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한다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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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20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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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의과 대학의 토머스 홈스 박사 팀이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사례를 스트레스 지수로 환산해 만든 '스트레스 평정값'에 의하면 인간이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죽음(100 점)이고, 뒤를 이어 이혼(73점), 배우자와 별거(65점), 교도소 수감(63점) 그리고 가족 친척의 죽음(63점) 등이 상위에 올라 있다. 40개 이상의 항목 중에 아쉽게도 '이민'으로 이름 붙여진 것은 없지만 만약 점수를 준다면 적어도 50점 이상으로 상위 10위 안에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힘든 것이 이민일 것이라는 말이다.
코리아타임즈 웹사이트에 '사이먼과 아이비의 NZ 이민기'를 연재하고 있는 이정임(아이비)씨도 올려 놓은 글에서 보이듯 이민 초기에 부부가 겪었던 어려움이 여느 이민자처럼 후한(?) 스트레스 점수를 기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 이민 스트레스는 세월과 반비 례하며 자취를 감췄고 이민자라기 보다 그저 하나의 뉴질랜더로 살아가는 삶의 굴곡을 지나고 있다. 나도 저렇게 이민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만드는 아이비와 사이먼의 '꿈과 희망'의 이민기, 그녀의 체온이 느껴지는 오프라인으로 꼭 들어보고 싶었다.
현재 웰링턴에서 살고 있는 이정임씨는 WINZ(Work and Income)의 시스템 개발자로 일하다가 남편의 직장으로 지역을 옮기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지금은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과제물과 시험을 채점하는 마커로 일하고 있다. 이 씨 남편은 School of Information Management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며 강의도 맡고 있다.
1996년, 한국의 평범한 28살 맞벌이 동갑내기 부부는 스스로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국을 떠나 왔다. 당시 뉴질랜드에 이민을 신청했던 남편 친구의 권유로 선택한 뉴질랜드.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 없는 결정이요,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것 뿐이다.
이정임 씨 부부의 모토는 '모든 것을 함께 한다'이다.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이 씨 부부는 이에 걸맞게 뉴질랜드에 온 뒤 2년 동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공부만 했단다. Porirua의 Whitireia 폴리텍, 웰링턴 폴리텍,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단계를 높여 가며 영어를 공부했고 1998년에는 웰링턴 매시 대학교에서 Business Computing 코스를 함께 공부 했다. 이 씨도 남편도 한국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지 않았었다. 이민은 그들의 언어와 생각과 터전, 캐리어까지 아우르는 삶의 완전한 전환점이었다.
***** 내 생애 최악의 렌트 *****
사전 답사도 없이 처음 외국생활에 부딪친 젊은 부부에게 정착의 시행착오로 잊지 못할 일도 많았다. 오클랜드에 와서 처음 집을 렌트할 때였다. 도미니언 로드에 있는 한 스튜디오를 소개 받고 이사했는데 집을 보려고 처음 방문했던 때와 달리 개털과 오물에 악취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집이 더럽고 누추했다. 처음 방을 살펴 보러 갔을 때가 어두운 밤이었는데 그것이 그 렇게 큰 실수일 줄이야... 이 씨 부부는 일 주일 내내 청소에 매달렸지만 악취는 사라지지 않고 밤이 되어서야 잠을 자러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갔다. 오물로 더럽혀진 냄새나는 침대에 차마 누울 수가 없어 의자를 붙여 누울 공간을 만든 다음 부둥켜 앉고 불편한 잠을 잤는데 그나마 의자 사이에서 나온 벌레들에 물려 아침에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공포의 렌트 체험'은 지금까지도 못 잊을 기가 막힌 기억이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서로에게 불평하지 않고 대신 이민 생활을 실감하는 기회로 삼았다. 당시 이 씨의 남편은 낮에 각종 정부기관, 정보센터에서 같이 수집해 온 책자들을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 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오클랜드에 생활하다 보니 아시 안도 많고 영어를 하지 않고도 이민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처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하려 했던 이 씨 부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안주하고, 편한 길을 가고 싶어 하고, 도전을 꺼려하 는 많은 이민자들과 그들 부부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영어는 '너무도 당연히' 필수였고 이를 위해 오클랜드를 떠나는 것은 교만한 모험이 아니었다. 북섬의 각 지역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답사를 나선 이 씨 부부는 웰링턴 근교 도시인 Porirua의 Whitireia 폴리텍을 방문하고 사모안들과 몇몇 아시안으로 구성된 반에 매력을 느껴 그 곳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도전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했던 그들이었다.
***** 이민자니까 참아? 이건 아니잖아~ *****
한창 영어를 배우며 정착에 애를 쓰던 이정임 씨 부부에게 또 하나 잊지 못할 사건이 터졌으니, 이야기는 작은 교통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아시안, 이민자라는 신분을 만만하게 보고 시간을 끌자는 속셈이었던지 주차를 하다가 이 씨 부부의 차를 박아 버린 등치 좋은 쿡아일랜드 아저씨, 보험 처리를 해 주겠다더니 연락이 없었다. 한국에 살 때 도둑을 두 번 이나 잡은 화려한(?) 부부 경력도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남자를 겨우 다시 만나 자백을 받고 자동차 수리도 약속 받았다. 이 때, 이 씨 가방 속에서 소형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던 것을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심혈을 기울인 007작전(?)은 CAB를 통해 법률상담을 받고 알게 된 Distribute Tribunal Hearing 소액재판에서 드디어 빛을 발했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소환되어 온 쿡 아일랜드 남자가 법정에 들어왔다. 이 씨의 남편이 2주 동안 준비한 변론을 판사 앞에서 차분히 펼치고 마지막에 증거로 소형녹음기를 꺼내 놓는 순간 그 남자의 표정이란! 그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오늘 돈을 가져 왔으니 곧바로 고쳐 주겠다고 말했다. 재판 후 판사가 지정한 정비소에 같이 차를 맡기고 마지막에는 서로 악수를 하고 좋은 모습으로 헤어졌다. 상황에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방법을 찾아내어 자기 권리를 찾은 이 씨 부부는 이민생활의 짜릿한 승리감을 맛보았 다. 고쳐진 차는 겉으로는 평범한 차였지만 이 씨 부부의 눈에는 자랑스런 전취물 그 자체였다.
이정임 씨의 남편은 2000년 Port Nicholson 로터리 클럽이 주관하는 'Goal Settet Award에 응모해 헬렌 클락 총리로부터 상금을 수여받기도 했다. 신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수상을 이끈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 때 이후로 더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는 남편, 도전하는 자 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이들 인생의 주요한 원리가 되고 있었다.
***** 변화에 적응하라 겸손하라 도전하라 *****
이민 과정에서 한국 사람이든 키위든, 잊지 못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정임 씨에게는 '니콜라'라는 대학 때부터 단짝으로 사귀어 온 친구가 있다. 처음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을 때 심상치 않은 복장과 문신, 코걸이를 하고 접근 금지 '아우라'를 풍기던 아이에게 먼저 다가건 것은 이 씨였다. 지금은 이웃에 살면서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알아갈수록 겉보기와 달리 순수 한 마음을 가진 니콜라와의 소중한 인연도 이 씨가 먼저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민자의 마음가짐은 변화에 빨리 적응해 나가려는 노력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내가 무엇을 했었는데…' 하는 과거지향적인 생각은 일찍 털어 낼수록 좋다. 또한 겸손과 자신감의 양 날개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민자는 특권 을 갖은 것도, 손해를 보도록 지정된 신분도 아니다.
철저히 '처음' 이었고 철저히 '새로운' 것이었던 이 씨 부부의 이민을 지금의 안정으로 이끌었던 것은 돈도 아니었고 운이나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 덕도 아니었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당당히 권리를 찾아 나가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기까지, 사회와 사람들에게 인 정받고 어엿한 이민자, 아니 한 명의 뉴질랜더로서 설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언어와 문화, 사회를 겸손히 공부하며 사회에 완전히 스며들고자 노력했던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바른 마음가짐이 있었다.
이 씨는 일과 공부로 미뤘던 아이를 2003년 결혼 9년 만에 갖고 지금은 네 살이 된 예쁜 딸을 돌보며 어떤 경험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엄마'의 역할을 경험하고 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언제나 도전하는 남편을 '존경한다'고 지체 없이 말하는 그녀 또한 '존경받고 있는' 아내일 것 같다. 자랑스러운 이민 가족, 자랑스러운 코리안 뉴질랜더의 모습이다.
(이정임 씨 부부의 이민기는 코리아타임즈 웹사이트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