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전세계 경제와 주택시장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매매가 끊기고 집값이 떨어지는 등 꽁꽁 얼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택 소유자들의 모기지 비율이 높은 뉴질랜드 경제와 부동산 시장에 대한 파급효과는 없는지 알아본다.
주택시장에 미국발 서브프라임 변수
미국발 서브프라임 충격이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과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침체 국면에 접어든 미국의 주택경기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주택경기 하락이 모기지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주택 매도 물량을 늘리면서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구조다.
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주택 관련 지표들은 미국 주택경기 악화 추세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의 8월 주택시장지수는 1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NAHB가 산정하는 '웰스파고 시장 지수'는 전달보다 2포인트 하락한 22로 집계돼 6개월 연속 하락하며 1991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50보다 낮으면 악화를 의미한다.
뉴질랜드 주가와 통화가치 폭락
뉴질랜드 경제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쇼크에 직격탄을 받은 부문은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다. 뉴질랜드 주가는 최근 한 달 새 10% 가까이 폭락했다. 주가지수인 NZX50은 4000대가 붕괴되며 지난해 12월 이래 최저치로 돌아섰다. 뉴질랜드 외환시장은 엔캐리 청산 우려감까지 확산되면서 3주간 엔화에 대해 14.4% 폭락했다. 미국 달러에 대해서도 지난 한달간 15% 가까이 떨어졌다.
역시 6.5%의 높은 금리로 엔캐리 트레이드 수혜를 받았던 호주달러도 같은 기간 엔화에 대해 가치가 10% 빠졌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 의존도가 큰 뉴질랜드 경제로서는 치명타인 셈이다.
전 세계가 유가 인상으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뉴질랜드 정부는 통화 가치 상승으로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통화 가치 하락이 지속되면 유가를 비롯한 각종 공산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세계적인 신용경색 사태 여파로 뉴질랜드 은행들도 돈줄을 죄고 있다. 올들어 브리지콥(Bridgecorp)에 이어 최근 나탄스 파이낸스(Nathans Finance)까지 부도가 나면서 규모가 작은 파이낸스 회사들의 연쇄 부도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뉴질랜드 주택시장 선진국 중 가장 위험
뉴질랜드 주택시장에 대한 뚜렷한 피해는 감지되지 않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쇼크가 주택 매물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특히 뉴질랜드의 부동산 시장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신용평가기관 피치가 선진 16개국의 부동산 시장을 조사한 결과 뉴질랜드 주택 소유자가 집값 하락과 금리 상승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 조사는 집값이 역사적 평균과 비교해 얼마나 과평가 되었는가, 가용소득 대비 부채는 얼마나 되는지 등 2가지 기준에 의거해 등급을 매겼다. 뉴질랜드 주택 시장은 첫번째 조사에서 4위, 두번째 조사에서 2위에 오르며 종합적으로 16개국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 호주의 경우 집값 재평가 취약성에서 10위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치는 호주가 지난 2003년말 시드니 부동산 폭등 이후 전반적으로 부동산 쪽에서 '연착륙'한 것이 이 같은 평가를 받게 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분석했다.
주택구매력 악화 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금리를 가진 뉴질랜드는 소득 대비 가장 버거운 금리를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금리가 4%임을 감안할때 뉴질랜드 기준금리 8.25%는 OECD 평균금리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피치는 총부채 대비 순재산 비율도 조사했는데 뉴질랜드 가구는 이 조사에서 다섯번째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의 주택구매력은 2000년 이후 현저히 떨어졌는데 평균 가구 가용소득에 대한 평균 집값 상승률이 4배에서 6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률은 1990년대 50%에서 2001년 9.11 미국테러 이후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고 고용과 소득이 견고한 성장을 하면서 2000년 이후 두 배로 치솟았다. 한편에서는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 은행의 대출조건 완화 등과 같은 요인도 집값을 견인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시중금리 인상으로는 연결되지 않을 듯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뉴질랜드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시중 금리 인상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ASB의 휴 부레트(Hugh Burrett) 대표이사가 전망했다. 부레트 대표이사는“국제 금융시장에서 들어오는 자금에 0.06~0.08%의 추가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계는 경쟁 시장이고 뉴질랜드 시장도 점진적으로 영향을 피할 수 없지만 현재로선 뉴질랜드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레트 대표이사는 그러나 ASB의 신규 대출이 20% 정도 감소하는 등 7월초부터 주택시장 활동이 확실히 둔화됐다고 밝혔다. 그는“우리는 주택시장의 둔화를 목격하고 있다”며“그것은 해외 금융시장의 충격보다는 중앙은행의 네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드디어 주택시장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부레트 대표이사는 뉴질랜드 경제에 자신감을 나타냈고 최근의 환율 하락은 수출업자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전이 경계해야
뉴질랜드부동산협회(REINZ)에 따르면 7월 주택매매 중간가격은 34만5,000달러로 두 달 연속 2,500달러씩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1년 전에 비해 10.4% 올라 여전히 두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쿼터블 밸류(Quotable Value)의 조사에서는 7월 주택판매 평균가격이 38만1,298달러로 지난 1년간 12.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쿼터블 밸류의 블루 행콕(Blue Hancock) 대변인은“부동산 매물과 바이어 모두 줄었다는 에이전트들의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며“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드디어 집값 하락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대한 전이가 안그래도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뉴질랜드 주택시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관계당국 뿐아니라 투자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