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무의식을 의식의 세계로 - 1.5세대 화가 김한내

[351] 무의식을 의식의 세계로 - 1.5세대 화가 김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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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술가는 가난하다고 말한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기 원하는 많은 순수 미술 전공자들은 사실 가난하다. 또, 예술인 특유의 자유 분방한 사고와 창조적인 생활방식으로 우리 범인(凡人)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예술가의 길을 걷기를 바라지 않는다.

  95년,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와 form 4 과정에 입학하는 것으로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한 김한내씨(만25세). 대학 전공으로 미술을 택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여느 부모들과 같았다. 더군다나 장녀인 김씨에 대한 부모님들의 기대가 워낙 컸던 지라, 딸의 결정에 대한 부모님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의 예술적인 재능과 끼는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 건축인 이었던 아버지의 서재에는 늘 예술도감이 가득 차 있었고, 친 할아버지는 국악 인간문화재인 김기수 옹이다.

  오클랜드 대학 미술학부로 진학해, 페인팅을 전공한 김한내 씨는 대학 3학년 때 학교 전시회 기간 중 현재 활동하는 SOCA 갤러리 측의 제안을 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갤러리의 후원을 받으며 쭈욱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뉴질랜드는 한국에 비해 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예요. 물론, 호주나 미국에 비해서는 시장 규모가 작지만, 유명세를 타기 전에도 고객들의 취향에만 맞으면 작품이 판매되곤 하죠."

  그녀는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손이 정교하고 솜씨가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 학생들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표현하고 뜻을 확장시키는 작업에 많이 미숙한 것 같아요.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녀는 현재 화가 지망생을 개인 레슨 해 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따로 과외를 받아 본 일이 없다. 테크니컬 한 기교보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는 과감한 창조력 개발이 미술교육의 관건이라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도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한국적인 교육 방식과 금기가 많은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다. "미술은 창조적인 활동이라 자유 분방한 사고 방식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가끔은 제가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가 새로운 것과 금기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가로 막는 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결국 제가 극복할 문제죠. 바꿀 수 없는 걸 탓할 순 없으니까요."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여행'을 택했다. "자아를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주변과 격리돼서 나 자신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특별히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김씨의 작품을 대한 사람들은 그녀가 겪었던 치열한 사유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는 (정작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동양인 특유의 '여백의 미'가 물씬 느껴진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은 기존에 사용하던 종이 캔버스를 탈피해 에칭작업이 된 알루미늄을 사용했어요. 작업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가 표현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김한내 씨의 작품은 대개, '기억'이라는 주제를 모티브로 한다. 그리고 색상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블랙이 주는 무게감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그것을 단순히 "개인적 취향" 이라고 설명한다. "제 안에 있는 기억이나 사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표현해 내는 것... 그게 제가 해 왔던 작업 이예요. 내 그림에서 또 다른 느낌이나 의미를 누군가가 발견해 주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해 주면 기뻐요. 내 그림의 의미 자체가 좀 더 확장되는 거니까요."
    
  그녀의 작품은 디자이너나 건축가 등 모던 한 느낌을 좋아하는 젊은층에게 특히 좋은 반응을 얻는다. 생계 문제는 해결이 되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고집이 센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상업적인 요소와 많이 갈등하게 되죠. 순수미술을 하려면 돈과 관련된 문제는 배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그게 쉽지 않아요. 살면서 계속 고민하게 되는 문제죠." 사실 순수미술에 대한 고집에서만 탈피하면, 미술 전공자는 진출 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할 수도 있고, 방송국이나 광고 회사에서 일 할 수도 있다. 영화 계통으로의 진출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예술적 발전을 위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업을 하다보면 내 자신의 의식 또는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 보게 되는 계기가 많아요. 인간의 심리에 관해 좀 더 체계적인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죠. 미술 심리 치료 분야를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어요."

  시종일관 이어지는 차분한 말투와 단아한 매무새가 동양의 난을 연상하게 한다.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강인하게... 독특한 내면의 매력을 발산하는 화가 김한내. 화가 자신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이 곳 뉴질랜드, 나가서 세계 무대에서도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전시회는 SOCA 갤러리에서 2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이어진다.

글 : 이연희 기자 (reporter@koreatimes.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