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루아→타우포(Ⅱ)

로토루아→타우포(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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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단순 구조는 튼튼한 피라미드 형태로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는 다른 대륙의 먹이사슬에 비해 훨씬 더 부서지기 쉬운 예민한 구조여서, 한 번 시작되면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결국 남태평양의 원주민이 들여온 쥐를 시작으로 해서 유럽인이 개, 양, 가축 등을 들여놓자 뉴질랜드는 더 이상 새들의 파라다이스가 될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토끼의 개체수가 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들여온 족제비들이 빠르고 힘이 센 토끼보다 잡기 쉬운 어린 새들로 눈을 돌리면서 피해는 점점 더 커지고 말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종류가 멸종되기는 했지만, 뒤늦게나마 사태를 바로잡으려는 뉴질랜드 정부와 전국민의 힘겨운 노력으로 멸종 위험에 처한 새들은 다시 숫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의 독특한 새들은 대도시의 한적한 마을이나 공원, 홀리테이파크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많다. 로토루아 호숫가에서는 투이, 갈매기, 팬 테일, 블랙버드, 청둥오리, 흑조, 백조, 가마우지 그리고 거위 등을 볼 수 있는데 이 새들은 사람에게 경계심을 갖지 않는다. 로토루아 호수는 화산의 마그마가 빠져나간 자리에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인 칼데아 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지는 않지만 넓이가 2300만 평이 넘는 북섬 제2의 커다란 호수이다.

섬 한가운데는 나중에 2차 화산 폭발로 생성된 모코이아 섬이 배꼽처럼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가지고 나가자 순식간에 수십 마리는 될 것 같은 많은 새들이 모였다. 캠퍼밴 내부로 쫓아 들어올 정도로 끈덕진 새들을 겨우 떼어놓은 후에야 로토루아와 타우포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와이오타푸로 향한다.

와이오타푸에 있는 화가들의 팔레트

모순 같지만 자연 속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과 색깔도 포함되어 있다. 증기와 투박한 유황 냄새를 뿜어 대는 화산지대가 이토록 곱고 특이한 빛을 낸다는 것은 이곳에 와 보기 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연 속에는 없는 모양, 없는 색, 없는 소리가 없다. 없어 보인다면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와이오타푸(Waiotapu 신성한 물)에 있는 '화가들의 팔레트'의 샛노란색은 강렬한 형광색을 띠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흘러내리는 온천수 속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네랄들이 누적되어 수백 평이 되는 테라스를 만들고 있다. 군데군데 뚫려 있는 땅에서는 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그중 몇 군데에는 위험 표지가 붙어 있다. 그 옆의 샴페인 풀 역시 장관이다. 짙은 주황색의 끓는 호수에서 보글보글 올라오는 탄산가스가 연녹색의 온천 위에 샴페인처럼 올라오고 있다.

특히 와이오타푸의 제일 끝에 나코로 폭포(Ngakoro falls)와 나코로 호수(Lake Ngakoro)는 조금 멀리 있지만 꼭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한다. 물감을 탄 것 같은 연녹색 호수에 비치는 숲이 비밀스러운 곳이다. 이런 장소를 보면 유럽인이 오기 전 마오리 원주민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의 뉴질랜드도 아름답지만 개발되기 전의 모습은 더욱 순수했을 것이다.

오늘 도착한 타우포에 번지점프대가 있다고 하자 허영만 화백이 자신감을 보인다. "번지점프? 뭐 그냥 뛰면 되는 거지. 그거 뭐 어렵나!" 그런데 막상 번지점프 장소에 도착하자, "이런 데서 뛴다고?"하며 난색을 보였다. 어쨌든 내일 꼭 뛰겠다고 약속을 했다. 오늘 숙소는 드 브레트 스파 리조트(De Brett Spa Resort)이다. 뉴질랜드에서 몇 안 되는 별 5개짜리 홀리데이파크인데 시설도 경치도 모두 최고다. 온천을 함께 운영해서 저녁 식사 후에 모두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었는데, 번지점프가 좀 위험해 보인다느니, 가격이 비싸다느니 하며 허영만 화백이 핑계를 댄다. 결국 봉주 형님이 경제적 후원을, 그리고 20만 명이 넘도록 무사고임을 이야기하고서야 번지점프를 하기로 했다. 입대를 앞둔 청년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허영만 화백의 말수가 점점 줄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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