.
또한 절대로 맨손으로는 취급하지 않고 박물관 등에서 유물을 취급할 때 볼 수 있는 전용 장갑을 낀 요원들만 만질 수 있다.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때에는 비공개된 장소에 보관되는데 현재는 우승팀이 있는 뉴질랜드에서 보관 중이다.
▲ ‘테 파파(Te Papa)’에 전시 중인 ‘팀 뉴질랜드 NZL-32/Black Magic’
우승컵 외 상금은 한푼도 없는 시합
아메리카스컵 대회는 프로 요트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달랑 우승컵 하나만 수여하는 것 외에는 상금이 한푼도 없는 대회이다.
이는 그만큼 명예를 중시하는 대회임을 보여주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승팀이나 선수들 그리고 해당 국가가 누리는 경제적인 이익은 웬만한 스포츠 종목들이 따라오지 못 할 정도로 막대하다.
이는 요트라는 경기 자체가 아직도 최상위 부자들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데, 실제로 대회가 열리는 인근 바다에는 전 세계에서 초호화 요트를 직접 타고 대회장에 나타나는 억만장자들로 넘쳐난다.
당연히 큰 돈이 있는 곳에 기업들도 몰리는 만큼 내노라 하는 명품 제조업체들을 포함한 유수의 대기업들이 각 팀들의 후원에 대대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선수들 역시 우승하면 세계적인 스타로 각광받는 것은 물론 광고 출연이나 후원, 또 각 팀으로 스카웃되는 등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할 대접을 받게 된다.
아메리카스컵 대회는 국가간 대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요트 클럽간 대항전으로 한 국가에서 여러 팀이 출전할 수도 있다.
선수들과 지원팀은 국적에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 중 20%는 해당 국가 여권을 가져야 하며 나머지 선수들도 해당국에 일정기간 거주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한편 클럽 대항전이다보니 좋은 성적을 거뒀던 기량이 훌륭한 뉴질랜드 선수들이 외국 팀에 스카웃돼 비록 다른 나라 팀들이지만 실제로는 뉴질랜드 출신들이 대거 포함돼 꾸려진 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 2017년 버뮤다에서 우승한 팀 뉴질랜드
아메리카스컵과 뉴질랜드의 도전 역사
영국인들 못지 않게 바다를 사랑하는 키위들은 근래 들어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에서 굵직하고 화려한 업적들을 기록하면서 그때마다 국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1851년 이후 미국을 제외하고는 호주가 1983년 단 한차례 우승한 뒤에도 연승 행진을 벌이던 미국팀에 대항해, 1995년에 러셀 쿠츠(Russell Coutts)가 이끄는 ‘로얄 뉴질랜드 요트 스쿼드론(Royal NZ Yacht Squadron)’의 ‘팀 뉴질랜드 NZL-32/Black Magic’이 5-0으로 완벽하게 레이스를 마치면서 그야말로 마법같은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전 세계가 놀란 가운데 뉴질랜드 전국이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됐음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5년 뒤 2000년에 오클랜드 대회 유치로 발생한 경제적인 이익도 엄청났다.
2000년 대회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피터 블레이크(Peter James Blake)가 이끈 뉴질랜드 팀은 이탈리아의 ‘요트 클럽 푼타 아라(Punta Ala)’의 ‘프라다 챌린지 루나 로사(Prada Challenge, Luna Rossa)’를 꺾고 우승컵 방어에 성공하면서 2003년 대회도 오클랜드에서 연속으로 치르게 됐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뉴질랜드는 바다도 없는 내륙국인 스위스의 ‘소시에테 노티크 제네바(Societe Nautique de Geneve)’의 ‘알링기(Alinghi) SUI-64’에게 레이스에서 5-0으로 완패하면서 우승컵을 넘겨줬다.
이후 2007년 발렌시아 대회에서 다시 도전에 실패한 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우승자였던 ‘골든 게이트(Golden Gate) 요트 클럽’의 ‘오라클 팀(Oracle Team) USA’에 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당시 뉴질랜드의 ‘에미레이츠 팀 NZ 아오테아로아(Emirates Team NZ Aotearoa)’와 미국 팀은 대회 사상 최장기 레이스를 펼친 끝에 뉴질랜드가 9-8로 아쉽게 패했다.
당시 뉴질랜드는 8경기나 앞서 한 레이스만 더 이기면 우승하는 입장이었는데, 레이스 중 돛이 찢어지는 등 어이없는 불운이 겹치면서 연속으로 8번을 지는 차마 믿기 어려운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버뮤다(Bermuda) 대회에서는 3년 전과 같은 팀명을 가진 두 팀이 다시 맞선 끝에 피터 벌링(Peter Burling)이라는 당시 26세의 영웅을 탄생시키면서 뉴질랜드가 7-1로 완승을 거두고 3번째로 ‘올드 머그’를 가져오는 쾌거를 이뤘다.
필자 역시 이민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회 존재 자체를 몰랐지만 2000년 오클랜드 대회부터 경기를 즐기기 시작했으며, 특히 2013년 샌프란시스코의 9-8 패배는 너무도 아쉬워 잠까지 설치는 등 요트 경기가 전해주는 박진감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었다.
그해 구글 검색에서 뉴질랜드인들이 가장 많이 검색했던 것이 아메리카스컵이었을 정도로 대회가 열렸던 3주 동안은 전 국민들이 열광했던 뜨거운 열기가 지금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 2013년 출전했던 ‘팀 코리아’의 ‘화이트 타이거 챌린지’
‘Team KOREA’도 첫 출전에 좋은 성적 거뒀지만
한편 그동안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중국 정도가 예선전 격인 월드시리즈부터 여러 차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지금까지 특출한 성적을 올리지는 못 했는데, 일본 팀은 특히 유명한 한국계 재벌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가장 중요한 후원자이다.
오히려 지난 2013년 대회에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국의 ‘Team Korea White Tiger Challenge’는 2011년부터 시작됐던 예선 격인 월드시리즈에서 이탈리아 등 강호들을 몇 차례 꺾는 등 선전 끝에 첫 해에 8개국 11개 팀 중 3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당시 5명 전원이 외국인이었던 선수들을 이끌고 출전했던 김동영 단장은 부산 동아대 요트부 출신으로, 1999년 오클랜드 요트전문학교인 ‘유니테크 마린테크놀로지’에서 유학한 뒤 현지 요트업체인 ‘센세이션요트’에서 요트 제작과 디자인을 담당했었다.
또한 이제는 당당한 뉴질랜드의 영웅인 피터 벌링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21세라는 어린 나이로 당시 팀 코리아의 스키퍼(skipper)로 출전했던 경력이 있다.
한국팀은 당시 변변한 후원사도 없어 대회조직위원회가 시운전에 쓰던 중고 요트를 싸게 구입해 참가했으면서도 세계 강호들과 당당히 겨뤄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후 더 이상 대회 참가는 못 하고 있다.
한편 대회에 참가하는 요트는 해당 국가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선박은 물론 비행기 제조기술을 비롯해 최신 재료 등 온갖 첨단 기술과 과학 이론이 적용되는 만큼 척당 가격 역시 수백억원에 달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조업인 요트 제조의 강국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뉴질랜드는 이런 면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만약을 대비해 선수단은 보통 2척의 요트를 준비하고 대회장까지의 운반에도 대형 화물기가 동원되며 선수단을 지원하는 인력만 50~100명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 팀은 당시 단 한 척으로 출전했고 선수 5명에 지원인력도 5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이번 칼럼을 쓰고자 자료를 뒤지던 필자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한편 세부적인 대회 운영 방식은 방어에 나서는 우승국이 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금번 대회에서 전 대회에 비해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직전 대회까지 사용됐던 선체가 여러 개인 이른바 ‘카타마란(catamaran)’이 단일 형태의 선체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최고 속도가 50노트 이상으로 예상되는 등 바다의 F1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바다 위를 날아가듯 질주하면서 여전히 관중들에게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선물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이번에도 팀 뉴질랜드가 좋은 성적으로 ‘올드 머그’를 다시 한번 뉴질랜드 땅에 붙잡아 놓기를 고대하면서 독자들과 함께 박진감 넘치고 멋진 경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