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서른여섯의 눈동자

[319] 서른여섯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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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게 심심하지 않느냐고 간혹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말이리라.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전자 매체가 활발하고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인 요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외로움을 호소한다고 어느 상담기관 통계에서 드러났다. 할 일없고 시간 넉넉하면 누구나 잡념이 생기고 심심하고 외롭다. 마음에 여백이 생기면 진실되고 공정한 생각보다는 허황되고 그릇된 공상으로 마음을 다치는 수가 있기에 외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다스리는 질병이지 싶다.

  나는 서른여섯의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살고 있으니 남이 보듯이 그렇게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우정으로 시작해서 이해ㆍ영광ㆍ자유ㆍ웃음ㆍ믿음ㆍ평화ㆍ사랑ㆍ행복ㆍ화해ㆍ보람ㆍ용서ㆍ인내ㆍ희망ㆍ겸손ㆍ긍정ㆍ기쁨ㆍ지킴이까지, 열 여덟의 친구와 매일같이 무언의 대화로서 즐기며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옹졸하게 만들고 불편함을 주는 상대가 생겼을 때는 용서와 화해의 눈빛이 기쁨이를 내려다 보는듯한 암시를 받는다. 용서하고 화해하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교훈이잖은가. 긍정과 인내가 겸손을 유발시켜서 차츰 차츰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면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상대를 믿으니 다시 우정이 생기고 더 깊은 사랑으로 평화롭고 행복해진다.

  그들은 내가 생기 잃고 의욕없을 때 꿈도 심어 주고 매일매일의 삶이 건강하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자식들 키워 출가시키고 인생의 황금나이에 혼자남아 마음껏 날개 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보람이가 고운 눈으로 내려다 본다.

  열 여덟의 조용한 내 가족, 서른여섯의 변함없는 눈동자, 그들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지켜준다. 수다스럽지 않아 언제나 혼자서만 말하지만 멋진 답을 얻게 해주는 고마운 그들,

  행복이는 허리가 옆으로 휘어서 불편할텐데도 무뚝뚝하게 볼을 쑥 내미고 행복하단다. 고슴도치같은 모자를 눌러 쓴 우정이는 표정이 밋밋해도 선하고 듬직하다. 이해는 큰 입을 벌리고 바보스런 늙은이 같지만 어눌해서 좋다. 얼굴이 말상으로 길고 코주부인 영광이는 으젓하고 점잖다. 가운데에 끼어 도토리깍지를 쓴 몸집 작은 자유는 납작코에 조금 두려운 모습이다. 길다랗게 땅콩껍질을 모자로 쓴 웃음이는 이마가 없고 코가 가운데 뻥 뚫린 모양새에 정말로 웃음이 나온다. 엄청 큰 열매를 쓴 믿음이는 그 모자에 눌려 몸이 쫄아든 빼빼다. 그 반대로 몸집을 옆으로 한 뚱보 평화가 간지럽게 작은 모자를 썼다. 뽀족한 양끝에 한끝이 멋지게 위로 뻗은 부드럽고 까만모자다. 화해가 쓴 모자는 콩깍지인가? 납작모자를 눈까지 눌러쓴게 예술가 폼이다. 보람이가 웃긴다.

  뽀족모자를 쓰고 볼이 통통하다. 인내는 더 웃긴다. 목에 큰 구멍이 나 있다 새 총이라도 맞은 모양인가 내려진 길고 날렵한 꼬리 위로 솟은 긴 줄 모자가 특이하고 멋지다. 용서는 역시 넉넉하다. 제일 많은 자리를 차지했으니…. 겸손이가 용서의 바로 앞에서 작은 키로 끼듯이 화해의 동생같은 닮은 모습으로 서있다. 겸손이 답게…,

  희망이가 훌쩍 큰 키로 날씬하다 옆의 사랑이를 사랑하듯이 눈동자가 그를 응시한다. 사랑이는 교만한 폼으로 옆으로 몸을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며 딴전을 부린다. 너무도 당당해 보이지만 모자가 좀 초라하다. 긍정이는 오리를 닮았다 까만 몸집이 특징이다. 길게 누운 기쁨이가 얌전도하다, 열일곱 대 가족을 몸으로 길게 떠 받치고 있는 (Happy People) 지킴이는 마치 러시아 궁전같이 생긴 둥그렇고 큰 모자를 쓰고 힘들어 보이지만 변함없는 모습으로 늘 그렇게 어른스럽고 믿업다.

  5년전이던가, 친구들과 빅토리아 파크 마켙에 구경갔다가 너무도 재미나고 그럴듯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이 아이디어 작품에 정말 반해서 주저없이 사 버렸다.

  각양각색 손가락 크기의 나무 뿌리를 다듬어서 눈을 붙이고 콩깍지, 도토리껍질, 다양한 나무열매 등으로 모자를 씌어 인형집단을 만들었는데 너무도 그럴듯했다.

  Happy People 이란 제목이 불인두로 써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하나의 표정들이 다르고 개성이 있는지 놀랍다.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니 생명을 지닌 듯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따스하고 정겨워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떤 사람이 이런 멋진 아이디어로 나를 감동시킬까. 영원히 변치 않을 소중한 나의 친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