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고 자녀들이 새로운 학년에 적응하느라 분주한 요즘이다. 뉴질랜드는 고등학교까지 ‘무료’ 공교육 제도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기부금과 수업료, 교복 및 교재 구입비 등 뉴질랜드의 공교육은 결코 무료가 아니다. 5~19세 모든 학생들은 무료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고 학부모들은 기부금을 억지로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헤키아 파라타(Hekia Parata) 교육장관의 설명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13년 공교육 과정 교육비 35,000달러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가정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3년 동안 거의 3만5,000달러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공립학교를 다녔을 경우이고 사립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는 그 비용이 27만달러로 껑충 뛴다.
ASG(Australian Scholarships Group)라는 교육전문 지원단체가 1,000여 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공립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학생이 고교를 마칠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3만4,524달러로 나타났다.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돈은 수업료를 비롯해 교통비, 교복, 컴퓨터 등 학용품, 스포츠 활동이나 수학여행 경비 등을 망라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추산됐다.
공립학교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반사립(state-integrated) 학교는 9만3,251달러, 그리고 사립학교의 경우 26만9,943달러로 급증한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의 교육비는 더욱 늘어나, 오는 2027년 공립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1만7,499달러의 교육비가 들어가고 공립 고등학교 졸업까지 2만177달러의 비용 등 총 3만7,676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사립학교의 경우 오는 2032년 고교 졸업까지 들어가는 교육비는 10만7,962달러이고 전과정을 사립학교에서 공부시킬 때에는 32만3,814달러의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교육비를 항목별로 살펴 보면 공립학교에서는 과외활동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반면에 반사립 및 사립학교에서는 수업료(fee)가 가장 높았다. (표 참조)
지난 10년간 교육비 1.5배 상승
지난 10년간 뉴질랜드의 교육비는 1.5배 상승했다.
앞으로도 교육비용은 계속 늘어나 초등학교 1학년의 연간 교육비용이 올해 1,976달러에서 오는 2027년에는 3,781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교육열 높은 한국인 학부모들처럼 자녀에게 과외를 시킬 경우 사교육비까지 포함한 교육비는 한국 못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ASG의 존 벨레그리니스(John Velegrinis) 대표는 “교육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투자 가운데 하나이고, 어떤 경우엔 주택보다 더 큰 투자금액이 들어간다”며 “교육비용이 계속 증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경고했다.
오타고 대학의 루스 가쏜(Ruth Gasson) 박사는 “기부금 이외에도 학부모들이 학교에 기여해야 하는 부담감이나 자녀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내야 하는 비용이 많다”며 “학교의 요구는 언제나 가계의 돈 나가는 구멍”이라고 말했다.
가쏜 박사는 특히 높은 등급(decile)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두고 있는 저소득 가정들이 낮은 등급 학교의 학생 가정들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높은 등급 학교들이 일반적으로 낮은 등급 학교들보다 기부금 등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컴퓨터 요구하는 학교 늘어 학부모 부담 증가
최근 들어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등 개인용 컴퓨터를 요구하는 학교들이 늘면서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제품들은 대개 케이스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수 백 달러의 목돈이 들어 간다.
이 같은 ‘본인 도구 가져오기(BYOD, Bring Your Own Device)’ 학교정책은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에 발맞추어 고등학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찍부터 이를 시작한 오레와 컬리지를 비롯하여 교민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랑기토토 컬리지에서는 9, 10학년 학생들이 스마트폰이 아닌 컴퓨터 기기를 가져 가야 하고, 오클랜드 그래머의 경우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과정의 상급 학년 학생들은 본인의 랩톱을 가져갈 수 있다.
이들 학교 외에도 마운트 알버트 그래머와 린필드 컬리지, 파쿠랑가 컬리지, 엡솜 걸즈 그래머 등의 학교에서 의무적인 ‘BYOD’를 시행하고 있다.
학교들은 대개 인근 학용품 소매업체들이나 전자제품 소매업체들과 협약을 맺고 학생들이 구매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업체들로부터 기부받고 있다.
학교 자금 조달을 돕고 학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이 같은 관행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좋지 만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소비자보호원의 수 체트윈(Sue Chetwin) 원장은 협력업체들이 보통 디지털 제품의 보증기간을 연장해 주는데,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제공되지 않는 보증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혜택은 없다고 지적했다.
저소득 가정 급전 빌리거나 자녀 등교 미뤄
이처럼 새학기를 맞아 학교 비용이 치솟자 일부 저소득 가정에서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급전을 빌리거나 자녀의 등교를 미루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망게레 버드젯팅 서비스 트러스트(Mangere Budgeting Services Trust)의 다릴 에반스(Darryl Evans) 대표는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나 개인용 컴퓨터를 사 준 후에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찾고 있다”면서 “이들은 우선 음식비를 줄이게 되고 가족 모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에반스 대표는 그의 단체에서 돕는 저소득 가정들은 연중 렌트비를 지급하고 음식을 마련하느라 허리띠를 졸라 매다가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자녀들이 새로운 학년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학교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요구하고 있으나 많은 가정들이 단지 이를 구입할 돈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것.
그는 “컴퓨터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일부 가정들은 그들의 자녀가 소외받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지 않고 현금이 마련될 때까지 자녀들을 집에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운영위원회연합의 로레인 커(Lorraine Kerr) 회장은 ASG 보고서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특히 저소득 가정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학교운영자금을 인상해 왔다.
올해 학교운영자금 승인액은 총 12억3,000만달러 규모이고 앞으로 4년간 8,530만달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