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kespeare 산책 (Ⅲ) - King Lear (분별력의 비극)

Shakespeare 산책 (Ⅲ) - King Lear (분별력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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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지던 '우직함'이란 단어가 요즈음은 흥미 없는 단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련해서 사회에서는 성공 할 수 없는 사람' 이란 느낌까지 주는 말이 되어 버렸다. 사람은 얼마나 신실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 신실한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Shakespeare는 'King Lear'에서 자신의 자녀들 중에서 조차도 신실한 자가 누구인지를 분별해내지 못함으로 맞이 하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이 희곡(play)에는 믿었던 자식들에게 배반 당하는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 중 한 명은 이 극의 주인공 'King Lear'이고, 다른 한 사람은 'Gloucester 백작'이다. 리어 왕은 왕의 직위에서 물러나고 영국을 세 딸들에게 나눠주기로 작정한다. 그는 딸들에게 이 땅을 물려받기 전에 결혼을 할 것과,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 지를 보여 줄 것을 요구한다. 첫째와 둘째 딸인 Goneril과 Regan은 각각 Albany공작과 Cornwall공작과 결혼을 하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 지를 과장되게 표현하며 아첨을 하여 그에 대한 보상으로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리어 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 딸 Cordelia는 "She loves him as much as a daughter should." ("딸이란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만큼 아버지를 사랑한다.")라고 담백하게 말을 한다. 이에 화가 난 왕은 Cordelia를 유산 한 푼 없이 프랑스 왕과 결혼 시켜 먼 타국으로 보내 버린다. 왕은 심지어 Cordelia를 옹호해 주던 자신의 충성된 신하인 Kent 조차도 쫓아내 버린다.

한편 Gloucester 백작의 가정에서는 서자인 Edmund가 친 아들인 Edgar를 쫓아내고 아버지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나눠 갖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Edgar가 썼다고 Gloucester에게 거짓으로 알린다. Edgar에게 가서는 화가 난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좋겠다고 넌지시 알려 주며 Edgar를 도망치게 한다.

두 딸들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딸 Goneril의 성에서 같이 살고 있던 리어 왕은, Goneril이 리어 왕의 호위 기사들을 반으로 줄이라고 하고, 그녀의 심복인 Oswald에게 아버지에게 호의를 보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등 그를 귀찮은 늙은이 취급하자 둘째 딸인 Regan에게 가 버린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똑 같은 푸대접을 받게 되고 첫째 딸 Goneril이 그 곳으로 오자 화를 내며 폭풍우가 치는 들판으로 나가 버린다. 그리고 점점 정신을 놓고 미쳐 가게 된다.

그러나 그가 쫓아 낸 충성된 신하인 Kent는 변장을 하고 끝까지 리어 왕을 지킨다. Kent는 막내 딸 Cordelia에게 리어 왕의 상황을 전하고 그녀는 프랑스에서 아버지를 구하러 온다. 그러나 Cordelia의 사람들은 Goneril과 Regan의 사람들에게 패배하고 Cordelia와 리어 왕은 사로잡혀 Cordelia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리어 왕은 막내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죽게 된다.

한편 Gloucester 백작은 Edmund의 배신으로 Regan과 Cornwall에게 잡혀 눈알이 뽑히는 극형을 받고 하인의 도움으로 도망을 치던 도중에 거지 Tom으로 변장한 그의 친 아들 Edgar를 만나 도움을 받지만, 후에 그가 자기 아들 Edgar임을 알게 되고 큰 슬픔과 벅찬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심신이 너무 약해진 그는 결국 죽게 된다. 한 편 Goneril과 Regan은 Edmund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을 겪게 되고, Goneril은 Regan을 독살하고 자신도 칼로 찔러 죽는다. Edmund도 Edgar와의 결투 끝에 죽게 된다.

'King Lear'는 중세에 구전되던 이야기(folk tale)를 Shakespeare가 희곡(play)으로 다시 쓴 것이다. 원래의 이야기에는 King Lear는 미치지도 않고 그의 딸 Cordelia는 죽지도 않는 내용 이었으나 Shakespeare가 이야기의 마지막을 변형시켜서 비극으로 만들었다. 'King Lear'에 등장하는 리어 왕과 Gloucester 백작은 아첨하는 자녀들에게 속아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자식을 사지로 내 몰고 자신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두 아버지로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많은 가족들에게도 일어났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가족의 비극들을 보여 준다.

요즈음은 우스개 소리로 '어머니가 아들과 살면 쫓겨나 길거리에서 죽게 되고, 딸과 살면 싱크대 앞에서 죽는다.'라는 말도 회자된다고 한다. 부모가 경제적으로나 노동력의 면에서 도움이 되면 입의 혀처럼 아첨을 하다가 모든 것을 다 빼앗은 후에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심지어는 해외 여행을 가자고 속여서 외국에 버리고 오는 기막힌 일 들이 있다고도 한다. 잘못된 마음을 가진 자식들이 제일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자식에 대한 맹목적 사랑만 앞세우며 참된 인성 교육을 게을리한 부모의 어리석음이 이러한 비극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되짚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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