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로 뉴질랜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례가 처음으로 확인된 지 거의 1년이 지났다.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는 뉴질랜드는 지난 9일 현재 2,320명의 누적 확진자와 25명의 누적 사망자를 기록했다. 작년 말 백신이 개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올해 국경이 열리고 코로나19의 악몽도 곧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점점 불확실성으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최근 상황을 짚어 보았다.
올해도 국경 개방 어려울 듯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지난달 올해 국경 폐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던 총리는 1월 26일 웰링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 시점에서 다른 나라들은 뉴질랜드의 보건과 경제에 큰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며“이 점이 올해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경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현재 국경을 폐쇄하고 모든 입국자는 2주간 정부 격리시설에 머물도록 의무화하는 등 강력한 방역 대책으로 코로나19 감염을 최소화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외국인의 입국 허용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국 제한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백신을 접종하면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19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거나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충분히 많아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며 집단 면역은 올해 중순을 넘겨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존 키(John Key) 전(前) 총리도 “2021년도 2020년과 매우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며 “올해 해외여행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웃 호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호주 연방보건부의 실무 책임자인 브렌든 머피(Brendan Murphy) 차관은 지난달 “대다수의 호주인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져도 올해 안에 해외여행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을 폐쇄하면서도 뉴질랜드는 호주와는 이른바 트래블 버블(비격리 여행 권역)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두 나라가 서로 코로나19에 대한 위험이 낮다는 점을 확인하고 두 나라 간에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던 총리는 호주와 국가 대 국가로서 트래블 버블을 추진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주 단위로 트래블 버블을 추진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팬데믹 종식까지 7년 소요 전망
작년 12월부터 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마스크나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이 없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인가?
밀포드 자산관리(Milford Asset Management)의 마리사 로시(Marissa Rossi) 지속투자수석은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들, 백신의 공급 속도, 그리고 백신의 효과 등 3가지 요소가 올해 실질적으로 팬데믹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 감염 또는 전염에 대해 보호할지, 아니면 단지 감염증세에 대해 예방할지 여부가 코로나19 제한 시행 기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5일 “우리가 자체 개발한 `팬데믹 종말 예측 프로그램` 분석결과 팬데믹이 도래하기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인구 중 75%의 집단면역이 형성돼야 한다”며 “현재 78억명 인구 중 1.5%인 약 1억9,900만명 가량이 백신을 접종한 상태이기 때문에 팬데믹이 끝나기까지는 7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집단면역을 위해 백신을 맞아야 하는 대상자가 전문가별로 전체의 70-85%라는 점을 고려해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의 비율이 75%에 도달했을 때 집단면역이 생긴다는 기준을 적용해 이같이 예측했다.
블룸버그가 자체 개발한 팬데믹 종말 예측 프로그램은 67개국의 코로나19 확진•사망자 및 백신 접종자 추적기를 기반으로 매일 업데이트된다.
다만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 단계에 있거나 예방 접종에 대해 업데이트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국가는 통계에서 제외된다.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를 지역사회 감염
지난해 11월 18일 이후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 지난 1월 23일 노스랜드 거주 56세 여성이 진단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영국에서 출발하여 싱가포르를 거쳐 입국한 후 이 여성은 오클랜드 시내 풀만호텔 격리시설에서 14일간 머물면서 두 차례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지역사회에 복귀한지 3일 만에 가벼운 증상이 나타났으나 감기로 오인하다가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자 재검을 받아 1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코로나19대응장관은 이 여성이 격리장소를 떠나기 직전에 다른 입국자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확진 판정을 받은 여성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호텔의 같은 층에 있었으며 떠나기 이틀전에 양성반응을 보였던 사람으로부터 감염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두 달 만에 나온 지역사회 감염 소식에 노스랜드 지역 코로나19 검사소들에는 검사를 받기 위한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고 1월 17일 48만5,620건이었던 코로나19 추적 앱의 스캔 건수는 26일 106만7,641건으로 급증했다.
그로부터 5일 후인 지난달 28일 두 명의 새로운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성인 1명과 어린이 1명으로 알려진 새로운 사례는 오클랜드 시내 풀만호텔 격리시설에 수용됐다는 점, 격리시설을 떠날 때 음성 판정을 받았었다는 점, 지역사회에 복귀한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점, 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점 등 56세 여성의 지역사회 감염 사례와 많은 유사점을 가졌다.
힙킨스 장관은 두 사례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계통에 속한다며, 따라서 서로 관련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풀만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다”며 “승강기나 운동하는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접촉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은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격리시설에서 나온 뒤 지역사회 슈퍼마켓 등 여러 장소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같은 시기에 동일한 장소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6일에도 풀만호텔에서 격리기간을 마친 해밀턴 거주자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뉴질랜드 입국자의 수를 줄이거나 탑승 전 짧은 격리기간을 마친 귀국자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타고 대학 마이클 베이커(Michael Baker) 교수는 “뉴질랜드에 코로나19 감염 입국자의 수가 늘고 있다”며 “최근의 지역사회 감염 사례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입국자의 수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번 감염 사례로 격리시설에서의 통제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와 격리시설 측은 이용객들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이용객들은 시설 내에서 그룹 간에 접촉하는 경우가 있다는 반박이다.
가족이 작년 말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수디마호텔에서 2주의 격리기간을 보냈다는 한 사람은 그 기간 동안 도착한 4편의 비행기 승객들이 함께 운동했고 현지에 파견돼 있는 군 직원들은 이를 감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질랜드헤럴드 지는 최근 격리시설에서 36시간마다 평균 한 번 꼴로 그룹간 혼재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키스탄과 서인도 제도의 크리켓 팀이 공동구역에서 서로 어울리고 물건을 건네주는 일이 목격된 것이다.
오클랜드 대학 숀 헨디(Shaun Hendy) 교수는 격리가 해제되는 사람들과 새로 도착하는 이용객들이 접촉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례 발생 이후 격리시설에서 12일차에 실시하는 검사를 마친 사람들은 격리시설을 나올 때까지 자신의 방에 머물러야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다행히 이번 지역사회 감염으로 인한 추가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헨디 교수는 코로나19가 신체에 반응하는 양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번 풀만호텔 코로나19 감염자들이 밀접 접촉자들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 3-4월의 모델링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 5명 중 1명만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켰다”고 밝혔다.
오클랜드 대학의 데이비드 웰치(David Welch) 박사는 “격리시설을 호텔들에 의존하기 보다는 비용이 들더라고 격리 목적의 적절한 시설을 지어야 할 때이다”며 “지난 10년 동안 세 차례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고 앞으로 펜데믹이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전체 백신 접종에 1년 예상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지난 3일 첫 번째 코로나19 백신을 승인했다.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 의약품안전청(Medsafe)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아 신중하게 백신을 검토한 결과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임시 승인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선 의료진과 국경에서 일하는 인력들에 대해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힙킨스 장관은 3월말까지 백신 초기 물량이 뉴질랜드에 들어오고, 전체 인구 백신 접종에는 1년 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뉴질랜드는 화이자를 비롯한 4개 백신 제조업체들로부터 1,500만회 분량을 주문했다.
백신은 무료로 접종하고 인근 태평양 섬나라들에도 일부 물량을 제공할 예정이다.
고사 직전 관광업계 정부지원 요청
국경이 장기간 봉쇄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관광업계는 이달 초 처음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관광수출카운슬은 작년 초 국경이 닫힌 이후 인바운드 여행업계는 수입이 전무한 상태라며 앞으로 3-6개월 사이에 정부의 긴급 재정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업계의 많은 사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관광수출카운슬은 코로나19 이전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71개 인바운드 관광업체와 241개 관광 비즈니스를 대표한다.
인바운드 관광업체들은 모든 외국인 관광객의 약 55%를 모집하고 172억달러의 외국인 관광객 수입 가운데 55%인 94억6,000만달러 이상을 기여한다.
정부에 대한 재정지원 탄원서에서 관광수출카운슬은 코로나19 이전 외국인 관광객 수입의 70%인 2억달러의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관광수출카운슬 린다 키네(Lynda Keene) 회장은 “이번 요청은 뉴질랜드 관광 경제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며 “관광업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업체들이 문을 닫을 경우 음식, 와인, 농산물 등 다른 수출 분야에도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키네 회장은 “뉴질랜드가 호주와 같은 시기에 국경을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호주가 국경을 개방하고 뉴질랜드 국경이 계속 봉쇄된다면 앞으로 5-10년간 장거리 관광객들이 돌아오지 않을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키네 회장은 또 “뉴질랜드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으로 국제적 평판을 높였다”며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 평판을 외국인들의 관광 목적지로 이어지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