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하던 뉴질랜드 교육 제도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력은 모든 학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등교하지 않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30년 후 뉴질랜드의 미래가 매우 우려된다고 입을 모은다. 뉴질랜드 교육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부터 고교 NCEA 제도까지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뉴질랜드 미래 세대 위협하는 교육 위기
대학들은 학부생들의 기본적인 읽기 및 수학 실력 부족과 에세이 쓰기 능력 부족을 우려한다.
뉴질랜드 고교 졸업 자격 제도인 NCEA가 학생들의 학습력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비 시험 결과들에 따르면 쓰기 시험에 통과한 학생들은 3분의 1에 불과하고 읽기와 수학 시험에 통과한 학생들은 3분의 2 정도였다.
경제계에서도 미래 뉴질랜드 경제를 짊어질 학생들의 학습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코노미스트 카메론 바그리(Cameron Bagrie)는 뉴질랜드가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사회∙경제적 문제로 교육을 뽑았다.
바그리 이코노미스트는 “30년 후의 뉴질랜드 경제 지표를 꼽는다면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 성과만한 것이 없다”며 “요즘 학생들의 학업 성과나 출석률을 보면 30년 후 뉴질랜드가 어떻게 될지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기초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기초 문제들에 대처하는 시급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에듀케이션 허브(Education Hub) 웹사이트 설립자인 니나 후드(Nina Hood) 박사도 모든 교과목들에 걸친 뉴질랜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하향과 교육 시스템에 내재한 심한 불평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후드 박사는 “이런 규모의 문제로 볼 때 학생들을 비난할 수 없고, 교육 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교육 제도가 현재 형태로 학생들의 지식과 기술, 능력 등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드 박사는 교육 시스템이 오늘날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면 현재와 같은 학교 제도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업 성과 떨어지는 뉴질랜드 학생들
뉴질랜드 학생들의 핵심 과목 학업 성취도는 지난 20년 동안 국내와 국제 수준에서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6년 국제읽기능력향상연구(Pirls, Progress in International Reading Literacy Study)와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뉴질랜드 학생들의 읽기와 문해력 수준은 떨어졌다.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뉴질랜드 학생들의 20%는 읽기와 쓰기에서 낙제했다.
또 20%는 수학에서도 뒤졌고 18%는 과학에서 낙제했다.
2019년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 결과에 따르면 뉴질랜드 5학년과 9학년 학생들의 절반은 수학 성취도가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학년과 9학년 학생들의 3분의 1은 과학 성취도가 제 학년보다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유니세프(Unicef) 보고서에 따르면 15세 뉴질랜드 학생들의 3분의 1은 읽기, 쓰기, 수학 등에서 기본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다.
국내에서도 2019년 학생성취국가관찰연구(NMSSA, National Monitoring Study of Student Achievement) 결과에 따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성취가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4학년의 경우 교과과정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읽기에서 37%, 쓰기에서도 37%, 수학에서 19%로 나타났다.
하지만 8학년의 경우 이 비율은 각각 44%, 65%, 55%로 모두 늘었다.
절반 이상의 8학년 학생들이 제 학년의 쓰기와 수학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새로운 NCEA 레벨1에 대한 소규모 시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쓰기를 통과한 학생은 3분의 1에 불과하고 읽기와 수학을 통과한 학생은 3분의 2 정도였다.
내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이 새로운 NCEA 표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점을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여학생의 50%는 쓰기 시험을 통과한 반면 남학생은 25%에 그쳤다.
폐지된 데실(Decile) 제도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인 데실1 학교들의 학생들은 2%만 쓰기 시험을 통과했고 데실10 학교들 학생들은 62%가 통과했다.
뉴질랜드 학생들이 뒤쳐지는 이유
지난 2020년 교육부의 내부 문서에 따르면 현재의 읽기 교육이 많은 학생들에게 확실히 통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약간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의 학습 발달에 대해 현재 뉴질랜드 교육이 구조적인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학과 과학 과목은 특히 초등학교에서 많은 교사들이 가르칠 지식이 부족하여 등한시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제는 학교 교육의 초기에 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학업 성과는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동안 학생들에 읽기와 쓰기, 기본 수학 등을 잘 교육해야 성인이 된 후 더욱 높은 학력과 취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기간에 읽기보다는 수학을 잘 하는 경우가 나중에 학업 성적과 경제적 성공에 연관된 것으로 조사됐다.
여러 요인들이 학생들의 학습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가정 출신 학생들은 출석률이 낮고 학업 성취도가 낮다.
가장 부유한 데실10 학교들은 가장 가장한 데실1 학교들보다 높은 학업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모든 데실 학교에 걸쳐 핵심 과목들의 성적이 떨어지고 있는 사실은 교육 제도 안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후드 박사는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높은 수준의 결석률, 가정 환경 등이 학생들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후드 박사는 또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도 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 두 요인은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드 박사는 뉴질랜드가 지난 20년 동안 모든 교육 시스템을 조율하는 국가적 읽기 전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싱크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NZ Initiative)’도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을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지난 2007년 현재의 교육 과정으로 바뀐 이후 학생들의 학업 성과가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현행 교육 과정은 교사들에게 충분한 수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특히 모든 과목을 다뤄야 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학생들의 학습 경험이 지역마다 다르고 내용과 난이도도 달라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평가이다.
오클랜드 대학 지식교육연구소 엘리자베스 라타(Elizabeth Rata) 교수도 표준화된 국가적 커리큘럼이 없어 학교마다 교육하는 지식 수준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방법도 열띤 논쟁을 벌인다.
특히 읽기에서 발음 중심 어학 교수법과 전체 단어 접근 방식간의 이른바 ‘읽기 전쟁’이 뜨겁다.
잔 티네티(Jan Tinetti) 교육장관은 학교마다, 또는 반마다 다른 교육 방법으로 학생들이 다르게 교육받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교육부는 현재 읽기, 쓰기, 수학 등의 교과 과정과 교육 방법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면적인 교육 검토 필요
‘뉴질랜드 이니셔티브’는 뉴질랜드 교육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부터 교사 훈련, 고교 NCEA 제도까지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조사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우리 학교들 구하기: 뉴질랜드 교육 위기 해결책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떨어져만가는 학생들의 학업 성과를 다시 올리고 뉴질랜드 교육을 다시 세계 최고로 올려놓기 위한 8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뉴질랜드 이니셔티브’의 마이클 존스턴(Michael Johnston) 박사 등이 조사한 이 보고서는 우선 교육훈련법을 교육 성과에 맞춰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현행 교육 과정이 빈약한 지식 수준이고 교사들에게 충분한 수업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교육 과정이 각 학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개요를 보여주고, 교사들에게 교육의 순서에 관한 안내를 제시하며 윤리를 독립된 과목으로 교육할 것을 추천했다.
고교 NCEA 제도는 학생들이 점수를 따기 쉬운 과정을 선택하여 학점 취득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에 보고서는 각 과목에 학기말 한 번의 외부고사와 학기 중 한 차례의 내부시험을 제안했다.
교육 방법과 관련해서는 인간의 인지 발달과 관련된 학습에 관한 초점이 부족하고 초등학교 교사들이 모든 과목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우수한 교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보다는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호주의 4단계 구조와 비슷한 접근법으로 승진도 전문적 표준에 대한 증거에 기초해서 교장과 고참 교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문적 표준은 교과 과정 지식, 학습 과정 지식, 학습 과정의 설계 및 행정 능력, 교사 및 학교 커뮤니티와의 관계, 학생들의 학업 진전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는 또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1년간의 사범 교육을 받지 않고 현장 실습을 통해 교사가 되는 과정을 제안했다.
교사가 부족한 과목들의 교사들에게 상여금을 주고 해외의 교사를 더욱 쉽게 채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험에 대해서는 더욱 자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매년 읽기, 쓰기, 수학 과목에 대해 학생성취국가관찰연구(NMSSA)를 실시하고 4학년 이상 학생들은 매년 과학 시험을 보도록 하여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대한 믿을만한 자료를 확보하고 학생 성적에 대한 학교들의 책임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뉴질랜드교육조사카운슬(NZCER)은 교육과 학습에 관한 일반화할 수 있는 대규모의 양적 조사에 초점을 다시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