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로 이민오는 사람들은 감소하고 뉴질랜드를 떠나는 사람들은 증가하면서 순유입을 유지 중인 이민 추세가 조만간 순유출로 반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정부가 투자이민의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비자를 신설하는 등 이민 정책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화된 이민 정책이 침체된 경제를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몇 개월 안에 이민 순유출로 반전 전망
현재의 이민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몇 개월 안에 외국으로 나가는 뉴질랜드인들이 들어오는 이민 인구보다 많은 이민 순유출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교역노조카운슬의 크레그 레니(Craig Renney) 정책이사는 뉴질랜드를 출국하는 사람들이 입국하는 사람들보다 많아지면서 교차하는 포인트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며 최근 그같이 경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1월 뉴질랜드에 도착한 이민자는 1만2,800명, 떠난 사람들은 1만600명으로 2,200명의 이민 순유입을 기록했다.
이는 1년전의 7,100명에 비해 69% 감소한 수치이다.
레니 이사는 순이민 감소가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입국하는 이민자들은 대부분 오클랜드나 크라이스트처치 등과 같은 대도시에 정착하지만 떠난 사람들은 팔머스톤 노스, 애쉬버튼 같은 중소 도시에서 살았었다면 그러한 지역들의 경제 성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며 “경제 성장이 고객 수에 기초한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경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그같은 경향이 앞으로 2~3개월 안에 출입국 조사에 반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뉴질랜드를 떠나는 사람들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고임금 고기술의 인력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뉴질랜드 이민 동향 (자료: 뉴질랜드 통계청)
2026년에는 연간 순이민도 마이너스로 전환 경고
경제 컨설팅회사 인포메트릭스(Infometrics)의 브래드 올슨(Brad Olsen)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월간 순이민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에 동의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월간 평균 순이민은 2,336명으로 2023년의 1만명에 비해 크게 줄었고 팬데믹 이전 2017~2018년의 4,000명보다도 적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인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에 살려고 온 이민자들도 다시 뉴질랜드를 떠나는 상황이다.
올슨 이코노미스트는 “실업이 늘고 구직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해외 인력에 대한 필요가 줄면서 이민자 유입도 감소했다”며 “실업 증가와 고용 약화로 앞으로도 이민자 유입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실업률은 5.1%로 상승하면서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4분기 고용은 0.1% 감소,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실업자 수는 3분기보다 7,000명 늘어난 15만6,000명이고 임금 상승률은 변동이 없었다.
인포메트릭스는 올해 월간 이민 흐름이 예상대로 이어진다면 2026/27년에는 연간 순이민도 마이너스로 전환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BNZ의 마이크 존스(Mike Jones)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간 순이민은 항상 고르지 못했고 현재 월간 약 2,000명의 순유입을 나타내고 있다”며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면서 순이민은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존스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성장이 경제 침체기에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이용돼 왔으나 지난 이민 붐 동안 보여주었듯이 그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며 “전체적으로 인구 성장으로 인한 수요에 대한 영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은 반면에 노동 시장에 대해 공급 측면에 대한 영향은 더욱 명확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이민 비자 문턱 낮춘다
이민자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회복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정부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이민용 ‘액티브 인베스터 플러스(AIP)’ 비자의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에리카 스탠퍼드(Erica Stanford) 이민장관은 오는 4월 초부터 투자이민용 언어 시험을 폐지하고 투자자의 의무 체류 기간 등 잠재적 장벽을 낮추기로 했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또 투자이민 비자를 ‘성장’과 ‘균형’의 2가지 범주로 개편하고 투자 허용 범위를 확대한다.
성장형 투자이민 비자는 3년간 사업이나 펀드에 최소 500만달러를 투자하고 뉴질랜드에서 3년 동안 21일만 체류하면 자격이 주어진다.
또 균형형 투자이민 비자는 5년간 주식, 채권, 부동산에 최소 1,000만달러를 투자하고 105일간 머물러야 한다.
스탠퍼드 장관은 고위험 투자자 외의 투자자를 위해 선택 범위를 넓혔다면서 관련 업계와 협의 과정에서 이미 많은 지원자가 관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뉴질랜드의 투자이민 비자는 2022년 말 규정 변경 이후 신청이 급감했다.
니콜라 윌리스(Nicola Willis) 재무 및 경제성장 장관은 “2022년 노동당 정부에서 도입한 투자이민 제도 하에서 단 7,000만달러만 투자되었다”며 “이는 이전 제도 하에서 2020년까지 2년 동안 22억달러였던 것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자 요건을 완화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입을 다시 활성화할 계획이다.
스탠퍼드 장관은 “자본은 매우 이동성이 높으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사업을 할 안전하고 안정적인 국가를 찾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제 투자자들이 목적지로 뉴질랜드를 선택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 비자를 더 간단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의 필 트와이포드(Phil Twyford) 이민대변인은 “자금을 부동산과 같은 수동적 투자에 묻어두고 영주권 구입을 허용하는 것은 뉴질랜드에 일자리 창출이나 지속적 경제 발전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모든 이민자들이 아닌 부자들에게만 영어 시험을 폐지하는 것은 키위 방식이 아니다”고 말했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 도입
정부는 지난달 27일 세계 각지를 떠돌며 원격으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최대 9개월간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디지털 노마드(nomad, 유목민)’ 비자를 도입했다.
이날 윌리스 경제성장장관, 스탠퍼드 이민장관, 루이지 업스턴(Louise Upston) 사회개발장관은 공동으로 성명을 통해 방문 비자를 받고 뉴질랜드에 입국한 사람도 해외 기업을 위해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가 아닌 해외 기업에서 보수를 받으며 원격 근무를 하는 경우로 정보기술(IT) 인력이나 인플루언서 등이 해당한다.
이날부터 관광이나 가족 방문 등 모든 방문 비자를 받고 입국한 사람은 신청할 수 있으며 체류 기간은 최대 9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스탠퍼드 이민장관은 “사람들이 이곳에 더 오랜 시간 머물고 더 많은 돈을 쓰며, 이곳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이 뉴질랜드를 찾고 일하기에도 이상적인 곳으로 인식하길 원하며 이는 뉴질랜드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침체한 관광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다.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뉴질랜드에 장기 체류를 하게 되면 의식주 소비활동을 하고 덩달아 식당, 카페, 숙박, 관광 등 관련 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뉴질랜드에서 관광 산업은 두 번째로 큰 수출 수입원으로 연간 11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2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뉴질랜드는 강도 높은 봉쇄 정책을 펼쳤고, 봉쇄 정책이 종료된 현재 뉴질랜드를 찾는 외국인 방문객 수는 2019년의 86%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부과되는 이른바 ‘관광세’를 기존 35달러에서 100달러로 대폭 올려 관광업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윌리스 경제성장장관은 “새로운 비자 규정을 통해 뉴질랜드를 세계 인재들이 찾는 안식처로 만들려 한다”며 “우리는 부유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이 뉴질랜드에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목민들이 물과 풀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듯이 ‘디지털 노마드’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돌면서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IT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컨설턴트, 작가, 번역가와 같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굳이 업무가 회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3,000만~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도입되고 있다.
지난 2023년 비슷한 비자 제도를 도입한 스페인에서는 그 부작용으로 수용 한계를 초과하여 지나치게 많은 여행객들이 들어오며 발생하는 기술적, 사회적 문제를 의미하는 ‘오버투어리즘’이 거론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작가 마타 바우셀스(Marta Bausells)는 뉴질랜드 ‘모닝 리포트(Morning Report)’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이후 디지털 유목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지난 5년 동안 렌트비가 60% 급등했다고 전했다.
바르셀로나는 디지털 유목민들로 이미 ‘오버투어리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자와 구별되는 관광객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 디지털 유목민들은 지역 주민보다 높은 연봉을 본국에서 받고 있기 때문에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부유층의 유입으로 인해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존 저소득층 주민들이 경제적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급속히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우셀스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어디에 있고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의 확대는 궁극적으로 국내 근로자의 보호, 국가 간 이중과세 등 여러 가지 노동법과 세법 문제 등을 낳을 수 있다.
윌리스 경제성장장관 등은 뉴질랜드에서 90일 이상 일한 경우 뉴질랜드 세법 상의 거주민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디지털 노마드’들이 목적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생활비, 교통 인프라, 교통비, 기후와 공기, 인터넷 속도, 치안, 공무원의 부패지수, 외국인 커뮤니티와 밤 문화의 유무, 문화와 건축양식, 다양한 식문화 등 10개를 꼽았다.
노동당의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대표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성공하는데 필요한인프라가 뉴질랜드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