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이상한 광경을 자주 봅니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여자들이 그 중 제일 이상하게 보이더라고요. 가면이라고 말하기엔 좀 섬뜩한 모습이었어요. 기능성 마스크이겠지만, 무도회의 가면처럼 아름답지도 못하면서 하회탈처럼 정이 가지도 않는 공포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이상한 인형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보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대낮에 이런 인형의 모습으로 다니는 여자들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곤 합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려는 목적이겠지만, 습도가 높은 여름날 이렇듯 두터운 가면을 뒤집어 쓴 얼굴이 얼마나 힘들까요?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인 성형수술처럼 가면을 쓰고 다니는 수고를 하겠지만, 이런 겉치레적인 노력만으로 얼굴이 아름다워질까요? 물론 안 가꾼 얼굴보다야 훨씬 아름답겠지요. 하지만 얼굴이 물질일 뿐이며 허상이란 걸 알게 된다면 그렇게 얼굴에 집착하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얼굴은 얼의 꼴이며, 얼이란 정신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정신이란 영혼이며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얼굴은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구인 물질일 뿐입니다. 그런 얼굴의 진정성을 모르고, 정신을 잘 닦을 생각보다는 허상인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 자신들입니다. 나 역시 가끔 그런 사실을 잊게 되면서 요즘 얼굴이 너무 말랐다는 말을 들으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작년 말부터 조금씩 몸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몇 달 사이에 5Kg의 살이 빠졌습니다. 집중하는 일이 생기면 그 일에 몰두하느라 밥을 먹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어버리고, 잠도 줄어들어서 서너 달 사이에 5~6Kg가 빠지는 일이 생기더군요. 자주 그랬던 것은 아니고, 8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지금이 두 번째입니다. 8년 전에도 근 1년이 다 되어서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겠죠?
내 몸은 아직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으니, 어려서의 눈부시게 뽀얀 모습만을 기억 속에 넣어두셨던 어르신네들께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오늘도 친정어머니 친구 분과 점심을 먹는데, 셋째 딸의 그 곱던 모습이 모두 다 어디로 갔느냐고 안타까워하시더군요.
사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큰 불만 없는데, 주위에서 더 속상해 하시더군요. 나를 통해 세월의 무상함과 물질의 허망함에 대한 성찰을 하셨을 것도 같군요. 하하하
나는 지금 많이 행복합니다. 내 비록 홍안이 사라진 모습이지만, 내가 겪은 모든 체험들이 내 내면을 성숙하게 했으며, 그 체험들을 통한 고통들이 내 외모를 상하게 했을지라도 그건 단지 겉모습에 불과하며, 내 내면은 성숙한 만큼 밝아졌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려서 많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 중 제일 큰 충격이 바로 외모지상주의였는데, 기능성 마스크로 온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서까지 천혜의 햇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외모를 가꾸어야하다니, 자연스럽게 누려야할 권리마저 포기하는 그녀들의 문화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뉴질랜드란 새로운 땅에 정착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을 했던 안 했던, 어떤 옷을 입었던, 어떤 차를 타고 다니건,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달리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문화인데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살다 보니,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 줄 줄 아는 포용의 문화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
남들과 똑같아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답답하긴 했습니다. 자신의 특별함을 특별함으로 보지 못하고, 다름이 특별함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모델을 정하여 그 모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문화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언젠가는 자신의 특별함을 밝은 태양아래 즐기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게시물은 KoreaPost님에 의해 2014-06-24 21:23:28 칼럼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