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문화원 이사장, 이난우 씨

한솔문화원 이사장, 이난우 씨

0 개 1,545 김수동 기자


 
한솔문화원은 뉴질랜드 교민들께 ‘문화’를 매개하는 역할을 맡고자 한다. 책은 적극적으로 짬을 내어 읽지 않으면 자꾸 멀어 진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대해서만 생각과 이야기를 한정하다 보면, 더 큰 틀에서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문화에서 스스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이에 한솔문화원은 책을 기반으로 삼아 다양한 인문학 및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교민들 스스로가 삶에 새로운 활력과 자양분을 키워가는 문화의 텃밭이 되고자 한다.




바쁘게 병원 일을 하다가도, 책이 가득 꽂힌 한솔문화원의 서가를 생각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과 미소가 번진다. 김훈의 책 중에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제목도 있지만, 일상의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마치 자신이 돈 버는 기계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잠시 쉬는 짬에 한솔문화원에 들러 책들을 휘하니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때가 있다. 책은, 그리고 그 책이 담고 있는 문화는 사람을 비로소 사람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들 모두가 겪어 알겠지만, 말이 다르고, 정서적으로도 이질적인데다, 경제적으로 든든한 기반마저 없는 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일궈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당장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 본인은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결국 버텨내는 힘은 자기 마음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마음 속에는 언젠가 보았던 책의 한 구절, 혹은 그 구절이 되새기게 해주는 강인하고 훌륭한 삶의 모습들이 양식처럼 들어있기에, 오늘을 견뎌내고 내일을 향해서 또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는 일이 팍팍할 텐데도 짬을 내어 책을 보러 오는 교민들을 보면 다행스럽고 흐뭇하고, 사명감마저 느끼게 된다. 외롭고 힘겨울 때, 그래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뜻하지 않게도 책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책에서 만난 그 친구가 여러분을 위로하고, 보다 큰 차원에서 나의 문제를 바라보게 해주고, 다시금 힘을 내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인문학과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이다. 
 
한솔문화원, 비영리단체(Charitable Trust) 등록
한솔문화원에는 책이 많이 있다. 그것도 오클랜드 어느 곳에 가도 만나기 힘든 다양한 분야의 양서들이 빼곡하게 준비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껏 한솔문화원은 사정상, 그 책들을 대여하는 동네 도서관 역할 외에 이렇다 할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뉴질랜드 정부에 비영리단체(Charitable Trust)로 등록된 이후, 뉴질랜드 커뮤니티 일원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오전 다양한 형태의 북클럽을 개설하여 더 많은 교민분들과 더 많은 책들을 향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지난 주부터 현지 라이브러리들이 진행하고 있는 북클럽 형식으로,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 한 잔 마시며 책 소개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프로그램인 <책이 있는 수요일 아침 카페>가 개설되었다. 또한 <묵향 가득한 월요일 아침 책방>, <다른 땅에 흐른 문학의 향기> 등의 북클럽도 있다. <묵향 가득한 월요일 아침 책방>은 고전소설을 함께 소리내어 읽으며 감상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갑자기 왜 고전 소설인가 갸웃해지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되지만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러오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한국 사회가 지긋지긋해서 떠나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조차도, 오랜 외국생활에서 결국 다시 그리워지고 기대게 되는 건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아닐까 생각 한다.

뿌리가 약한 풀이나 나무는 어느 땅에 옮겨 심어도 잘 자라기 힘들다. 반대로 뿌리가 튼튼하면 세상 어디가 살아도 쉽게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다.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그리고 ‘고전소설’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를까? <춘향전>, <홍길동전> 혹은 학교 때 배운<구운몽> …… . 그런데 <음란서생>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조선시대에도 우리가 제목조차 모르는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와 장안의 남녀노소를 사로잡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일부 사람들만 접할 수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많이 출간이 되어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도 향유할 기회가 생겼다. 2013년,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교민들과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문화를 함께 나누며 지친 어깨 서로 북돋우며 흥미로운 시간 가질 수 있기를 희망 한다.

외국문학 감상 프로그램인 <다른 땅에 흐른 문학의 향기>는 첫번째 책으로 뉴질랜드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의 하나인 <Chinese Cinderella>를 선정하였다. 작품을 영어로 함께 읽으며 외국문학의 감수성을 느껴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민들과 소통
현재 한솔문화원에서 진행중인 프로그램으로는 지난 8월 중순 시작된 <수필문학교실>과 영문학 리딩 프로그램 및 월요일 고전소설 강독교실, 화요일 외국문학 감상교실, 수요일 아침의 독서클럽 등이 있다. 
 
제일 먼저 시작된 수필문학교실은 오클랜드 문학회에서 주관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매회 10여분의 교민분들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시는 강사들이나 참여하는 교민들이나 매 수업 얼마나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중 단 한 분도 그저 심심해서, 어쩌다 지나가는 마음으로 들르신 분이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게다가 이 수업을 참여하노라면 너무 좋으셔서 ‘전율이 난다’고 말씀하는 분까지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모른다. 
교민사회가 점점 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라, 처음 이 수업이 기획되었을 때 몇 분이나 오시겠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수업이 시작된 이후 한발짝 떨어진 자리에서나 그 열기를 지켜보노라면 모두가 이런 자리를 기다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목요일 오후의 <영문학 리딩클럽> 또한 마찬가지 이다. 섭외된 강사 선생님의 사정상 오후 3시30분이라는 어중간한 시간에 마련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련된 자리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의자를 사이사이 끼워앉아야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메모해주시는 내용을 한 자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숨죽여 필기하시는 어른들의 모습은 흐뭇하다 못해 감동 그 자체 이다. 
 
교민들의 많은 후원과 사랑이 필요
무엇보다 이곳이 교민 여러분의 의미있는 문화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교민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하다. 우선 더 많은 책이 필요하다. 혹시 교민 분 들중 집에 안 보는 책이 있으면 기증해 주시면 고맙겠다. 현재 8천 여권의 책이 있지만, 도서관의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2만 권의 책은 있어야 한다. 한솔문화원이 커뮤니티로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서 뉴질랜드 정부를 비롯한 많은 기관 단체들에게 펀딩을 신청하려고 하고 있지만, 얼마의 금액이, 언제쯤 가능할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 많은 교민분들께서 한솔문화원의 회원이 되어주셨으면 한다. 어느 복지가 한 사람의 도움만으로는 문화원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한솔문화원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이 교민 사회에 계속 남아 좋은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켜주길 바란다. 
 
현재 문학 모임, 독서 모임을 갖고 있지만 더 나아가 인문학과 과학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 강좌를 더 만들고 싶다. 아울러 교민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주말 교실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한솔문화원의 재정과 인력이 확충된다면 교민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한국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강좌도 열어볼 수 있다. 당장에는 운영이 빠듯해 계획을 확정짓기 힘들지만 작은 음악 콘서트, 한국 문인 초청 세미나 등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솔문화원 주최 문학 공모전도 기획 단계에 있다. 언젠가 오클랜드에 멋진 한옥이 한 채 지어졌으면 좋겠다. 한솔문화원이라는 현판을 근사하게 내건…

글,사진: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