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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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뉴질랜드를 왔을 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목장과 많은 동물들로 인해 놀라면서도 마음에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구는 400만 명인데 소의 숫자는 사람과 비슷하고 양은 사람의 10배인 4000만 마리라고 하니 양식이야말로 정말 풍부한 셈이다. 소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 1에이커의 풀밭이 필요하다고 한다. 뉴질랜드 전원에서 살아가려면 땅이 2핵타 이상이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넓은 땅에 잡초 관리를 위해서라도 동물을 기를 수 밖에 없다.

우리 집도 땅이 넓어 울타리를 만들고 양 2마리를 얻어다 풀밭에 넣었다. 그런데 양 2마리가 풀을 다 뜯어먹지 못해 송아지 2마리를 양과 같이 기르다 보니 송아지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오히려 풀이 모자랐다. 사람들에게 양을 잡아먹으라고 말했지만 1년생이 넘은 양고기는 질겨서 안 먹는다고 하여 양털 깎는 사람에게 그냥 줘 버렸다.

풀이 모자라니 서로 풀을 먹으려고 동물들이 싸우는 꼴을 보게 된다. 지난번에 양이 덩치 큰 소한테 덤비는 것을 보고 쟤가 돌았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소들이 허겁지겁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양은 3살이고 소는 1살이었다. 동물들은 대부분 나이로 서열을 구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의 팔팔한 청년 닭들이 쭈그러진 늙은 닭한테 꼼짝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그런데 우리 집 가축 중에는 삼각관계를 갖는 애들이 있었다. 개와 오리, 수탉인데 모두 다 수놈들이다. 이것들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데, 대체적으로 개는 오리를 이기고, 오리는 수탉을 이기고, 수탉은 개를 이긴다. 순순히 지고이기는 게 아니라 실컷 싸운 결과가 그런 것이다.

우리 집안에는 또 하나의 삼각관계가 형성 되는 게 있는데 그것은 아내 그리고 나와 아들이다. 아들은 나한테 꼼짝 못하고, 아내는 아들한테 꼼짝 못하고 나는 아내한테 꼼짝 못하는 편이다. 우리 집은 나이로 서열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목소리 크기로 서열이 결정 되는 것 같다.

어저께 내가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주방에서 아내가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보~ 개 밥 좀 주고와요~" 그림 그리다 말고 개 밥 주고 오면, 손이야 또 씻으면 되지만 중요한건 구상이 흐트러져 그림이 개털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만한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엄마가 개밥 좀 주고 오란다."

컴퓨터 하던 아들이 툴툴 거리면서 개밥을 주고 왔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나를 또 불렀다.

"여보~ 과일껍데기 소 주고와요. 빵조각은 오리 주고요~"

"아들아~ 엄마가 소밥, 오리밥 주고 오란다."

아들이 밥을 주고 툴툴 들어오더니 엄마한테 한마디 하였다.

"엄마~ 뭘 좀 시키려거든 정리해서 한꺼번에 시키라고요~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 백번 맞는 말~ 아니, 그럼 그 동안 아빠가 똥개였었나?)

아들의 질타에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만약 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안하면 될 거 아냐~ 왜 큰소리는 쳐!"라며 따지고 대들었을 텐데... 그 날 밤 아내가 시무룩하게 앉아 한숨 쉬며 말하였다.

"여보 우리아들이 너무 변한 것 같아. 한국에서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가?" (변하긴 뭘 변해, 예전과 똑 같은데...)

"자, 당신 열 받는데 술이나 한잔 마셔," 내가 와인을 한잔 따라 주자 벌꺽 벌꺽 마신 후 또 말하였다.

"엄마한테 꼬박 꼬박 말대꾸나 하고... 전엔 안 그랬는데..." 아내의 표정이 여전히 심각해서 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들하나 있는 게 엄마한테 대들기나 하고, 이 자식 내가 혼내 줄께!"

내 말에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보시시 펴지면서 "혼내긴요... 그래도 우리아들 만큼 착한애가 어디 있어요."

어쩌면 그 말 한마디에 아들에 대한 적개심이 삭 가시다니...

나는 잠자리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아들 앞에서 아내를 심하게 나무랐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들이 엄마를 위로한다고 와인 한 잔씩 하면서 "아빠가 요즘 엄마한테 너무 심한 거 아냐? 내가 한소리 할까?"

"그래도 이 세상에 네 아빠만큼 좋은 사람이 어디 또 있는 줄 아냐," 아내가 이런 말을 할까? 아니면, "네 아빠처럼 못된 인간이 또 어디 있겠냐, 한 두 소리 가지고 어림도 없다 어림없어~ "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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