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 단체의 페이스북에 올려진 북부 캔터베리의 한 목장
작년부터 북섬 북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남북섬의 여러 지방들이 극심한 가뭄 현상을
보이면서 뉴질랜드 전국이 타들어 가고 있다.
가뭄은 농부들만이 아닌 도시 주민들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으며 야행성인 키위가 위험한 한낮에 물을 찾아다니는 등 야생동물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가뭄과 관련돼 발생한 여러 사건과 소식들을 전하면서 가뭄의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소화용수까지 털어가는 도둑들
지난 3월 5일(목) 북섬 남부 마나와투-팡가누이(Manawatu-Wanganui) 지역의 동부를 관할하는 타라우라(Tararua) 시청은 자체 페이스북을 통해 주민들에게 물을 훔쳐가는 도둑들을 보면 신고해달라는 색다른 공지를 냈다.
시청에 따르면 이는 관내의 한 도시인 대니버크(Dannevirke) 지역에서 당국의 허가를 받지도 않은 채 도둑들이 물탱크를 동원해 소화전(hydrants)에서 몰래 물을 빼내간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타라우라 지역에서도 대니버크와 노스우드(Norsewood) 지역의 가뭄이 가장 심해 일찍부터 제한급수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약간의 비가 내렸지만 해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시청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현재 대니버크의 저수지(reservoir)는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바닥을 완전히 드러내기 직전인데, 이에 따라 이 지역 주민들은 인근 타마키(Tamaki)강에서 퍼올린 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시청에서는 만약 다음 달까지도 비가 오지 않아 타마키 강물마저 마를 경우에는 기차를 통해 인근 파머스턴 노스(Palmerston North)에서 취사와 위생에 필수적인 용수를 가져와 공급할 계획을 수립했다.
시청은 안내문에서, 소화용수는 비상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물을 빼가는 광경을 목격한 주민들은 차량 번호를 파악해 즉시 시청에 신고해주기를 당부했다.
또한 당장이라도 집에 식수 등이 모두 바닥나 문제가 생겼다면 즉각 시청이나 소방서 등 비상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안내했다.
▲ 거의 바닥을 드러낸 대니버크의 저수지 모습
떼죽음 당한 뱀장어와 새들
한편 지난 3월 2일(월)에는 뱀장어(eel)와 붕어 등 어류와 오리(duck)를 포함한 새들이 하천에서 떼죽음을 당한 사진이 보도돼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최근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던 곳은 코로만델(Coromandel) 반도 서쪽 인근의 하우라키 플레인스(Hauraki Plains) 저지대를 흐르는 피아코(Piako)강의 수로들(waterways)이다.
해밀턴 동쪽의 테 미로(Te Miro)에서 발원하는 피아코 강은 길이가 100km이며 유역면적이 1600km2로 하우라키 플레인스의 저지대를 북쪽으로 흘러 테임즈(Thames) 협만으로 유입된다.
이번에 피아코 강으로 이어지는 수로들에서는 3500여 마리 이상의 각종 조류와 함께 수 백마리 뱀장어들이 죽은 채 물 위로 둥둥 떠있는 참혹한 광경이 목격됐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환경보호 운동가들과 과학자들은 수 십년 이래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목격된 최악의 환경 재해라면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죽은 조류들 중에는 오리 외에도 보호종인 가마우지(shag)와 물떼새(banded dotterel), 왜가리(heron)들이 여럿 포함됐는데, 전문가들은 이곳은 보호종으로 지정된 조류들이 많아 환경 생태상 국제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피시 앤 게임(Fish and Game)’의 오클랜드-와이카토 지역 매니저인 데이비드 클리(David Klee)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마주한 최악의 환경적인 재앙이라면서 놀라워 했다.
▲ 하우라키 플레인스에서 집단 폐사한 뱀장어들
심한 가뭄이 불러온 비극적인 참사
이처럼 조류와 함께 뱀장어가 집단적으로 폐사한 데는 일단 가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상시에는 가뭄이 들어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뱀장어가 이처럼 집단 폐사한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뱀장어가 심한 가뭄으로 물 속에 조류가 크게 번식하면서 산소가 부족해지자 수로를 따라 탈출하려고 했지만 물이 너무 줄어든 데다가 막힌 수문 등으로 인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질식해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장어들이 죽은 곳에서는 새들의 사체도 많이 발견됐는데 이는 가뭄으로 인해 이른바 ‘보툴리눔 독소증(botulism)’이 평소보다 훨신 더 심각해지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보인다.
보툴리눔 독소증은 ‘보툴리눔 균(Clostridium botulinum)’ 이라는 세균이 생산하는 신경독소가 심각한 강직성 마비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보툴리눔 독소는 다른 병원체와 달리 병원균 자체가 아닌 균에서 생산되는 독소가 치명적인데 주로 농경지 및 축사 부근 토양에 분포되어 있으며, 사람들도 그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나 또는 과일 등을 섭취했을 때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금년에는 특히 가뭄으로 지류들의 수량이 극도로 줄어든 환경에서 인근 농장과 공장들에서 나온 배출수들이 균을 더욱 왕성하게 번식하게 만든 것이 집단 폐사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인근 지역 개발에 신중을 기하는 한편 수로에는 지금처럼 심한 가뭄에도 대비할 수 있는 적절한 물고기 통로를 만들어 어류들이 이동, 탈출할 수 있는 서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파 노스 시청 웹에 등장한 지역별 물 절약 실태
물 공급 위해 군인들까지 출동
한편 북섬의 북부인 노스랜드 지역의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한 가운데 특히 파 노스(Far North) 지역의 몇몇 도시들은 물 공급이 완전히 끊길 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이미 지난 2월 초부터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카이코헤 등 일부 도시들은 수돗물 단수가 예상되면서 사업체들은 물론 학교나 공공기관들까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었다.
이에 따라 파노스 시청에서는 관할 지역을 대상으로 2월부터 최고 등급인 ‘레벨 4’ 물 절약 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샤워를 40초로 제한하는 등 수돗물 사용을 평소보다 25% 이상 줄이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
시청은 3월 5일(목)에 지난 2월 25일(화)부터 3월 2일(월)까지 2주간의 실행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시청 관할 지역 중 카이코헤(Kaikohe)가 절약률 38.24%로 가장 우수한 실적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오카이하우(Okaihau)가 37.43%로 2위에 자리했으며 오마나이아-라웨네(Omanaia-Rawene)가 29.12%를 기록하면서 3개 지역이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4위의 케리케리-와이파파(kerikeri-Waipapa)가 15.46%로 25%에 훨씬 못미친 것을 비롯해 파이히아-오푸아-와이탕기(Paihia-Opua-Waitangi)는 5.45%에 불과한 저조한 절약 실적을 보였다.
시청 관계자는 카이코헤 주민들의 협조로 아직도 이곳에서 수돗물이 끊기지 않고 공급되고 있다고 감사를 표시하면서, 다른 지역들의 물 절약도 독려하는 한편 주민들의 계속적인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뭄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시청과 민방위 부서에서는 수돗물 단수 후 물 배급제를 대비해 카이코헤 중심 거리에 3월 5일(목) 무렵에 임시 물탱크들을 설치했다.
오클랜드에서 북쪽으로 260km가량 떨어져 있는 카이코헤는 인구가 약 5000여명으로 부근 농촌 지역의 중심도시인데, 파 노스 지역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2월 25일(화)에는 군 부대가 이곳으로 출동했다.
파머스턴 노스의 린턴(Linton) 육군기지에서 출동한 군인들은 5000리터짜리 물탱크를 적재한 3대의 군용차량과 함께 7000리터 탱크가 실린 민간 차량을 대여해 카이타이아(Kaitaia)에 기지를 두고 주로 상수도가 설치 안된 인근 지역의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 파 노스 지역에 출동한 군인들
수돗물 정책 위반시 최대 2만달러 벌금
한편 파 노스 시청은 수돗물 절약 지침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도 강화했는데, 2월말의 2주 동안 68건의 위반신고를 받은 가운데 카이코헤가 2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19건의 카이타이아가 그 뒤를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 사례 중에는 이 와중에도 호스나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정원에 물을 준 행위뿐 아니라 심지어는 수영장에 물을 채운 경우도 있었는데, 1차는 경고와 교육으로 그쳤지만 다시 위반하면 최대 2만달러까지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시청 측은 경고했다.
한편 시청은 급수관 등에서 수돗물이 새는 것에 대한 신고를 받아 금년 초부터 3월 초순까지 누수 상황이 심각했던 35건을 포함해 모두 241건 수리를 실시했다.
수도관 누수 역시 심한 가뭄으로 토양이 바싹 마르면서 급수관이 파손된 경우도 많았는데, 카이코헤의 가정들에서 누수를 수리하면서 중앙정부가 지역발전기금(Provincial Growth Fund)으로 긴급히 지원한 예산으로 300달러씩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 3월 3일 현재 NIWA의 가뭄지수 지도
타들어가는 농부들의 마음
이처럼 가뭄 사태가 길게 이어지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그 누구보다도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이들이 농부들임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현재 뉴질랜드 농부들도 양이나 소에게 먹일 물도 부족하지만 농작물은 물론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비싼 돈을 들여 건초를 구입해 가축들을 먹이고 있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가축들은 가뭄에도 견디기 더 어렵다보니 농민들이 눈물을 머금고 도축장으로 보내는 실정이며 남은 젖소들은 제대로 우유 생산이 안 되거나 아예 멈춘 상태이다.
많은 농민들이 자신의 생애에서 처음 겪어보는 가뭄이라고 말할 정도인데, 이런 상황은 3월 4일(수) 발표된 지난 여름에 대한 ‘국립수대기연구소(NIWA)’의 기상 자료에 의해서도 그 심각성이 수치로 확인된다
기상 관측 사상 4번째로 더웠다는 2019년의 한 해 중 지나간 여름 3개월 동안에 노스랜드와 오클랜드에서는 강수량을 비롯해 가뭄과 연관되는 분야에서 최소한 10개 이상의 기상 신기록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 동안 케리케리가 ‘평균최고기온(mean maximum air temperature)’이 25.8C, 그리고 카이코헤가 24.6C, 팡가레이 26.6C 등 보기 드문 높은 온도를 보이면서 새 기록을 세웠다.
특히 강수량에서는 다가빌(Dargaville)이 63mm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리(Leigh) 59mm, 그리고 오클랜드의 노스쇼어와 오클랜드 공항이 각각 53mm와 73mm의 적은 강수량으로 역시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재 가뭄이 극심한 카이타이아는 77mm, 카이코헤는 94mm, 그리고 팡가레이가 59mm의 여름 강수량으로 이들 세 지역은 관측 사상 역대 2번째로 적은 비가 내렸던 것으로 집계됐다.
팡가레이는 지난 1945년과 이듬해 걸친 여름에 54.8mm 강수량을 기록했었는데, 당시와 금년의 강수량은 평년의 30% 이하이며 이는 현재 가뭄이 심한 대부분의 지역들이 마찬가지 실정이다.
▲ NIWA의 지역별 3~5월 장기 기상예보
가뭄, 3월에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듯
더 큰 문제는 기상 당국의 장기예보 상으로는 이번 3월말까지 그리 큰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NIWA가 지난 2월말 발표한 금년 3~5월까지의 장기예보의 의하면, 노스랜드와 오클랜드 지역은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높은(above average) 가운데 강수량은 평년에 가깝겠지만(near normal) 토양 습도는 낮을 것(below normal)으로, 그리고 각 하천의 수위도 낮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각각 예보됐다.
이 같은 사정은 북섬 중부와 타라나키, 마나와투, 그리고 웰링턴도 비슷한데 다만 이들 지역에서는 토양 습도와 하천 수위가 평년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이들 지역이 지금보다 사정이 좀 나아진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현재 가뭄이 가장 심한 북부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소식은 없는 셈이다.
위에 첨부한 도표는 금년 3~5월간 각 지역별로 평균온도와 강수량을 비롯한 예상 지표들인데, 원 옆에 표기된 숫자는 평년에 비해 높거나 낮은, 또는 비슷한 정도가 될 예상 가능성을 각각 %로 표기한 것이다.
한편 또 다른 기상기관인 ‘웨더워치(WeatherWatch)의 3월 월간 예보에 따르면, 3월 14일(토)과 15일 등 서너 차례에 걸쳐 저기압이 다가오면서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됐으며 하순에는 좀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월보다는 상황이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3월 초중반까지는 북부가 해갈될 정도로 큰 비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가뭄 지역이 일부에서는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웨더워치는 예상했다.
이 칼럼을 쓰기 3주 전쯤 일단의 농민들이 한 농민 단체의 페이스북에 올린 가뭄으로 놀랄 만큼 변해버린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진들 여러 장을 필자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접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향후 7일간의 기상예보를 확인해보니 3월 9일(월)부터 사흘 정도 카이타이아와 오클랜드 등 북섬 북부에 반가운 비가 내리는 것으로 예보됐다.
모쪼록 필자의 이 글을 독자들이 읽게 될 무렵이면 해갈에 흡족한 양은 아니더라도 누렇게 죽어 있던 대지가 다시 생기를 되찾고 말라가던 계곡에 물소리가 다시 들릴 수 있는 비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도 물 한잔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아끼면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도 극성을 부리는 이 마당에 뉴질랜드 국민들이 가뭄의 시련도 한마음으로 함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