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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009. 17:19 코리아타임스 (124.♡.145.168)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겨울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기 마련이다. 과일도 야채도 해산물도---. 그래서 동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새로운 먹거리가 돋아나는 봄이 될 때까지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한국의 겨울은 예외다. 재래 시장이나 슈퍼마켓에 먹거리가 넘쳐 났다. 과일 가게만 보면 도무지 계절을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과 배 귤 곶감들 틈에 딸기 포도 참외 메론 한라봉 등이 먹음직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저 포도는 가을에 딴 것이겠죠?”
“아니요, 요즘 수확한 겁니다. 온실에서요.”
한 근에 5천원을 주고 포도를 샀다. 좀 비싸긴 했지만, 포도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탱글탱글한 검보랏빛 유혹을 물리칠 수 없었다. 한 여름 포도보다 당도가 높았고 주스도 풍부했다.
“정말 맛있다!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에 포도라니---”
해산물 중에는 꼬막과 메생이가 제 철을 맞아 풍성했다. 살짝 데쳐서 양념장을 끼얹은 꼬막은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메생이는 파래처럼 생긴 녹조류인데, 파래보다 훨씬 부드러워 입안에서 거의 씹히지도 않고 넘어가는 특징이 있고,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지금 음식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영하의 날씨에 갯벌에 썰매를 밀고 다니며 꼬막을 캐내는 아낙들과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메생이를 채취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면 그 음식을 먹으면서 목이 메인다. 어느 먹거리 하나 경건한 노동이 없이는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밤새워 불 밝히면서 잡아 올렸을 오징어와 은갈치, 할머니 해녀가 잡아 올린 소라나 물미역, 바닷말, 통영 양식장에서 올라왔다는 굴 등---그런 먹거리들은 한국인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서울에서 충청도의 외갓집에 선물을 보낼 때 나는 우체국 택배를 이용했다. 구정을 앞 둔 어느날 점심 무렵 우체국에 접수 했는데 다음날 오전 소포가 도착했다는 외숙모의 전화를 받았다. 명절 전이라 물량이 밀려들어 배달이 다소 지연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이들이 설빔을 받고 좋아할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나는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쇼핑을 했다. 가격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 데다가 저렴하기도 하고 일정액 이상이면 무료 배송까지 해주어서 집에 가만히 앉아서 물건 받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통은 주문 후에 2,3일이면 물건이 배달되었다. 충청도 굴 구이 집에서 주문한 굴젓은 하룻만에 택배로 배달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며, 스피드는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근성이 조롱받고 있다. 한국인들의 조급증을 꼬집는 시선의 덫 속에 갇혀서 한국인 스스로도 자학적으로 '빨리빨리'를 깎아 내리고 있다. 반대로 '느림의 미학'은 고무되어야 할 삶의 자세인양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빨리빨리'는 어느 정도는 부지런함, 근면함과 일치하고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슬로우 푸드가 몸에 좋은 것처럼 한가롭고 느리게 사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느려 터져서 복장 터지는 것보다 빠른 것이 좋다거나, 자기 성찰과 우아함 없는 '빨리빨리'는 삶의 질이 낮은 것과 동일하다는 절대평가는 너무 편협하다. 나의 경우는 단순 노동은 무조건 빨리 해치운다.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가사 일을 해 놓고, 그 다음 내 시간을 여유롭게 즐긴다. 사회 시스템이나 정책도 이와 같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스피드가 생명인 일과 오래두고 생각하면서 진행해야 할 일을 잘 나누는 일이 정치의 생명이다. 빠르거나 혹은 느리거나 일이 진행되는 속도에 따라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고 수립하는 일을 잘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 어 달 만에 뉴질랜드에 돌아오니, 해는 뜨겁고 날은 덥고 모든 것은 고요하다.
매미만 매암 매암 울어 대는 한 낮에 나는 원고를 치다가 몽롱해져서 졸다가 그러면서 '느림의 미학'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반문한다. 그리고 어찌된 팔자들이 최고로 빠른 나라에 살다가 이토록 느리고 한가하고 권태로운 나라로 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기 자신의 저편으로 뛰는 기술은 어디에서나 최고의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우리는 스피드를 내야한다. 기왕 달리려거든 땀이 촉촉히 배어 나오면서 팔 다리가 가벼워지고 피로가 싹 풀리는---Runner's High---가 좋겠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엔도르핀이 분비되지 않아 행복감과 쾌감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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