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위해 기꺼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마오리

“대의를 위해 기꺼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마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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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넘도록 이어지면서 엄청난 피해가 나고 있다. 


서방권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원조하는 가운데 외국인도 직접 참전 또는 구호에 동참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소수이지만 뉴질랜드인들도 있다. 

이들 중 지금까지 두 명이 사망한 데 이어 이달 들어 세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전직 뉴질랜드 군인이었던 그는 국제의용군으로 동참해 작전 중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를 중심으로 뉴질랜드인의 참전 과정과 함께 현지에서 벌어진 일을 그동안 국내외 뉴스를 간추려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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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이우 북서쪽의 파괴된 다리를 건너는 피난민들(2022. 3)

<1년 넘게 이어진 참혹한 전쟁> 

과거 소련 연방 소속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1991년의 소련 해체 후 2004년에 오렌지 혁명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서방(EU)으로 점차 접근하는 정책을 펴자 큰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에는 유로마이단(Euromaidan) 혁명을 통해 친러 정부가 무너지자 러시아는 크름(영어명: Crimea) 반도를 강제 합병했으며, 이와 함께 특히 러시아계가 많은 동부의 돈바스(Donbas)와 도네츠크(Donetsk) 지역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등 이번 전쟁 발발 이전에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됐다. 

결국 2022년 2월 24일(목)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특별군사작전’ 명령을 내려 러시아군이 전격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개전 초기에는 양국 군사력이 워낙 차이가 커 1, 2주면 러시아의 압승으로 끝날 것으로 대부분 예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대통령을 중심으로 군과 국민들이 똘똘 뭉쳐 결사 항전을 펼치면서 초반에 수도와 근접한 곳까지 진입했던 북부 전선의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등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권이 엄청난 물량의 장비와 군수물자를 지원하면서 전선이 정체된 가운데 동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3월 23일(목) 로이터에서 보도한 바로는 현재까지 사망자는 최소 4만 3000여 명이며 실종자가 1만 5000여 명, 그리고 1360만 명이 집을 떠났고 재산 피해는 US$ 4110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선 상황과 그동안의 전개 과정을 보면 러시아군에서만 전사자가 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더 설득력이 높아 실제 인명과 재산 피해는 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여러 나라가 침략국인 러시아를 제재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 지원에 나섰는데, 특히 미국은 지난 2월까지 300억 달러 상당이 넘는 엄청난 양의 각종 무기와 군수품을 보냈으며 나토 국가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도 무기와 군수품 그리고 각종 지원을 하고 지금도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에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 스포츠와 문화 등 전면적 제재가 가해졌는데,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북한 등 공산권 국가와 함께 인도 등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제재에 미온적이거나 음성적으로 지원에 나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열린 긴급 유엔 총회에서도, 작년에 이어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면서 러시아에게 조건 없이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평화 결의안이 141개 국가의 찬성 속에 통과됐지만, 북한과 시리아 등 7개 국가는 반대했으며 중국과 이란 등 32개 나라가 기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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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1주년을 맞아 평화 결의안을 가결한 유엔 총회(2023. 2)

<20여 명의 키위 국제의용군으로 참전> 

전쟁 발발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제 지원을 호소하는 한편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제법, 기본 인권과 평화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국제의용군(International Legion of Territorial Defense of Ukraine)’ 구성에도 협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전쟁 초기부터 각국에서 2만여 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쇄도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오클랜드의 우크라이나 명예영사는 500여 명의 뉴질랜드인들이 이메일로 문의했지만 영사업무 지원이 불가능하므로 가지 말라고 답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경이 인접한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했으며 그중에는 뉴질랜드인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고 나선 각국 정부도 자국민이 직접 참전하거나 우크라이나 입국은 법률적으로 금지하거나 또는 자제하도록 요구했으며 뉴질랜드 정부 역시 자제하라면서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영사업무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제적 관계를 고려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60개국 이상에서 2만여 명이 의용군으로 참전 중인 것을 추산되며, 구호 활동에 나선 인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뉴질랜드인들도 현지까지 날아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거나 구호 활동 중인데, 작년 8월 말 론 마크(Ron Mark) 전 뉴질랜드 국방부 장관은 키위 20여 명이 의용군에 동참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들 중 지금까지 3명이 사망했으며 첫 사망자는 지난해 8월 돈바스에서 전투 중 사망한 도미니크 브라이스 아벨렌(Dominic Bryce Abelen, 사망 당시 28세)이다. 

당시 국제의용군 소속이었던 그는 안개가 낀 새벽에 러시아 참호 공격을 이끌던 중 머리에 총을 맞아 미국 출신 의용군인 조슈아 존스와 함께 현장에서 죽었다. 

남섬 버넘(Burnham) 기지의 뉴질랜드 육군 보병연대(Royal NZ Infantry Regiment)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그는 당시 ‘무급 휴가(leave without pay)’ 중이었으며 해외 파병 경험은 없는데, 전쟁이 난 후 부대나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의용군에 동참했었다. 

지난해 10월에 조슈아 존스의 시신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포로 교환을 통해 우크라이나 측에 넘겨졌지만 당시 아벨렌의 시신은 반환되지 않았다. 

한편 올해 1월에는 구호 활동가인 앤드루 백쇼(Andrew Bagshaw, 사망 당시 47세)가 역시 우크라이나 동부인 바흐무트(Bakhmut)의 솔레다르(Soledar)에서 실종됐다가 몇 주 뒤 해당 지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영국 출신으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유전학 분야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작년 4월부터 우크라이나에서 구호 활동을 펼쳐오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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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의용군을 상징하는 패치

<NZ 육군 출신 ‘케인 테 타이’ 작전 중 전사> 

3월 21일(화) 국내 언론들은 전쟁 발발 이후 뉴질랜드 국적자로서는 세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고 일제히 보도했으며, 같은 날 외교통상부 대변인도 이를 확인해주면서,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또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더 이상 정보는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첫 보도가 나간 후 이튿날 국내 언론은, 참전 중인 또 다른 뉴질랜드 전직 군인인 동료의 말을 빌려, 전사자가 전직 뉴질랜드 육군이었던 ‘케인 테 타이(Kane Te Tai, 38세)’라고 신원을 밝혔다. 

조단 오브라이언(Jordan O’Brien)으로 알려진 그의 동료는 테 타이가 소속된 부대 지휘관을 통해 그가 전투 중 사망했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그는 자신이 전적으로 믿는 대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사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오리로 평화유지 활동차 아프가니스탄과 통가에도 파병됐던 그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육군에 복무했는데, 작년 8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죽기 전까지 ‘우크라이나 비밀 정보부대(secretive Ukrainian military intelligence unit)’의 정찰팀 리더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작년 4월에 현지로 떠나기 전부터 국내 언론에 널리 알려지고 그동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 및 가족은 물론 다른 많은 팔로워에게도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전선 상황을 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인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초에는 몇 달간 러시아군에 붙잡혔던 우크라이나 군인과 어두운 건물 안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 군인이 그를 보고 “뉴질랜드! 뉴질랜드!”라고 외치자 ‘마이 브라더’라고 응답하는 목소리가 담겼는데, 그는 지난 20일(월)부터는 소식이 끊겨 안위가 걱정되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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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전선에서 찍힌 케인 테 타이 모습

12세 딸이 있는 그는 오클랜드 비치 헤븐(Beach Haven) 출신으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예비 모병 제도(preliminary recruiting process)’를 통해 17세에 육군에 입대했다. 

그의 엄마는 공동체 정신이 강했던 테 타이가 늘 지역사회와 약자 보호에 나섰으며 이번 참전도 온 가족이 말렸지만 이미 성인인 그가 내린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입대했던 그가 21살 이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이번에 우크라이나로 향하면서도 전쟁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고 가족은 전했다. 

테 타이는 참전 후 한 국내 언론과 인터뷰 당시 ‘대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다(he was willing to die for the cause)’고 말했으며 실제로 그때까지 몇 차례 죽을 뻔한 경우도 겪었다고 전했고, 또한 뉴질랜드는 떠날 때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여행이 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떠나기 전 기부금 모금 사이트인 ‘기브어리틀’을 통해 방탄조끼와 헬멧 구입 등 필요한 경비 3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기도 했는데, 그는 현역 및 퇴역 군인들을 돕는 ‘노 더프 자선기금(No Duff Charitable Trust)’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현재 기금 공동 설립자인 에런 우드(Aaron Wood)는 야전병원에 안치된 그의 시신을 고국으로 데려오고자 노력 중인데, 통상 외국인 전사자는 현지에서 화장하지만 마오리 관습은 그렇지 않다고 우드는 설명했다. 

우드는 테 타이 모친도 아들이 고국에 묻히기를 바란다면서 이미 현지에서 뉴질랜드 전직 군인 3명이 폴란드까지 시신 호송에 자원했으며 기브어리틀을 통해 경비 모금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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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8월 전사한 도미니크 아벨렌(좌)과 올 3월 전사한 케인 테 타이의 생전 모습 

<대단한 행운까지 따라야 살 수 있다는 전장> 

한편 테 타이는 지난 2월에 미국 잡지 ‘더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린 전장 르포 기사인 ‘Trapped in the Trenches’를 통해 활약상이 상세히 전해진 바 있다. 

해당 기사에는 미 해병대 출신으로 코드 네임이 ‘닥(Doc)’이었던 한 군인을 중심으로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폴란드에서 국경을 넘어 국제의용군에 합류하게 됐으며, 이후 전선에서 어떻게 전투에 임했는지가 자세히 기술돼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근무했다는 닥은 이번 전장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겪은 후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투라고 말해, 그동안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치렀던 테러 조직과의 비정규전에 가까웠던 전쟁과 이번 전쟁은 양상이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중 테 타이에 대한 언급은 중간 부분에서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기자는 동부 전선의 마리우폴(Mariupol)에서 북쪽으로 50마일 떨어진 최전선에서 닥의 팀의 일원이자 코드 네임이 ‘터틀(Turtle)’이었던 테 타이, 그리고 홍콩 출신의 중국 이민자 자녀로 역시 뉴질랜드 전직 군인이었던 29세의 ‘타이(Tai)’를 처음 만났다고 적었다. 

기자는 마오리인 테 타이가 치밀하고 전문적이면서도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다고 그의 군대 이력을 곁들여 소개하면서, 그는 우크라이나로 오기 전 한 여성과 사귀던 관계도 끝냈고 건설 임대업체의 일도 그만두었으며 차와 집까지 팔았다고 이야기했다고 썼다.

또한 당시 전장이 넓은 들판으로 이뤄져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가운데 참호를 사이에 두고 장기간 대치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했으며, 테 타이가 속한 팀의 주 임무가 적의 참호를 찾아내는 정찰이었다면서 특히 테 타이가 주변 지형을 세밀하게 지도에 묘사해 놀랐다고 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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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현재 우크라이나 전장 상황을 보여주는 지도 

한편 해당 기사를 보면 지난해 8월 도미닉 아벨렌이, 당시 국제의용군에 막 합류한 테 타이와 타이를 자신과 같은 부대에 배치해달라고 우크라이나군 당국에 요청했던 것으로 나왔는데, 특히 타이는 과거 이라크에서 아벨렌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또한 기자는 8월 24일 아벨렌이 전사하던 때의 상황도 자세히 밝혔는데, 당시 러시아 병력과 야간에 치열한 근접전이 벌어졌으며 날이 밝으면서 철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고 미국 테네시주 출신의 조슈아 존슨도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가 결국 사망했으며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려 했지만 불가능했었다고 적었다. 

기자는 이후에도 테 타이와 동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전한 가운데, 이 전쟁터에서는 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라도 저격을 당할 수 있으며 참호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체력과 함께 비참한 일상에서 무뎌지는 감각을 그대로 두지 말고 경계심을 갖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며, 여기에다가 커다란 행운까지 따라줘야 한다고 적기도 했다. 

또한 아벨렌의 시신 송환 문제를 언급하면서, 뉴질랜드 군인은 해외에서 죽으면 시신을 송환해 동료 군인의 퍼레이드와 함께 마오리식 추모인 하카를 실시한다면서, 테 타이와 타이가 아벨렌의 시신을 찾아 송환해 이처럼 장례를 치를 수 노력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국제의용군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계약에 따라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는 정규군 지위가 부여되지만 러시아는 이를 용병으로 간주해 무시한다. 

현재도 인터넷과 각국에 나가 있는 우크라이나 대사관 등을 통해 국제의용군이 모집되고 있는데, 의용군 참가자는 원하는 경우에는 언제든 현지를 떠날 수 있고 특정한 요구나 작업은 거부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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