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보자기의 예술(보자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321] 보자기의 예술(보자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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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이 우리 여성들의 조신한 정서를 몽땅 탈취해갔구나”

  해밀톤 시립 와이카토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보자기 전시회'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스물 전에만 해도 집안에 들어 앉아 모란꽃에 나비가 찾아드는 동양자수 액자며, 어머니가 누벼 놓으신 동생 버선에도 작은 꽃들을 수놓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니 나보다 연상의 형님들은 손수 수놓아 만든 혼수품을 시집갈 때 가져가신 분들이니 모두가 반가운 시선으로 옛날을 회상하는 것같은 분위기였다. 허지만 200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먼저 가신 조상들의 얼과 혼이 담긴 옛것을 보기에 한층 가슴 뜨거운 흥분으로 설레임이 컸다.

  성냥갑보다도 더 작은 천에서부터 손누비 이불까지. 천을 귀맞추어 꿰매기도 힘드는데 한올 비틀리지도 어긋나지도 않게 맞춰 바른 네모, 긴 네모의 형체로 보를 만들었다. 거기에 앙징스럽도록 작은 꽃과 새와 동물들을 수놓고 쓰기 편리하게 끈을 달았다. 올이 탱탱한 생모시가 있는가 하면 아른아른하게 꽃무늬로 속이 비치는 숙고사 그리고 반질한 생명주, 가벼운 숙고사 보에는 항라로 가장자리 테를 둘렀다. 작은 세모가 모여모여 큰 세모로 모양도 가지가지 컬러의 조화도 멋스럽다. 흰색과 남색으로 비스듬한 사선으로 배치한 숙고사보는 현대감각에도 딱 맞아 벽걸이로 써도 손색이 없을만큼 심플하면서도 깔끔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바늘 뜨기, 세바늘 뜨기로 라인을 만들어 모양을 내고 가운데 작은 리본을 달아 멋을 더한 솜씨가 어찌보면 궁상맞기까지 하다. 낮에는 가사에 바뻤을테니 늦은 밤 석유등잔 앞에 쭈그려앉아 만들었을 모습들이 청승스럽도록 안쓰럽게 그려졌다. 시집살이 힘든 스트레스를 무언가 이루어 내는 성취감으로 한 바늘 한 바늘 뜨면서 위안을 삼았을까? 아니면 눈물과 한을 밖으로 드러낸 게 꽃이 되고 나비가 되었는지…….

  그 시절에 화학적인 염료가 있을리 없으니 검은 베보자기는 먹물을 드렸을 터이고 진달래 물드린 분홍, 치자빛 노랑, 쑥이나 쪽으로도 염색을 했을텐테 그 자연색이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는 게 놀랍다.

  빨강 비단에 모란과 공작을 수놓은 1700년대의 활옷에는 「二性之合」이라고 쓰고 복숭아가지를 든 여성이 오른쪽 가슴과 어깨 쪽에 작게 수놓아져 있고 왼쪽에는 「原之福百」이라고 쓰고 남자가 또한 복숭아 가지를 들고 있는게 이색적이었다. 깃이 없고 바로 넓은 동정이 달려 있는데 그보다 100년 후인 1800년대의 원삼에는 그동안 깃이 생겼고 색동에 금박무늬가 선연했다. 그 때가 금박무늬의 유행시대였다고 하니 한 세기의 세월 속에 옷의 형태가 많이 세련되어 있음을 비교하게 된다. 귀신을 쫓는다는 복숭아 가지, 두 性이 합쳐져 백가지 복을 누리라는 뜻이 300년전 활옷에 담겨 있으니 오늘날의 웨딩드레스는 먼 훗날 어떤 의미로 받아 드릴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덟폭 꽃수가 찬연한 병풍 앞에 석유등잔, 반닫이, 화초장, 경대, 반짇고리, 다듬이돌, 방망이, 옛날촛대 그 옆에 큼직한 수틀이 있고 비단실들이 걸쳐져 있다. 수틀 밑에 예쁘게 수놓아 만든 자집, 바늘꽂이, 가위집, 얌전하게 수틀 앞에 앉아 수를 놓다가 방금 자리를 비운 듯한 반듯하게 꾸며진 「규방」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그 모두를 손으로 해내는 바쁜 중에도 우리 조상 여인들은 아름다운 정서가 숨쉬고 있어 가위조차도 그냥 두질 않고 모양을 내서 집을 만들어 넣어 썼다. 어머니와 마주앉아 리듬을 맞추어 다듬이질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나라 타악기의 시작이 다듬이 소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휘엉청 달밝은 밤에 멀리서 바람결을 타고 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한가닥 청아한 음률이었기에…….

  한국자수 박물관에서 수집한 7000여종 가운데 7, 80점을 이번에 뉴질랜드에 드려다가 전시했다는 특별한 기회였다. 외국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아름답게 돋보이는 자랑스러움과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값진 추억거리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리운 고향산천 가고 싶은 마음은 꿈속에 끝없구나.
  한송정 정자가에 달빛만이 외로웠고
  경포대 앞에서는 한바탕 바람 불었지
  모래 위에 해오라기 모였다간 흩어지고
  바다 멀리 물결 타고 고깃배들 오며 가며
  언제 다시 임영길을 밟아 보고, 어머니 곁에서 함께 비단옷 바느질하리.』

  손으로는 수를 놓으며 머리로는 시상을 떠올렸을 그 방. 수틀 앞에 앉은 「신사임당」님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