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2014년에 서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던 에볼라(Evola) 바이러스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해 지구촌 주민들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가운데 특히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 중인 여성들을 더욱 공포스럽게 하고 있다.
이름도 다소 낯선 ‘지카 바이러스(Zika Virus)’가 범인인데, 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바이러스로 인해 오는 8월에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브라질에는 국가적 비상이 걸렸으며 2월 1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회의를 통해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PHEIC)’을 선포하기도 했다.
<전지훈련 중 조기 귀국한 한국 양궁대표팀>
한국 언론들은 2월 2일자로, 현재 브라질에서 2016 리우 올림픽을 대비해 전지훈련 중인 한국 국가대표 양궁팀이 당초 예정됐던 2월 11일보다 앞당긴 2월 4일에 조기 귀국한다고 보도했다.
대한양궁협회는 이는 브라질이 현재 지카 바이러스와 전쟁 상황이며 세계보건기구가 위기상황을 선포함에 따라 선수단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 이미 선수단은 출국 전에도 사전 교육을 받고 모기에 대비하던 중이었다.
중요한 대회가 열리는 현지에 미리 가보는 이른바 전지훈련은 비용만 문제되지 않는다면 대회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하루라도 더 그곳에 머물면서 적응력과 경기력을 높이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현지 기후가 경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양궁 같은 종목은 전지훈련의 중요성이 다른 종목보다도 훨씬 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서둘러 선수단이 귀국한다는 것은 그만큼 브라질 현지의 바이러스 확산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선수단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전지훈련 중인 다른 나라의 선수들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인해 훈련보다는 실내에 머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보도이다.
<왜 하필 브라질인가?>
그것은 이번 사태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게 된 진원지가 바로 브라질이기 때문이다.
1947년에 아프리카의 우간다 수도 캄팔라 인근 지카 숲에서 붉은털 원숭이에게서 발견된 지카 바이러스는 이듬해 같은 숲에 서식하던 아프리카 흰줄숲모기에서 동일한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1952년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는데, 이후 1954년에 나이지리아 동부에서 최초로 3건의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이 바이러스는 2015년 이전까지는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태평양 제도 등지의 적도 지역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발견됐으며, 발생 빈도가 적거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지역, 그리고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발생해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 5월에 브라질에서 첫 감염 사례가 발견된 이후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그 와중에 임산부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정상아보다 머리가 작은, 이른바 ‘소두증(小頭症)’을 가진 신생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계적 이슈로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소두증 신생아는 자라면서 뇌와 신체 등에 발육장애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작년에 브라질에서 소두증 신생아 출산사례가 연평균 100여 건에서 4천여 건으로 급증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현지에서 임산부를 중심으로 공포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어 12월에는 브라질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금년 1월에는 현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자국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한 미국 정부가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 국가들에 임신부들의 여행을 자제하도록 경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인과 관계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말초신경과 척수, 뇌신경 등에 작용해 신체 마비를 가져오는 길렝-바레(Guillain-Barre) 증후군과의 연관성도 대두되면서 공포를 키웠다.
결국 2월 1일 세계보건기구는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추세가 심상치 않게 빠른 상황이며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WHO 역사상 4번째로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포했다.
WHO가 이 조치를 선포한 건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2014년 소아마비, 그리고 2014년의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에 이어 이번이 역대 네 번째인데, 그 하루 뒤인 2일에는 중남미 국가인 온두라스가 3,600건이 넘는 감염 사례를 접수했다고 발표하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나섰다.
<전례 없는 빠른 확산 속도>
이번 발표에서 WHO는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이변(extraordinary event)’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그만큼 바이러스의 확산이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5월 브라질에서 첫 감염자가 보고된 이후 금년 1월까지 약 8개월 만에 29개국에서 감염 사례가 발견됐으며, 1월 31일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번 2월 들어서 태국에서도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첫 지역 감염자가 나오고 2월 2일에는 미국에서 해외여행자가 아닌 내국인 간의 성접촉으로 인한 첫 감염자가 나오는 등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2월 초 현재 최다 감염국가인 브라질에선 최고 150만 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4천여 건이 넘는 소두증 의심 사례가 보고된 상태인데, WHO는 내년까지 중남미를 포함한 전체 미주 지역 감염자 수가 300만~400만 명에 이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지카 바이러스가 1918년에 5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나 1968년에 100만 명 이상을 사망시킨 홍콩 독감처럼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는 이른바 팬데믹(pandemic) 현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중남미 중심으로 경제적 파장도 엄청날 듯>
이번 지카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된 나라들은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이며 이로 인한 세계경제 위축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미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휘청거리는 정도를 넘어 국가부도 상황까지 몰리던 브라질은 오는 8월에 남미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리우 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특수는커녕 오히려 올림픽이 경제의 발목을 더욱 잡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빠졌다.
작년에 -3.8%로 뒷걸음질했던 브라질 경제는 올해도 -3.8%의 역성장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권의 대형 스캔들까지 터진 상황에서 지카 바이러스는 그야말로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셈이 됐다.
실제로 브라질 정부는 올림픽 기간 동안 임신부들에게 자국으로의 여행을 자제해달라는 권고까지 내려야 하는 처지에 몰려 특수를 노리던 관광업계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이 같은 상황은 바이러스가 유행 중인 여타 중남미 국가들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다.
WHO는 이번 발표에서 지난 3차례 경보 발령 때와 달리 발병국가로의 여행이나 무역을 제한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나 WHO의 제한이 없더라도 이미 브라질을 포함한 관련 국가들의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미국 항공사들은 이들 국가로 여행하려던 임신부가 여행을 취소하면 취소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으며 한국 항공사도 같은 조치를 취하는 중인데, 반면 브라질 등지에서는 중상류층 임신부가 자국을 탈출하는 등 인적 유출과 함께 자본유출도 이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경제를 더 위축시키고 있는 중이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브라질의 관광산업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세계 9위 수준이며 국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이지만 실제로는 이 분야의 직간접적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8.8%인 880만 개에 달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는 물론 멕시코 등 중미 국가들 역시 이미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며, 앞으로의 바이러스 확산 추세에 따라 이 현상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태평양 국가들로 퍼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뉴질랜드는 안전한가?>
비록 지카 바이러스가 현재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의 에볼라나 메르스 등 다른 치명적 바이러스들보다는 일반인들에게 덜 위협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2~7일, 최대 2주 이내 37.5도 이상 열이 나면서 관절, 근육, 두통, 눈 충혈 증상 등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한 주 정도 가볍게 앓다 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아직 정확하게 상관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감염된 임신부가 소두증 신생아를 출산하거나 앞서 언급한 길렝-바레(Guillain-Barre) 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인데 현재 WHO에서는 상관관계 확인에 6~9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직까지 전용 백신을 비롯한 뚜렷한 치료책은 없으며 감염자는 대증요법 치료를 받는데, 2월 초에 세계 최대 백신업체인 프랑스 ‘사노피 파스퇴르’가 퇴치약 개발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이 회사는 작년에 지카와 유사한 뎅기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브라질에서 판매 승인을 받았다.
가장 좋은 예방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와 흰줄숲모기(Aedes Albopitus)에 물리지 않는 것이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 당국은 현재 군 병력 60%를 동원해 모기 방역에 나서는 한편 모기가 자라는 물웅덩이를 메우는 작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 뉴질랜드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는 모두 15개 종류 모기가 서식하고 있지만 지카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으로 알려진 ‘숲모기(Aedes)’ 종류는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는 확실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보다 더 큰 직접적인 문제는 내국인들이 많이 찾는 태평양 국가들에 지카 바이러스가 많이 퍼져 있다는 사실로서, 특히 2013년 10월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제도(타히티)에서는 총인구의 10%가 넘는 2만 8천여 명의 집단감염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최근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태평양 지역을 방문했던 와이카토 출신의 한 40대 남성이 길란-바레 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았던 것을 비롯해 2014년에 57건, 그리고 최근 9건 등 이미 국내에서도 이들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사례는 여러 차례 확인됐다.
한편 이웃 호주에서도 2월 2일에 카리브해를 여행하고 돌아온 감염자가 2명 발견된 이후 시드니 공항에서는 이집트숲모기까지 발견돼 방역에 비상이 걸렸는데, 그러나 이미 호주 북부의 열대지역에서는 이 모기의 서식이 확인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 국민들 역시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큰 우려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태평양을 포함한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지역을 방문할 때는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며 특히 임신부들은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