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훌라버

[320] 훌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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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말쯤 한국에서는 ‘훌라버’라는 코미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훌라버(Flubber)’는 Fly 와 Rubber의 합성어로 ‘나르는 고무’ 라는 뜻으로 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친구와 구경을 하면서 거의 배꼽이 빠질 번 했다. 나는 원래 코미디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껴왔는데 그날만은 예외였다.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고 극히 인간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이어서였던 듯하다. 하도 오래된 영화라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주인공 젊은이는 요령이 없고 약지 못해 맨날 주위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고 모든 게 실패의 연속이다.

  친구들한테도 따돌림 당하고, 여자친구에게조차 외면 당하는가 하면 농구시합에서도 장신 선수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과학실험등에는 흥미도 있고 늘 관심도 많았다. 어느 날도 그는 자기집 창고의 실험실에서 연구 끝에 훌라버를 발명해 내기에 이른다.

  그는 이 물질을 운동화 바닥에 칠하고 실험을 한다. 몇 번 뛰어보니 탄력이 붙어 1m, 5m, 10m 까지도 계속 뛰어 오르게 된다. 그걸 이용하여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2층 침실까지 뛰어 올라 방안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높은 가로수나 전봇대 등에도 거뜬히 뛰어 오르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드디어 고약한 녀석들로 구성된 꺽다리 농구팀과 시합이 벌어지는 날 그는 비장의 무기인 ‘훌라버운동화’를 신고 시합에 나선다. 처음 몇 분 동안은 전처럼 상대팀에게 농락 당하는 듯 싶더니 어느새 훌라버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상대방 뛰어넘기, 공중볼 가로채기 등에 이어 골인되고 있는 상대편의 공까지 잽싸게 잡아채는 솜씨를 발휘한다.

  드디어 상대팀은 지쳐 떨어지고 의기양양한 주인공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코트를 빠져 나온다.  그 후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훌라버를 이용한 해결사 노릇을 단단히 해낸다.>  내용은 불확실하지만 제목이나 그 당시 느낌이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것은 재미 외에도 힘들고, 암울했던 당시 세상에서 훌라버가 청량제 효과를 톡톡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9월17일에 있었던 뉴질랜드 선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우선 이민 온 후 가장 치열했던 이번 선거를 보면서 과연 정치선진국임을 실감했다. 부정선거시비는 거의 못들었고, 개표 후에도 의례 몇군데서 보궐선거를 치러야만 하는 조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정말 깨끗하고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교민들의 참여도는 많이 높아졌고 선거에 임하는 자세 또한 의연했다고 들린다. “이제는 우리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자성과 자긍심의 발로로 보인다.

   그런데 개표하던 날 밤 TV에서는 박빙의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늘 우리의 심기를 괴롭혀온 ‘윈스턴피터스’의 초조한 모습이 자꾸만 화면에 클로즈업 되고 있었다. 현지인들뿐아니라 우리에게도 초미의 관심을 끈 인물이기에 낙선이 확인되는 순간 그의 어색한 표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피터스의 ‘Stop!’을 부르짖었던 Act당의 하이드당수가 엡섬지역에서 유일한 당선자가 되면서 국민당의 3선 현역 의원인 친한파 ‘리챠드워스’는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고, 노동당과 국민당의 대접전과는 상관 없이 연정결과는 우리의 기대와는 먼 방향으로 흘러만 갔다. 골프장에서 볼이 그린 가까이는 갔지만 근처의 벙커로 빠지면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상황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피터스가 외무장관이 되고, 2002년 이민법 개정의 주역인 ‘리안달지엘’이 복귀하는가 하면 대부분 장관들이 자리바꿈만하는, 그래서 더 답답한 현실이 된 것이다. 2003년 한인의날에 헬렌클락을 수행하고 나타나 현숙과 함께‘가슴이 찡하네요 정말로’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었던 지한파 ‘데이빗 컨리프’의 이민부장관 발탁도 그래서 별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영화에서 착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풀이 죽어 창고에 쭈그리고 있을 때, 학교에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상심해 있을 때까지만 해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훌라버’의 탄생으로 상황은 급변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환경이나 교육정책의 부재로 젊은이들이 자꾸만 떠나가는데, 무역적자만도 11억불이 넘었는데, 전혀 다른 색깔의 연정으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정국인데- 이제는 모든 것이 바닥까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때에 훌라버가 나타나 한 순간 분위기를 바꾸어 놓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법칙에는 음양과 전환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역사는 ‘리버절’(Reversal : 반전)의 연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