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실(Decile)’로 잘 알려진 학교 등급 제도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지원금 배정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교육부가 지난달 고문단을 구성함에 따라 그 같은 관측이 한층 분명해지고 있다.
데실은 정부 지원금 배정 위한 제도
지난 1995년 뉴질랜드 공립학교에 지원금을 배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된 데실 제도는 각 학교를 학생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5개 사회 경제적 지표에 따라 1부터 10까지 등급을 정한다.
이 때 사용하는 5개 지표는 전국 하위 20%의 소득 수준을 가진 가구 비율, 단순기술 직종에 종사하는 부모 비율, 가구 과밀 정도, 학교 졸업증이 없는 부모 비율, 복지수당을 받는 부모 비율 등이다.
이 지표들에 따라 가장 비율이 높은 상위 10%의 학교들이 데실 1의 등급을 받고, 그 반대가 데실 10의 등급을 받는 방식이다.
뉴질랜드 모든 공립학교들은 교육부로부터 1부터 10 가운데 하나의 등급을 부여 받는다.
사립학교들도 등급을 받지만 정부 지원금 혜택은 없다.
낮은 등급의 학교일수록 더욱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되는데, 데실 관련 지원금 비중은 데실 1 학교들에서는 전체 지원금의 9.5%이고 데실 10 학교들에서는 1% 미만으로 낮다.
2013년 인구 센서스를 토대로 2014년 11월 데실이 재조정되었는데, 전국 2,406개 학교 가운데 오클랜드 그래마(Auckland Grammar School)를 포함한 800개교가 하향 조정되었고 784개는 상향 조정되었으며 822개교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주택 부족을 겪고 있는 오클랜드의 많은 학교들은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당시 150개가 넘는 학교들이 새로운 등급이 공정하게 책정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그라함 스툽(Graham Stoop) 차관은 “학교 지역의 5개 요인들을 반영하는 데실 등급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원이 필요한 학교들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고 말했다.
데실을 둘러싼 오해들
뉴질랜드 공립학교들의 지원금 배정을 위해 도입된 데실은 그 동안 본질을 벗어난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즉 학부모의 평균소득이나 학교의 재정, 학교 교육의 질, 또는 학교의 인종 분포에 대한 척도로 그릇되게 인식되었고 심지어 지역 주택의 매매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뉴질랜드중고등학교교사협회(PPTA) 안젤라 로버츠(Angela Roberts) 회장은 “실력과 경험을 갖춘 교사들이 종종 낮은 등급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높은 등급의 학교들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며 “이는 높은 등급의 학교들이 대개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버츠 회장은 사람들이 데실로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가진 학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PPTA가 지적하고 있는 데실 산정에 대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전국 하위 20%의 가구소득을 가진 학생들만 감안하고 기타 80% 가구소득에 대한 정보가 없다.
□ 가구 과밀 정도에 대한 기준이 미흡하다. 침실당 3명은 침실당 8명과 같은 점수로 산정된다.
□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학교 졸업증 없는 부모를 두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 부모가 복지수당을 받지 않으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든 연간수입이 100만달러를 넘든 수입 규모에 상관없이 산정 점수가 같다.
데실 제도 폐지해야 할 때
교육학계에서 저명한 존 해티(John Hattie) 전(前) 오클랜드대 교수는 데실 제도는 전반적으로 잘 운영돼 왔지만 학교 교육의 질에 대해 부당하게 잘못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이를 폐지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언론에서 데실로 분류한 학교별 NCEA 합격률 등을 보도함으로써 학부모들은 높은 등급의 학교는 무조건 우수한 교육을 하는 학교이고 낮은 등급의 학교는 그 반대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마오리와 태평양 섬나라 학생 비율이 높은 저등급 학교에서 높은 등급의 학교로 전학하는 학생들이 늘었고 교사와 교장들도 높은 등급의 학교로 전근가는 것을 승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
전국적으로 데실 1-3 학교들의 학생수는 2000년에서 2011년 사이 12% 감소한 반면 데실 8-10 학교들의 학생수는 23%나 증가했다.
또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약 8만1,000명이 학군 밖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국 학생의 11%에 해당되고 오클랜드에서는 약 15%, 크라이스트처치 18%, 해밀턴 19%로 각각 나타났다.
캔터베리 대학 리즈 고든(Liz Gordon) 박사는 이른바 명문 학교들은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반면 저등급 학교들과 소규모 학교들은 반대 양상을 띠고 있으며 현행 제도가 그러한 경향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티 전 교수는 이제 가난한 지역 학생들에 수치심을 주지 않도록 데실 제도를 폐지하고 공정하게 지원금을 배정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새로운 학교 지원금 제도 검토
교육부도 데실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데실 제도를 폐지하고 학생들의 실패 위험도에 근거한 새로운 지원금 배정 제도를 검토 중이다.
데실을 대신할 새로운 제도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취학전 아동과 재학생들의 광범위한 자료를 이용하여
□ 전과 경력이 있는 부모
□ 본인 또는 형제 자매가 아동학대를 겪은 학생
□ 장기간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가족의 학생
□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어머니를 가진 학생 등의 요인들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네덜란드에서도 시행됐고 호주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도입된 바 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정부 예산안에서도 학교 지원금 변화에 대한 신호가 감지된다.
올 하반기부터 장기적으로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가족의 학생이 재적중인 학교에 주당 2달러를 추가적으로 지원한다.
정부는 그러한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1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들 학생들이 재적중인 학교에 연간 1,200만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교육부 헤키아 파라타(Hekia Parata) 장관은 지난달 학교 및 유치원, 교육노조 관계자 18명을 학교 지원금 제도 검토를 위한 고문단에 임명함으로써 데실 폐지가 한 발짝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파라타 장관은 “고문단은 조기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안들과 학생들이 최대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 지원금 제도에 대한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문단으로 임명된 뉴질랜드초등학교교사노조(NZEI) 루이스 그린(Louise Green) 위원장은 “가난한 학생들이 뒤쳐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교육부가 검토중인 방안이 가난한 지역 학교에 대한 오명을 학생들에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