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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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006. 09:02
박신영 ()
아들이 받아 온 상장을 보니 이렇게 씌여있다;
“JY is making great use of his common sense when working through problems."
상을 주는 이유도 참 다양하네. 담임선생님이 이런 문구를 만들어내려면 생각좀 해야하겠네.
한국처럼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위 학생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이 상장을 수여함'따위의 말을 할 수도 없을테니 괜한 common sense를 빌려온 모양이다.
상 받아왔다고 아들녀석은 10불만 달라고 한다. 격려차원에서 주기로 했다. 아직 준건 아니고 언제 줄지도모르지만......
그런데 이제 겨우 만 8살 먹은 아이가 무슨 common sense가 있었는지 나도 궁금하다. 하긴 교실안에서 하루 6시간씩 매일 같이 생활하다보면 비록 어린 아이들이지만 온갖 종류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 게다가 한국처럼 수업시간외에는, 반장이나, 주번 정도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모든 학생이 선생님과 접촉해야할 일들이 많은 구조라고 하겠다.
교실의 테이블, 의자의 위치가 한국의 유치원처럼 되어있고, 언제 그 테이블에 앉아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교실안을 들여다볼때마다 선생님앞에 둥그렇게 모여 바닥에 앉아있고, 주번활동(?)도 아이들이 매일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선생님 심부름 연락책(메신저)담당, 교실안의 쓰레기통을 하교직전 교실밖에 내어놓기, 아침에 교실창문을 열고 하교직전 닫기, 화분에 물주기, 교실내의 책꽂이 책정리등등.
아들녀석은 지난주는 자원해서 선생님들의 심부름 담당을 한다더니 이번주는 컴퓨터에서 daily notice를 보고는 어떤 소식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ㅎㅎ 요즘 영어가 좀 되는 모양이다. 전혀 영어를 말할 줄 모르다가 1년만에 이 정도라면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에게 영어공부를 언제부터 시킬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내가 대학다닐 때 영어학을 배운 기억으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영어학자라고 할 수 있는 노암 촘스키의 이론에 의하면, 9살 이전까지만 외국어공부를 시키면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9살이 되도록 영어공부를 전혀 안 시키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두돌이 되기전부터 여러 경로로 주변에서 얼마나 들들 볶는지, 하여간 6살이 되도록 한국어를 우선 제대로 익히기를 바라면서 기다렸다. 이제 어느정도 한국말로 대화도 통하고 하니,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집에서부터 영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 아들놈의 반응이, “엄마, 시끄러워.” “한국말로 해.” 나는 뜻밖의 반응에 상당히 놀라고 주춤했다. 훨씬 어려서부터 하는건데, 하는 후회도 했다. 아들의 반감이 워낙 심해서 나는 다시 2년을 기다렸다. 8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영어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나 지지부진 성과가 없는지 정말 속상할 정도였다. 그랬던 아들이, 뉴질랜드에 온 지 1년만에 영어일기를 쓰는 것이 한국어 일기보다 쉽다는 소리를 할 정도가 되었다. 내 자식이라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상당히 언어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하긴 한국말도 30개월쯤부터 길거리간판을 읽을 정도였으니까.
영어습득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영어책을 많이 읽히면 좋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 다녀왔다. photo id랑 우편물 증명을 보이니 금방 카드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약간 웃겼던 것은, 도서관 카드를 4종류 보여주면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할 때였다. 기능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카드위의 그림이 다르다는 차이뿐이었는데, 쓸데없는 일에 돈을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싱가폴 출신의 중국 사서 아줌마는 정말 친절하고 말도 많았다. 지금껏 내가 겪어본 한국도서관의 많은 사서들은 정말로 조용하고 근엄하고 불친절했는데 이런 사서도 있구나 싶었다. 도서관학을 전공한 것은 다 같을텐데......
도서관에서 눈치 안 보면서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본 것도 첨이었지만, 1인당 한번에 35권의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얘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것도 28일동안!! 아이들의 카드까지 같이 만들고 나니 한번에 105권의 책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인당 3권씩 대출기간 10일로 기억된다) 게다가 책꽂이 중간 중간에 딱딱한 나무의자가 아닌 푹신한 소파도 여럿 있다. 이곳에 앉아서 한가하게 책(신문이나 잡지라도)을 읽을 여유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한달에 한번만이라도.
상념을 접고 책꽂이에서 닥치는 대로 뭉텅뭉텅 책을 골라내었다. 내가 들고 가기에 너무 무거워져서 대충 20권만 빌렸다. 둘러보니 책 뿐만 아니라 영화 DVD, CD롬, 비디오, 카세트, 여성잡지까지 빌릴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이곳에서 아이들 영화도 골라봐야겠다. Video Ezy같은데보다 조건이 휠씬 좋았다. 책을 반납할 때도 꼭 빌린 곳에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오클랜드시의 도서관이면 어느 곳이고 괜찮다고 한다. 다음에 Daven Port에 놀러가면 그곳의 경치좋은 도서관에도 들어가 볼 생각이다.
왜 여태 도서관을 이용 안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