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멈추고 트랩을 내려오는데 활주로에서 올라오는 뜨겁고 습한 열기가 마치 찜질방의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숨을 막히게 한다.
'Lungi International Airport (룽기 국제 공항)'
공항의 이름을 적은 간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는 입간판이 눈에 뜨인다. 이 곳이 공항이 맞기는 맞는가 보다.
내리자마자 걸어서 약 200미터 정도 떨어진 격납고 같은 대형 양철 건물로 안내 되었다. 이 곳이 짐을 찾는 곳이란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로 달구어진 건물 안은 불에 데일 듯이 뜨거운 냄비 안처럼 느껴진다. 입고 있는 짙은 회색 남방은 아프리카 대륙을 그려 놓은 것처럼 땀으로 젖어 있다.
짐을 찾으러 가고 있는 나에게 수십 명의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고 팁을 받으려고 몰려드는 아이들인데, 서로 제가 먼저라고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아이들의 나이는 열 살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피곤함과 가난으로 찌들어서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 같아 보인다.
카로셀(승객들의 짐을 찾기 위해 돌아가는 장치)이 없는 이 공항은 트랙터로 승객들의 가방을 실어다가 건물 바닥에 풀어 놓으면 사람들은 이것 저것 뒤져서 자신의 가방을 찾아간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옷가지와 중요한 서류를 넣은 가방 두 개를 부쳤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 가방들은 보이지 않는다.
마중을 나온 유엔 직원의 설명이 가나의 아크라 공항은 비행기가 자주 연착되고 짐이 자주 없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반드시 본인이 기내에 휴대해야 한다고 한다.
초행인 내가 어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을까?
설상가상으로 분실된 짐을 접수하는 곳도 공항 내에 없으니 정말로 난감하다.
분실 신고는 내일 시내에 있는 항공사 사무실에 가서 하기로 하고 우선 본부로 가기로 했다. 본 가야 한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한다. 좌절과 실망감으로 온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 나가는 것 같다. 실망스러워하는 나에게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다면서 부까지 차로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 나의 물음에 마중 나온 직원은 다섯 시간 정도 능청을 떤다. 유엔 헬리콥터를 타면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내가 탄 러시아산 M-18 헬리콥터는 육중한 기체처럼 굉장한 소음과 함께 온몸의 오장육부를 다 흔들더니 어느새 바다너머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프리타운(Freetown)에 착륙했다.
드디어 장장 15일 동안 6나라를 거쳐 최종목적지인 시에라레온 프리타운에 도착한 것이다.
시에라레온 프리타운
코코넛 나무가 드리워진 하얀 모래 해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천연 열대림, 원색적인 칼라. 듣기만해도 이국적 낭만이 넘쳐 나는 아리따운 소녀의 이름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예쁜 이름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가 십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일지도 모른다.
사실 시에라레온은 오랫동안 파란만장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1560년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 곳 프리타운에서 미국으로 팔려 나가는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고, 약 300년이 지난 1700년대 후반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이 곳으로 돌려보내지고 정착하면서 프리타운이라는 이름이 부쳐진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비극, 1991년 3월 23일 밤
이웃나라 라이베리아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전직 육군 상사 출신인 포데 상코(Foday Sankoh)가 이끄는 이름도 거창한 혁명통일전선 (RUF: Revolutionary United Front)은 시에라레온 동쪽에 위치한 카일라훈 (Kailahun) 지역의 타운들을 습격한다. 몇 달간 지속된 반군의 일방적인 공격은 코노 지역에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 지역을 탈취하게 되고 급기야 정부군은 프리타운 쪽으로 퇴각을 해야만 했다.
포데상코는 1980년대 리비아에서 게릴라 훈련을 함께 받으면서 서로 친해진 라이베리아 대통령 찰스 테일러에게 다이아몬드를 주는 대가로 정부군과 싸울 전투병을 모으는데 필요한 자금과 무기 등의 군수품을 지원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이아몬드 광산 지역이 반군들의 전략적 최고 목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광산 지역을 놓고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공방전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정부군 한 명이 반군의 포로로 잡히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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