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 뉴질랜드 언론들은, 중앙 정부가 앞으로 더욱 빈발할 기상 재해와 함께 그리 멀지 않은 미래, 당장 내일일 수도 있는 때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재앙적 수준의 지진(catastrophic earthquakes)’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경고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각부 장관이 교체되면 각 부서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면서 또한 대비해야 할 숙제거리를 종합적으로 작성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여기에는 사회적 이슈인 갱단과 치안 확보, 이민자 관리와 금연 정책, 그리고 농촌 지역의 광대역 인터넷망과 같은 다양하고 세부적인 사안들이 대거 포함됐지만, 그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뉴질랜드라는 국가를 뿌리채 흔들 수 있는 거대 자연재해 발생 가능성과 그 대책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남북섬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거대 지진을 중심으로 이번 정부 보고서의 내용과 함께 관련 연구기관들의 자료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 사이클론으로 물에 잠긴 북섬 동해안의 마을 전경
<크게 늘어난 비상사태 선포 일수>
‘비상 관리 및 복구부(Minister for Emergency Management and Recovery)’의 마크 미첼(Mark Mitchell) 장관에게 제출된 보고서에서 담당 공무원들은, 현재 국가가 직면한 각종 위험과 함께 그러한 위험 상황이 발생하는 횟수도 늘었다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2018년에 이뤄진 분석에서, 뉴질랜드가 자연재해로 인한 재정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수준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순위임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연간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가 선포된 전체 일수가 2014년에는 단 하루도 없었지만 지난 2019년에는 31일이나 됐고 또 지난해는 90일로 더욱 늘어났는데, 작년 비상사태 선포일수는 모두 홍수나 사이클론 등 기상재해로 발생했다.
지난해를 포함해 최근까지 나타났던 기상 재해는 비상관리 시스템까지 마비시켰고 해당 지역사회에는 파괴적인 결과도 가져왔지만, 그중 예컨대 ‘사이클론 가브리엘(Cyclone Gabrielle)’의 피해는 뉴질랜드가 과거나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재난을 놓고 비교해볼 때는 ‘중간 규모(moderate-scale event)’에 불과한 사건으로 간주됐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지구 기후 변화에 의해 이전보다 더욱 심각해진 기상 재해는 과거가 아닌 지금 수준이 이제는 일반적이고 아주 흔한 기준이 됐다고 지적하는데, 이러한 기상 재해는 결국 ‘홍수(floods)’와 ‘산사태(slips)’, ‘가뭄(droughts)’과 ‘열파(heatwaves)’와 함께 ‘산불(wildfires)’을 불러오면서 당연히 이전보다는 훨씬 더 자주 더 큰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 ‘히쿠랑기 섭입대’의 단면 구조
<히쿠랑기 섭입대 지진 “사상자 수만 명과 1,440억불 이상 피해 부른다”>
하지만 대형 지진은 기상 재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다.
최근까지 이어진 연구 자료는, 남섬 ‘알파인 단층(Alpine Fault)’이나 북섬 동해안의 ‘히쿠랑기 섭입대( Hikurangi Subduction Zone)’에서는 거대 지진 및 쓰나미와 같은 재앙적 사건이 우리 세대, 아니면 우리 자녀 세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파괴적인 지진은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천 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낼 수도 있으며, 또한 이보다 작은 중간급이나 소형 지진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회복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보고서는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 중 지진에 대한 언급 중에는, 50년 안에 ‘히쿠랑기 섭입대 중심(major Hikurangi Subduction Zone)’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25%라고 추정하는 분석이 포함됐다.
이 지진과 동시에 발생할 쓰나미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집을 잃으며, 주택을 포함한 건축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면서 건조물 피해액만 1,440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질 연구기관인 GNS에 따르면 히쿠랑기 섭입대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킬 위험한 지역이며 세계적으로도 강한 지진이 발생할 위험 지역 중 하나이다.
현재 GNS는 MBIE로부터 600만 달러를 지원 받아 국제 파트너들과 협조해 해당 지역의 바다 지층을 시추하는 등 5년에 걸쳐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히쿠랑기 섭입대는 북섬과 남섬 사이에 위치한 지질 구조로 지각에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태평양판(Pacific Plate)’이 가벼운 ‘호주판(Australian)’ 아래로 파고드는 곳으로, 판 경계의 지하에서 축적된 막대한 에너지로 지질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강진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이 지역이 중요한 데는 지질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인구 밀집 지역이자 경제 중심지인 웰링턴이 포함됐다는 점인데, 이에 따라 지진 예방 및 대응 시스템의 개발과 강화는 해당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히쿠랑기 섭입대에 대한 연구는 지구과학 연구의 주요 대상 지역 중 하나로 이곳의 지각 활동 및 지질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서로 다른 지각판이 상호작용 과정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를 통해 지진 및 쓰나미 위험에 대한 경고 시스템을 개발하고 더 나은 재난 대처 방안 모색에도 기여할 수 있어 일본을 비롯한 지진 다발 국가의 과학자들도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 히쿠랑기 섭입대의 해저를 연구한 선박
<알파인 단층대 “최소 8.0 지진, 50년 안 발생 가능성 80%”>
북섬의 히쿠랑기 섭입대와 더불어 강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곳은 남섬 전체를 북동부에서 남서쪽으로 600km에 걸쳐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알파인 단층(Alpine Fault)’이다.
이곳 역시 태평양판과 호주판이 만나며 히쿠랑기 섭입대와는 달리 판 경계가 육상으로 드러난 곳인데, GNS는 이 단층이 세계적으로도 이동 속도가 빠른 매 1,000년마다 수평으로 약 30m씩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곳은 지난 1,200만년 동안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지각을 들어올려 수직으로 20km나 치솟았는데, 그럼에도 서던 알프스 산맥의 최고점(마운트 쿡, 3,724m)이 4,000m 아래로 유지되는 것은 빠른 침식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알파인 단층에서는 지난 900년간 모두 네 차례 ‘파열(ruptures)’이 발생했으며 마지막 파열은 1717년으로 추정되는데, 평균적으로 330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던 이와 같은 파열로 지금까지 있었던 네 차례 파열에서 모두 규모 8.0 이상의 지진을 동반했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서도 또다시 언급됐지만, 문제는 앞으로 50년 안에 다음 파열이 75% 확률로 발생하고 그러면 최소한 규모 8.0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확률이 80%나 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만약 알파인 단층이 파열하면 유럽계가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진 중 하나가 터질 것이며, 이는 결국 남섬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피해와 혼란을 야기하고 수많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알파인 단층 지역은 이와 같은 강력한 지진 위험성 외에도 지질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곳으로 단층과 화산 활동 및 산악 지형 등 아주 다양한 지질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전 세계 지구 과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 대상 지역이며 또한 지진 예방 및 안전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계속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 알파인 단층과 남섬의 주요 단층
남섬에는 알파인 단층 외에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크고 작은 단층이 곳곳에 널려 있는데, 지난 2010년 9월 다필드(Darfield)에서 규모 7.1의 ‘캔터베리 지진’이 난데 이어 2011년 2월에는 인구 밀집지대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규모 6.3의 ‘크라이스트처치 지진’과 이후 잇따른 여진으로 185명의 인명 피해를 포함해 막대한 물적 피해를 본 바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다필드 인근에서 난 지진은 이전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단층에서 발생했으며, 이 단층은 호주와 태평양 지각판 경계에서 남동쪽으로 80~90km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린데일 단층(Greendale Fault)’으로 명명됐으며 지진으로 단층 일부가 지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11월에는 노스 캔터베리 내륙의 쿨버든(Culverden)을 진원지로 발생한 규모 7.8의 ‘카이코우라 지진’으로 동해안에서는 해안이 단번에 6m나 융기해 바다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남섬의 북동쪽 끝인 케이프 캠벨(Cape Campbell)이 1m 이상 융기했을 뿐만 아니라 북북동 방향으로 2m 이상 움직여 남북섬이 가까워지는 등 지진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당시 지진은 ‘험프스 단층(Humps Fault)’을 비롯해 여러 단층에서의 파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까지 연구된 지진 중 가장 복잡한 지진으로 묘사됐으며, 이는 유럽계가 이곳에 정착한 이래 발생한 두 번째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지진은 진원지 인근에서 나온 사망자 2명 등 인명 피해를 포함해 철도와 도로 등 노스 캔터베리 지역의 인프라에 막대한 피해를 준 것 외에도 상당히 떨어진 웰링턴에서도 여러 건물에 피해가 날 만큼 강력했다.
또한 구스 베이(Goose Bay)에서 최고 높이 6.9m, 그리고 뱅크스 반도의 리틀 피전 베이(Little Pigeon Bay)에서 높이 5m에 달하는 쓰나미가 닥치는 등 캔터베리 일대에 쓰나미 경보령이 내려졌다.
당시 쓰나미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크라이스트처치 동부 해변 동네인 뉴브라이턴에서는 주민이 대피한 사이에 몇몇 주택에는 도둑이 들어 비난을 이는 가운데 비상 사태 시 치안 문제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당시 무너진 절벽
<정부와 국민 “달라진 상황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자세 필요”>
자연재해와 관련된 이번 보고서는 이와 같은 지진 외에도 전 지구적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홍수와 산사태, 가뭄, 폭염 및 산불 발생이 이전보다 더 늘어나고 정도도 심각해지면서 그에 따른 비상관리 시스템의 개선 역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초 오클랜드 홍수와 사이클론 가브리엘 내습 등 최근 들어 나타났던 일련의 기상 재해는 비상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했는데, 통신과 구조 장비를 비롯해 대피 시설 등 관련 시설과 장비도 문제지만 대처하는 인력관리에서도 큰 문제점이 드러났다.
실제로 알파인 단층에서 강진이 발생하면 남섬에서 북섬으로 전력 공급도 영향을 받게 되며, 산사태와 강물 범람 등으로 도로가 끊기면서 퀸스타운이나 피오르드랜드, 웨스트 코스트 등지에서는 수만 명의 방문객과 함께 주민이 졸지에 고립되고 장기간 격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서는 식수와 전력 공급도 당장 문제가 되는데, 카이코우라 지진 당시에도 관광객이 카이코우라에 고립되면서 선박을 동원해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연료와 의약품, 식수를 비롯한 생필품은 해군 보급함이 실어날랐고 한동안은 헬리콥터가 주요 운송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당시에는 통제된 도심에 묶여 상당한 기간 동안 꺼내지 못했던 차량만 무려 4,500대 이상이었다.
특히 초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각 자치단체의 대응 역량이 충분하지 못한 점도 이번 보고서에서 언급됐는데, 국가적인 재난이 벌어지면 중앙정부 역시 인력 문제가 비상사태 관리에 문제가 될 것으로 지적됐다.
재난 규모가 비교적 작더라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이 역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따라 우선 국민 개개인이 자연재해에 자발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한편 중앙과 지방정부 그리고 지방정부 간의 비상관리 시스템의 정보 교환 및 장비 공유 등 상호 연결성을 개선해야 하며, 당국과 일반 주민 및 국제 파트너의 지원을 받는 공동 접근 방식이 재해 대응의 효율성을 올린다는 의견도 보고서에서 함께 지적됐다.
결국 뉴질랜드에서도 강진을 비롯한 각종 자연재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규모로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대처도 효율성을 중심으로 강화해야 하는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또한 개인 및 각 가정도 당국에만 기대지 말고 평소 비상용품과 필수 의약품, 식수, 비상식 등을 미리 챙기고 대피 계획을 숙지하는 등 달라진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