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말발굽에서 튄 불꽃이…

철로, 말발굽에서 튄 불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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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산불을 비롯해 야외에서 일어난 화재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크라이스트처치의 ‘포트 힐스(Port Hills)’에서 발생했던 산불은, 시민들로 하여금 7년 전 같은 곳에서 발생해 국가비상사태까지 발령하게 만들었던 초대형 산불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지역비상사태만 발령됐고 소방 당국의 신속한 진화로 700여 헥타르의 숲과 초지를 태운 채 꺼져 한숨을 돌렸지만 현장 정리는 3월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야외 화재가 잇따르고 또 발화 위험성이 여전한 가운데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은 국가적 대비와 투자가 시급하며, 소방 자원과 전술 등 여러 문제가 빨리 충분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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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이스트처치의 ‘포트 힐스’ 화재 현장


<오클랜드 도심을 연기로 뒤덮은 수풀 화재> 


3월 7일(목) 새벽부터 오클랜드 도심 일부 지역이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 


원인은 뉴턴(Newton) 로드 고가도로가 위로 지나가는 노스웨스턴 모터웨이 인근의 수풀 지대에서 전날 밤 자정 무렵에 발생한 불이 순식간에 번졌기 때문이었다. 


이 불로 소방차 8대를 포함한 대규모 소방 인력이 동원되고 모터웨이가 일시 폐쇄됐는데, 불길은 곧바로 고가도로 밑에 설치된 ‘시설(service ducts)’까지 옮겨붙었다. 


진화하기 불편한 위치로 불이 옮겨붙는 바람에 호흡 장비를 부착한 소방관들이 고가도로 위에서 구조물 틈새로 물을 쏟아부었으며, 또한 고가 아래에서도 위로 물을 어렵게 쏘아대면서 진화하는 낯선 풍경이 벌어졌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연기가 그래프턴(Grafton) 지역을 가득 채웠다면서, 이번 화재로 부근 여러 건물에서는 연기감지기가 작동해 소방서에 신고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당시 현장의 복잡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화재는 진압됐지만 구조 전문가들이 고가도로를 점검해 피해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면서, 이번 화재는 소방관들에게 상당히 이례적이면서도 어려운 진화 작업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은 당일 바로 보도되지는 않았는데, 한편 당시 화재로 일부 신호등이 아침부터 꺼져 일대 교통이 혼잡을 겪었으며, 짙은 연기가 퍼지자 보건 당국은 인근 주민들에게 창문을 닫고 실내에 머물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6020d935ddd1975213b10bda8cea1e77_1710278869_1332.png ▲   포트 힐스 산불 진화에 나선 헬리콥터


<철로에서, 말발굽에서 튄 불꽃이 초대형 산불로…> 


2월 1일부터 크라이스트처치를 포함한 캔터베리에서는 소방 당국이 야외 ‘불 사용(open- air fires)’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포트 힐스 화재를 비롯한 큰불이 잇달아 났다. 


셀윈(Selwyn)의 커위(Kirwee) 인근에서는 1월에 이어 2월 초에도 대규모 초지 화재로 80헥타르가 불타면서 한때 수십 가구가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당시 한낮 최고기온이 31C까지 치솟고 극히 건조한 날씨에 바람까지 강하게 불면서 피해를 키웠는데, 이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고 짙은 연기가 인근 지역을 덮으면서 보건 당국이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당시 이곳의 잇따른 화재는 크라이스트처치와 서해안을 잇는 철도의 기차 바퀴와 궤도 사이에서 마찰로 생긴 불꽃이 주변으로 번진 것이 원인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실제로 야외에서 불 사용을 금지한 현지 소방 당국은, 용접 작업은 물론 농업용 기계나 잔디깎기 같은 일상적 활동도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이른 아침처럼 조금이라도 불이 날 가능성이 적은 시간에 작업하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 달 18일에는 노스 캔터베리 후루누이(Hurunui)의 와이카리 밸리(Waikari Valley)에서도 대형 산불이 나 강풍 속에서 급속하게 번지자, 당시 포트 힐스 화재로 헬리콥터를 비롯해 가뜩이나 부족했던 소방 인력과 장비가 두 곳으로 나뉘어 진화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화재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편 당시 한 주민은 말발굽이 바위와 부딪히며 불꽃이 튈 수도 있어 말을 타고 목장을 돌아다니는 일도 삼가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야외 화재의 발화 원인은 다양한데, 버려진 담배꽁초는 물론 강풍으로 인한 나뭇가지 사이의 마찰이나 낙뢰, 고압선 불꽃, 그리고 깎아서 모아놓았던 풀이 썩으면서 나는 불 등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도 많다. 


또 도로를 달리는 차량에서 생긴 불꽃이 주변 풀밭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으며, 여름이면 직사광선으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지는 철도 레일 역시 또 하나의 발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다 바비큐나 생선 훈제, 쓰레기 소각 후 뒤처리를 완전하게 하지 않아 밤새 살아남았던 불씨가 이튿날 바람에 날아가고, 또 굴뚝에서 나온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진 경우도 있는데 불씨가 3km나 날아가 불을 붙인 경우도 있다.  


한편 이웃 호주에서는 토양에 철 성분이 풍부해 낙뢰 때문에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데, 여기다가 가연성 물질을 잔뜩 품은 나무 종류도 많다 보니 산불이 대규모로 확대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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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꺼지지 않는 불씨, 때로는 땅속에서 뿌리를 타고 번지기도 한다


<맹활약 드론, 공중 진화 더욱 중요해져 > 


국내에서는 매년 3,000~4,000건 산불이 나는데 지난해 10월부터 이번 여름의 산불 시즌이 시작된 이후 포트 힐스 산불까지 2,700건이 잇달아 발생해 4,100헥타르가 넘는 지역이 불에 탔으며,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올 시즌에는 4,500건 발생으로 7,300헥타르가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산불 횟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지구 기후변화로 갈수록 평균기온이 오르고 건조한 기후가 길게 이어지는 데다가 바람까지 거세지다 보니 작은 불이 대형 산불로 확대될 가능성이 이전보다 더욱 많아졌다는 점이다. 


빅토리아대학 ‘뉴질랜드 기후변화연구소(NZCCRI)’ 선임 연구원인 나다니엘 멜리아(Nathanael Melia) 박사는, 뉴질랜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산불 기후에 직면해 있고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곳도 이제는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한 지금 뉴질랜드는 정부 차원에서 앞으로 수십 년간 화재 진압에 대한 투자가 충분한지 여부를 즉각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멜리아 박사는 상세한 기후 시뮬레이션과 일일 관측을 통한 연구는 특히 남섬 내륙에서 산불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거라는 뚜렷한 예측을 보여준다면서, 이것이 소방방재청(FENZ)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자원, 전술 및 기술의 전략적 조정이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고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해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따뜻한 해였고 2024년까지 엘니뇨가 이어지는 와중에 ‘심각한 화재 발생 위험 기준치’보다 약 30%나 높았던 포트 힐스의 ‘바싹 마른 관목(tinder-dry scrub)’이 가연성을 키웠으며, 화재가 시작된 2월 13일에는 유난히 건조한 상대습도를 보인 강한 북서풍이 시속 40~50km로 불었다면서 이번 포트 힐스 화재를 당시 기후 상황을 중심으로 따로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상과 공중을 통한 신속하고 적절한 소방 당국의 대응만이 화재가 더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실제로 포트 힐스 현장에서는 헬리콥터를 주로 이용해 큰 불길을 잡은 뒤 ‘핫 스폿(Hot spot)’을 찾는 과정에서는 열감지기를 부착한 드론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산불처럼 인력 접근이 어려운 지형에는 헬기와 함께 드론도 필수 장비로 등장했다.  


멜리아 박사는 이미 제반 여건이 악화했다면서, 호주의 ‘블랙 서머(Black Summer) 산불’과 유사한 상황이 매켄지 컨츄리(Mackenzie Country)와 어퍼 오타고(Upper Otago) 및 말버러(Marlborough)와 같은 지역에서는 매 3~20년 주기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상황 변화는 단순히 환경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이며 심각해진 산불 위협은 지역사회, 정부의 식목 계획, ‘산림 탄소(carbon forests)’ 사업에 대한 재정적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6020d935ddd1975213b10bda8cea1e77_1710278987_8571.png ▲ 포트 힐스 화재 현장에서 활약한 드론   


<산불 진화는 속도와 기동성이 생명> 


한편 국내 토종 나무 중에는 꿀로 유명한 마누카(manuka)를 비롯해 카누카(kanuka)나 라타(rata) 등 불이 붙기도 쉽고 잘 타는, 이른바 ‘가연성(inflammability)’이 높은 나무가 많다. 


목질이 단단한 카우리(kauri) 역시 가연성이 높은 데다가 불에 아주 취약한데, 이처럼 뉴질랜드의 자연림은 토종 생태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가연성이 높은 나무들로 인해 불이 한번 붙어 퍼지기 시작하면 진화가 어렵고 잔불 정리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와 같은 환경에 따라 현재 뉴질랜드 소방 당국은 산불이 대규모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히 초기 진화 단계에서의 대응 속도와 함께 기동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접근이 어려운 외떨어지고 지형도 험한 곳에서 나는 산불도 많은데, 통상 경사면 각도가 10도 증가할 때마다 산불 확대 속도는 두 배가 되고 확대 속도가 빨라지면 온도도 더 올라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한다.  


특히 북섬에 비해 서던 알프스 산맥이 있는 남섬은 지형도 더 험하지만 적은 인구 때문에 소방 인력과 자원 역시 취약해 헬리콥터와 같은 항공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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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의 야간 비행과 이를 통제하는 조종기 화면 모습


현재 소방 당국은 1만 1,000 비행시간에 상당하는 연간 약 1,000만 달러를 일반 소방 항공 예산에 할당하는데, 포트 힐스 화재 당시 초기 이틀 동안에 최대 15대의 헬리콥터가 투입되면서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쓰였다. 


소방방재청은 주로 ‘property insurance levies’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심각한 산불이 늘어나면서 포트폴리오에 맞게 자금 조달 모델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기후변화는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일부 해안 주택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등 보험시장에 변화를 불러왔는데, 산불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대해서도 보험회사가 비슷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산불 예측 및 관리를 위한 전문 기술 및 모델링에 대한 연구 및 투자와 함께 농어촌의 자원봉사 소방대를 포함해 전체 소방 당국의 화재 대응 신속성을 더 높이고 인력과 장비 운용의 효율성도 향상해야 하는 입장이다. 


나아가 화재 위험이 많으면 접근 제한을 더 강화하고 발화 위험 활동을 금지해 위험을 낮추는 한편 화재 현장에서 민간의 드론 비행, 그리고 무단 불꽃놀이의 처벌을 강화하는 등 관련 정책 및 규제 체계의 정비 또한 중요하다.  


한편 산불 위험과 대비에 취약한 지역사회에 대한 교육도 중요한데, 전문가들은 소방 방재 분야에 대한 투자 증대와 함께 기술 혁신과 장기 전략을 세우면서 지역사회 주민의 참여도 촉진하는 등 국가적으로 통일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신불과 관련해 신속하게 달라진 환경에 전략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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