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뉴질랜드 교도소에 대한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가운데 교도소를 실제로는 갱단이 장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교정부(Department of Corrections)’는 갱단이 아닌 부서에서 교도소를 통제한다고 주장했는데, 하지만 보고서에서는 갱단이 어떻게 교도소를 쥐락펴락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뉴질랜드 교도소의 현황과 함께 그 운영 실상을 이번에 나온 보고서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을 종합해 소개한다.
▲ 확장 공사 중인 와이카토의 ‘와이케리아(Waikeria) 교도소
<전국 18개 교도소에 9,900명 수감 중>
현재 뉴질랜드에는 총 18개의 성인 교도소 및 교정 시설이 있으며 그중 16곳은 남자 교도소로 10개는 북섬에, 그리고 5개는 남섬에 있다.
그중 오클랜드 교도소는 1968년 문을 열었고 오클랜드의 북쪽 파레모레모(Paremoremo)에 위치하다보니 흔히 ‘파레모레모 교도소’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은 국내 유일의 최고 보안 등급의 감방을 갖고 있어 국내에서 가장 폭력적인 범죄자를 수용하고 있으며, 총 680명에 달하는 범죄자를 가둘 수 있다.
또한 오클랜드 남부 ‘위리(Wiri)’를 비롯해 웰링턴과 크라이스트처치 등 모두 3곳에 있는 교도소는 여성 범죄자만 수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오클랜드 위리를 비롯해 로토루아와 파머스턴 노스, 캔터베리의 롤레스턴 등 4곳에는 ‘청소년 보호 시설(Youth justice residences)’이 따로 있다.
이 시설에는 전통적으로 16세 이하의 청소년을 수용했지만 지난 2019년 법률을 개정해 지금은 17세와 18세도 수용할 수 있는데, 이 시설은 교정부가 아닌 ‘아동부(Ministry for Children, Oranga Tamariki: OT)’가 관장한다.
한편, 뉴질랜드 성인 교도소는 <Minimum>, <Low>, <Low-Medium>, <High>, 그리고 <Maximum> 등 모두 5개의 ‘보안 등급(security levels)’이 있다.
최근 나온 보도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는 1996/97년에는 평균 약 5,000명 수준이었다가 2009년에 8,520명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에는 9,000명을 넘어 현재는 9,900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교정부는, 재소자는 9,000여 명이며 이외에 교도소 밖에서 보호 감호를 받는 2만 7,000여 명을 1만여 명의 교정부 직원이 관리 중이라고 웹사이트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향후 10년간 재소자가 1만 1,5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특히 강력한 법과 질서 회복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이 이어지면 최대 1만 3,900명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참고로 오래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지난 2001년에 교정부는 종신형 재소자에게 드는 비용을 300만 달러로 추정했는데, 현재는 한 명을 1년간 가두는 데 15만 달러가 쓰이며 2024년 교정부의 운영 예산은 19억 4,000만 달러였다.
▲ 길버트 교수와 그의 저서 ‘Patched: The History of Gangs in New Zealand’
<연구를 주도한 재로드 길버트 교수는? >
교도소 실상을 파헤친 이번 보고서는, 범죄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재로드 길버트(Jarrod Gilbert) 캔터베리대학 교수가 주가 돼 교정부 의뢰를 받고 작성했다.
길버트 박사는 오랫동안 갱단 활동을 비롯한 범죄와 사법 분야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해왔는데, 2013년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패치드: 뉴질랜드 갱단의 역사(Patched: The History of Gangs in New Zealand)’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책에서 갱단에 대한 10년 연구를 바탕으로, 1950년대 등장한 비행 청소년 그룹인 ‘bodgies and widgies’를 시작으로 1960년대의 ‘헬스 엔젤스(Hells Angels)’와 다른 ‘바이키(bikie)’ 갱단의 부상, 그리고 1970년대 ‘몽그렐 몹( Mongrel Mob)’과 ‘블랙 파워(Black Power)’의 성장, 나아가 당시까지 마약과 조직범죄를 중심으로 한 갱단 활동의 변화상을 소개했다.
그는 또한 뉴질랜드의 범죄, 경찰 및 교도소 역사와 현황, 그리고 형사 소송 절차의 작동 방식과 마오리와 사법 제도, 청소년과 갱단, 심리학 및 미디어와 같은 주요 현안을 다룬 ‘Criminal Justice: A New Zealand Introduction(2017)’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2019년에는, 뉴질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뒤 20세 때 호주로 넘어가 악명 높은 바이커 갱단 중 하나인 ‘Rebels’에 가입했다가 결국 2017년에 추방당한 셰인 마틴(Shane Martin)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A Rebel in Exile’도 펴냈다.
북섬 하우라키 마오리 ‘나티 마루(Ngati Maru)’ 부족 출신인 셰인 마틴은 호주 여성과 결혼했는데,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Australian Football League(AFL)’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 중 한 명인 더스틴 마틴(Dustin Martin)이다.
뉴질랜드 헤럴드지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길버트 교수는 범죄 문제와 관련해 정기적으로 언론에 기고하며 갱단 이슈가 터지면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전문가이다.
그가 주도한 이번 연구는 지난 2020년부터 시작했으며 보고서에는 크라이스트처치와 리무타카, 황가누이 지역 교도소 직원과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도 포함됐다.
▲ 경찰이 압수한 갱단 패치
<치약과 그을음으로 만든 갱단 문신>
보고서에서는, 한 젊은 재소자가 ‘깨끗하고 멀쩡한 얼굴(nice, clean face)’로 보안 등급이 높은 교도소에 입소한 후 몇 주 만에 볼에 갱단 문신을 새기는 사례가 많다면서, 이는 갱단이 교도소 환경을 ‘위계적인 구조(hierarchical structure)’로 바꾸고 ‘폭력과 공포심(fear and violence)’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문신에 사용한 잉크는 보통 치약과 함께 불에 태운 ‘플라스틱 식기(plastic utensils)’의 ‘그을음(soot)’을 이용해 만든다.
한편, 연구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3년간 갱단 소속 재소자는 1,262명에서 3,34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는데, 이는 전체 재소자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연구진은 교도소 내에서 갱단이 ‘상당한 비공식 통제력(significant informal control)’을 가지며, 교도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특히 보안 등급이 높은 시설에서는 갱단 문화가 절대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선의 한 교정부 직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갱단이 교도소를 운영하는 게 현실이라며 심각성을 인정했고, 또 다른 직원도 아마도 교도소 내에서 갱단이 가장 큰 문제일 거라면서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교정국 고위 관계자는 보고서가 갱단 상황을 공정하게 표현했지만 주로 재소자 간 권력관계를 설명한 것일 뿐이라면서, 교도소를 운영하는 게 갱단이라는 말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문제의 본질은 갱단이 갱단 아닌 재소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감옥 내 비공식적인 위계의 최상위에 갱단이 자리하면서 재소자 사이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연대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Otago Corrections Facility의 내부
<원숭이 우리로 바뀐 교도소 계급 사회>
한 재소자는 갱단이 재소자 간의 전통적인 ‘윤리 강령(code of ethics)’을 ‘힘과 두려움(strength and fear)’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효과적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원숭이 무리가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안 괜찮은지를 명령하는 것(the biggest group of monkeys in the cage that dictate what is okay and what is not)’이라고 교도소를 동물원에 빗대어 표현했다.
실제로 보고서는 교도소 사회에서 재소자는 ‘계층(tier)’으로 구분한 4단계 계급 구조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 첫 번째 계층으로 간주한 인원은 갱단을 포함하며, 두 번째는 갱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평판이 좋은 일반 재소자(civilians in good standing)’이다.
세 번째 계층은 ‘하층 일반 재소자(civilian underclass)’이고, ‘천민 또는 추방자(pariahs)’라고 불리는 계층이 네 번째인데, 이들은 교도소 내 불문율을 어긴 재소자들이다.
갱단은 그룹에 속하지 않은 재소자를 ‘시민(civilians)’ 혹은 ‘중립인(neutrals)’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을 ‘peasants(소작농)’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하찮은 존재를 의미하는 ‘bundies’라고 경멸적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한편, 보고서는 재소자가 교도소 내에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주요 규칙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앞잡이 행위 금지(no narking)’와 이른바 ‘tea-leafing’으로 불리는 ‘은밀한 절도 행위 금지(no covert stealing)’, 그리고 ‘아동 성범죄자 절대 배척’이다.
앞잡이 행위 금지 규칙으로 인해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보고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재소자는 감옥에서 50차례나 싸웠지만 실제로 발각된 것은 8번뿐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몸을 다쳐도 이를 알리지 않는 것도 일반적인데, 교정 직원이 괜찮은지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답하는 게 일반적인 교도소 풍경이다.
갱단 소속 재소자가 폭행에 연루된 비율은 갱단 소속이 아닌 경우보다 훨씬 높은데, 한편 갱단 중에서도 패치형 갱단과 LA 스타일 갱단이 폭행 사건에 가장 많이 연루된 반면 오토바이 갱단이 연루된 사건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 감방을 점검하는 교도관과 탐지견
<교도소 경제는 치킨과 니코틴이 화폐>
재소자는 최대 200달러까지 허용하는 ‘영치금(trust account)’을 이용해 그 한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잡화와 세면용품, 우표와 과자류를 주당 70달러까지 구입할 수 있다.
이번 보고서는 교도소 안의 재소자 간 비공식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는 바로 ‘닭고기(chicken)’였다.
치킨은 주 1~2회 저녁으로 주는 주요 단백질 공급원으로 교도소에서는 매우 귀중한 자원으로 통하는데, 한 재소자는 다른 ‘다진 고기(mince)’는 부실하고 치킨만큼 좋지 않다면서, 치킨은 교도소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고기라고 말했다.
치킨 조각은 약 5달러에 거래되며, 한편 일명 ‘로지(lozzies)’로 알려진 니코틴 알약인 ‘nicotine lozenges’는 12개짜리 한 판이 5~15달러에 팔린다.
이는 보통 갱단이 개인적 소비를 위한 것이지만 돈을 버는 한 방법으로 물건을 재판매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는데, 특히 니코틴 정제는 취약한 재소자에게서 빼앗아 이에 의존하는 재소자에게 팔거나 때로는 빼앗긴 재소자에게 다시 판 경우도 보고됐다.
또한 갱단은 신입 재소자를 협박해 이들을 착취하며, 일부는 ‘임대료(rent)’ 명목으로 갱단에게 정기적으로 치킨을 바치는 게 일상인데, 한 재소자는 치킨이 나오는 날이면 특정 갱단에게 무조건 바쳐야 하며 만약 거부하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마약 밀반입도 교도소 경제에서 중요하지만 의외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데, 그 이유는 비싼 가격과 더불어 지루한 감옥 환경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재소자는 감방 동료와 필로폰을 하고 난 뒤 밤새 깨어 있어야 했으며 감방에서는 결국 할 일이 없어 심심하게 TV 광고만 보게 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반해 대마초는 개당 10달러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담배 역시 손으로 마는 빈약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개당 5~10달러에 팔리고 수요가 많았다.
▲ 어퍼 헛의 리무타카(Rimutaka) 교도소 감방
<교도소는 갱단의 신병 모집소>
이처럼 재소자 사이에 갱단의 위협이 커지자 자발적으로 ‘보호 감호(protective custody)’를 요청하는 재소자도 급증했다.
2018년에는 전체 재소자의 24.5%였던 보호 감호 신청자가 2023년에는 35% 이상으로 늘어났다.
보호 감호 구역은 폭행 피해를 걱정하는 재소자만으로 구성하며 재소자는 언제든지 이를 신청할 수 있지만 믿을 만한 사유와 함께 교도소 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길버트 박사는 보호 감호 증가는 갱단 영향력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문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이런 추세를 보면 결국 갱단과 비 갱단 등 사실상 2개의 ‘평행한 교도소 시스템(parallel prison systems)’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현실화하면 그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교도소 운영을 실제로는 갱단이 한다는 말까지 나온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은 교도소가 갱단의 신병 모집소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보고서에서도 강조한 점인데, 많은 신입 재소자가 가입할 생각이 없었다가도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 보호를 구하는 과정에서 결국 갱단의 일원이 되고 만다.
한 재소자는 감옥에 들어왔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블랙 파워’ 친구들이 나를 가족처럼 받아줬다고 말했다.
갱단 상징인 문신도 신입을 옭아매는 요소 중 하나인데, 교도소에서는 CD 플레이어 모터나 전기면도기를 개조하고 칼과 펜을 이용해 즉석 문신 기계를 만들고, 잉크는 불에 탄 플라스틱 그을음을 치약이나 샴푸와 섞어 만든다.
이런 갱단 문신을 새긴 재소자가 석방 뒤 문신을 지우려면 비용도 많이 들어 사회 복귀가 더 어려워지며, 이는 결국 갱단이 재소자를 붙잡아 두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은 교도소 갱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갱단과 비 갱단 재소자를 균형 있게 배치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재소자를 신속히 격리하며, 또한 교도소 직원의 교육을 강화하고 갱단 중립 구역이나 교도소를 신설하는 등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인 갱단 자체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길버트 박사는 일부 고령의 갱단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정치적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런 실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듯 한 교정 직원은, 예전 스타일의 갱단 재소자와 달리 젊은 갱단원은 훨씬 더 폭력적이며 자신과 갱단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길버트 박사는, 교도소 문화는 근본적으로 재소자가 만드는 것인 만큼 젊은층과 노년층 사이 갱단의 인식 분열을 이해하는 게 이 문화를 바꾸는 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수감자를 포함한 사회적 갱단 지도자를 다양한 역할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음이 입증됐으며, 또한 이러한 상황이 변했다는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선제적인 정책 결정은 정치적 뒷거래 위험에 따르는 결과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나라이건 교도소라는 특수한 장소는 일반 사회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이기 마련인데, 이번 보고서는 뉴질랜드 국민이 그동안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일들이 감옥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하지만 재활 프로그램과 교육 및 직업 훈련을 통해 재범의 악순환을 끊고 삶을 바꾸도록 한다는 교정부의 운영 목적과는 달리, 갱단으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는 현실은 씁쓸함을 넘어 나라의 미래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다만 사정이 이런 가운데 이번 보고서에서 재소자와 직원들 인터뷰를 통해, 교도소 현장에서 직원들의 ‘부패(corruption)’는 드문 현상이라고 묘사한 사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그나마 한 가지 위안거리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