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기준금리를 네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인상했던 중앙은행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같은 포인트씩 인하하여 2.5% 제자리로 돌려놨다. 2.5%의 기준금리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제도를 도입한 1999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에 따른 경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했을 때에도 2.5% 밑으로 내려가진 않았다. 그런데 올해 이 사상 최저의 금리 수준이 깨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1월 기준금리 2.5%로 동결
중앙은행은 지난달 28일 열린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에서 동결했다.
중앙은행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바 있어 이번에 다시 내리기에는 너무 시기가 이르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지난해 총 네 차례의 금리 인하를 끝으로 사실상 추가 인하 가능성을 닫아둔 상태였으나, 이번에 입장을 다시 바꿨다.
16년내 최저인 물가가 앞으로 몇 달간 오르지 않는다면 다시 금리 인하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명확히 한 것이다.
중앙은행 그래미 휠러(Graeme Wheeler) 총재는 “통화정책은 계속 경기 부양적일 것”이라며 “미래 평균 물가가 목표 범위의 중간에 안착하려면 앞으로 몇 년간 추가 완화가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휠러 총재는 “경제지표 흐름을 자세히 관찰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올해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전의 기대보다 목표 수준에 도달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1999년 이후 최저
올해 처음 열린 중앙은행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올해 기준금리가 2%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뉴질랜드의 물가 상승률이 16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비자물가지수가 0.5%나 하락했다.
이는 2008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분기별 하락률이다.
통계청은 통상 4분기 소비자물가지수가 계절적으로 싼 채소가격과 연말 각종 할인행사 등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0.5% 하락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결과이다.
4분기 물가가 예상보다 크게 떨어지면서 지난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0.1%에 그쳤다.
지난 199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기름값이 지난해 8.1% 떨어지면서 소비자물가 하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름값 하락만 아니라면 소비자물가는 0.5% 상승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우유 및 달걀 가격이 8.7% 하락했고 휴대폰 가격도 8.5% 떨어졌으며 항공료(8.1%)와 텔레비전 및 컴퓨터 가격(7.8%)도 비교적 큰 폭으로 내렸다.
유일하게 물가가 현저히 오른 부문은 주택과 관련된 비용으로 렌트비가 2.5% 상승했고 재산세 및 수도요금이 5.5% 올랐다.
특히 부동산시장이 달아 올랐던 오클랜드에서 렌트비가 3.3%, 신규주택 건축비용이 7.2% 각각 올라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집값은 지난해 오클랜드에서 14% 급등하고 전국 평균 8% 올랐지만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빠르면 3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거나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할 때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에게 이득이고 경제 안정에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 즉 가격이 떨어지면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기업의 이익이 줄게 되어 세금이 덜 걷히고 임금도 줄어 전체 소비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경기후퇴를 촉발하기 때문에 이코노미스트들은 디플레이션을 인플레이션보다 더욱 큰 문제로 보고 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률 정책목표 범위를 1~3%로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장기적인 물가상승이 1% 미만으로 너무 낮게 유지되는 건 전체경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2월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면서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없이도 물가 상승률이 통화정책 목표범위 내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도 기준금리가 2.5%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 4분기 소비자물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는 이코노미스트들이 늘고 있다.
0.1%의 물가 상승률은 중앙은행의 정책목표 범위 1~3%를 한참이나 하회한다.
ASB의 제인 터너(Jane Turner)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하락이 심해져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6월이나 8월에 추가 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데일스(Paul Dales)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기준금리가 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뉴질랜드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초 6월 추가 인하를 예상했던 웨스트팩 은행은 이르면 다음 달에 금리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웨스트팩의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0.4%와 올 상반기에 1%를 넘을 것으로 예측했던 중앙은행이 큰 폭으로 떨어진 물가지수 자료에 당혹했을 것”이라며 “기름값이 계속해서 낮게 유지된다면 올해 인플레이션이 제로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낮은 낙농제품 가격과 오클랜드 주택시장 둔화 등을 고려하면 3월에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JP모건의 스티븐 월터스(Stephen Walter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휠러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해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면서 “최근 중앙은행은 매파적 언급을 해왔지만 다시 완화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ANZ은 아직까지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만할 경제환경의 변화가 없다며 2.5%의 기준금리 유지 의견을 견지했다.
디플레이션 위기 세계적 현상
기준금리 인하와 경기부양책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언이기도 하다.
IMF는 글로벌 경제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뉴질랜드를 포함한 각국에 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주문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압력은 뉴질랜드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시장은 이미 저물가 상황으로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국도 지난해 생산자 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0.4%나 떨어져 역대 최대 폭으로 하락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7%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국제유가 폭락을 꼽는다.
유가가 떨어지면 에너지 비용 감소로 생산자와 소비자 물가는 즉각 하락 반전한다.
각종 재화와 서비스 가격도 떨어져 디플레이션이 심화된다.
연초부터 국제 유가가 12년래 최저치까지 밀린 가운데 세계은행이 올해 유가 전망치를 기존보다 37.8% 가량 하향 조정한 배럴당 평균 37달러를 기록하고 향후 2년간 장기적으로 저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디플레이션 위기는 앞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