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퇴치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2월말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 강력한 봉쇄 및 통제 조치를 비롯해 국경 제한, 검사 및 추적 프로그램 등으로 지역사회 내 코로나19 유행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 청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고 세계보건기구(WHO)도 뉴질랜드를 성공적으로 지역사회 전파를 종식한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변이 바이러스인 델타가 기승을 부리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17일 오클랜드에서 6개월 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고되자 그 날 밤 11시 59분부터 뉴질랜드 전역에 봉쇄 조치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열심히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봉쇄 수준을 가장 높은 단계에서 시작해 낮은 단계로 내려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근거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작년 3월 내려진 전국 봉쇄령이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선 상황과 비교하면 델타 변이의 높은 전염력을 우려한 발빠른 조치였다.
뉴질랜드가 이처럼 한 명의 신규 확진자 발생으로 봉쇄 조치를 취한데 대해 해외의 반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미국 CNN 방송은 뉴질랜드가 코로나19를 근절하려고 노력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며 최근 단 한 명의 신규 확진자 발생으로 봉쇄 조처를 시작했을 때 외부의 조롱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CNN은 델타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의 ‘제로 코로나 전략’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언론 타임스는 뉴질랜드를 가리켜 ‘신비한 사회주의 은둔국가’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는 뉴질랜드가 한때 환영받던 나라에서 ‘고립된 디스토피아’로 변했다고 비판했다.
뉴질랜드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한 조치를 고집한다는 비아냥으로 들린다.
CNN은 영국 언론의 이런 반응이 세계적으로 코로나 대처법에 대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뉴질랜드 정부의 코로나19 공중보건 전략 자문단은 지난 8월 대유행의 현 단계에서 최선의 전략은 퇴치라고 조언했다.
데이비드 스케그(David Skegg) 오타고대학 교수가 이끄는 코로나19 공중보건 전략 자문단이 정부에 전달한 정책 건의 보고서에서 완전한 박멸은 아니지만, 신규 사례를 막으려는 퇴치 전략이 보건과 경제적인 면에서 뉴질랜드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스케그 교수는 지난 8월 국회 보건위원회에서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것이다”며 “최우선 순위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19를 퇴치하는 것이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고 말했다.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코로나19 대응 장관은 최근 “델타 변이가 게임판을 뒤바꾸고 있다”면서 “기존 방역이 덜 강력하고, 덜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건부 애슐리 블룸필드(Ashley Bloomfield) 사무총장도 “델타 변이와의 싸움은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를 다루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드(With) 코로나’ 전략에 관심 돌리는 세계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각국은 이동 제한, 운영 금지와 같은 봉쇄 전략을 통해 유행을 관리해 왔다.
지난해 말부턴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예방 접종이 진행 중이지만, 델타 변이 확산으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 반을 넘기고 장기화하면서 코로나19를 아예 없애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국가가 늘었다.
영국은 지난 7월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모임 제한 등 기존의 방역 규제를 해제했다.
그 한 달 전인 6월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델타 변이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의 4차 유행에도 이동 제한이나 봉쇄 등 강력한 방역 조치를 배제한 ‘위드 코로나’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19를 인플루엔자처럼 중증화율과 사망률로 관리하자는 주장이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덴마크는 지난 8월 코로나19가 자국에서 더는 중대한 위협이 아니라고 밝히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취한 제한 조치를 9월부터 사실상 모두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이웃국가인 호주의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도 지난 8월 코로나19를 영원히 없애려는 전략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하며 코로나19와 공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리슨 총리는 “뉴질랜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뉴질랜드는 퇴치 전략을 따르고 있고 록다운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퇴치 전략을 유지하는 것을 동굴에서 생활하는 것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그랜트 로버트슨(Grant Robertson) 재무장관은 모리슨 총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전문가들이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까지 뉴질랜드는 퇴치 전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로버트슨 장관은 “모든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우리가 현재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퇴치라고 조언한다”며 “내가 얘기한 모든 전문가들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뉴질랜드를 위한 옳은 경로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치 전략으로 뉴질랜드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세계에서 낮은 치사율과 강한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던 총리는 “모리슨 총리의 발언에 개의치 않는다”며 “지난 18개월 동안 내려진 모든 결정들은 뉴질랜드에 관한 것이지 다른 나라들을 의식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케그 교수도 모리슨 총리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클 베이커(Michael Baker) 오타고대학 교수는 퇴치 전략은 아직 몇 국가와 호주의 몇 주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초부터 단계적 국경 개방
뉴질랜드는 코로나19로 닫혀진 국경을 내년 초부터 단계적으로 열어나갈 것이라고 아던 총리가 지난 8월 밝혔다.
아던 총리는 이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10월부터 12월까지 일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들에게 업무를 위한 해외여행을 허용하고 이들이 귀국했을 때 자가 격리나 단기간의 정부 관리 검역 격리 시설(MIQ) 수용 등을 시험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시험 기간이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발생했을 때 관리 능력도 점검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이 기간에는 백신 접종을 마친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이 승인된 국가들에 한해 단기간 출장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던 총리는 이런 시험 기간을 거친 뒤 내년 초부터 시행되는 단계적인 국경 개방에는 위험도에 따른 검역 체계가 새롭게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3개의 위험 경로로 나누어져 있다며 저위험 국가에서 입국하는 백신 접종 여행자들은 격리가 면제되고 중위험 국가에서 오는 여행자들은 일부 격리가 필요하지만 자가 격리나 MIQ 단기 수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거나 고위험 국가에서 오는 여행자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14일간 MIQ에 수용된다.
여행자들은 출발 전 검사와 입국 후 추가 검사를 요구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계획하는 1단계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뉴질랜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모든 접종 대상자가 최소한 1차 접종을 완료할 수 있도록 속도를 올리는 것이다.
2단계는 국민들의 접종 완료와 시험적인 국경 개방 등을 골자로 한다.
위험도에 따른 검역 체계 등을 시행하는 3단계를 거친 뒤에는 모든 백신 접종자들이 검역을 받지 않고 여행하는 4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아던 총리는 “우리는 각 단계에 들어갈 때마다 사전에 검증하고 평가할 것”이라며 “코로나가 계속 변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계속 변화에 맞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계적 개방은 코로나19가 뉴질랜드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퇴치 전략을 유지하면서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의 단계적 국경 개방 발표는 코로나19 공중보건 전략 자문단의 정책 건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경을 개방하더라도 초기에는 저위험 국가로 단기간 나가는 백신 접종 뉴질랜드인들의 출국으로 출입국을 제한하고 그들이 입국했을 때 5일에서 7일 정도 정부 관리 격리 시설에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보고서는 국경이 개방되면 백신 접종률이 높다고 해도 부분적으로 감염군이 생길 수 있고 때로는 그게 확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런 일이 일어나도 뉴질랜드는 공중 보건 대책을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코로나19가 유입돼 어떤 지역의 경보단계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뉴질랜드는 퇴치 전략을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접종 대상 인구에 대한 접종이 완료되기만 하면 국경 통제가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뉴질랜드뿐 아니라 호주와 쿡제도 등지에서 접종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면 여행안전 권역 국가 간 이동은 접종을 끝낸 성인들을 대상으로 시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뉴질랜드는 퇴치 전략을 쓰고 있어 다른 나라들처럼 집단 면역에 도달하는 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유입되는 바이러스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신 접종률에 의존하는 국경 개방 계획
국민당 주디스 콜린스(Judith Collins) 대표는 정부의 단계적 국경 개방 발표는 올바른 방향을 위한 단계지만 전적으로 백신 접종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던 총리는 낮은 백신 접종률이 국경 개방을 지연시킬 가능성에 대한 부분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액트(Act)당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백신 접종에 관계없이 내년 초부터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케그 교수는 국경을 개방하면 더욱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책에 관한 조언을 하는 경제인 자문단을 이끄는 브라이언 로슈(Brian Roche)경은 최근 뉴질랜드는 국경을 다시 열어야 북한처럼 고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슈 경은 어느 시점에서 국경을 다시 여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며 여러 가지 방안을 시험해보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뉴질랜드가 해야 하는 시험들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의 덫에 갇혀 있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남태평양의 북한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