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칭, 2 인칭, 3인칭, 그 사랑의 역설법

1 인칭, 2 인칭, 3인칭, 그 사랑의 역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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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초등학생은 "엄마요!"라고 말한다. 좀 자란 아이는 "남자 친구요, 여자 친구요!"라고 대답하고, 한국의 부모들은 배우자가 아니라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어 문화권 사람들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라고 생각 한다. 그래서 '나'를 'the first person, 1인칭' 이라고 하고, 그 다음으로는 내가 지금 현재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을 'the second person, 2인칭'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모두는 'the third person, 3 인칭'이라고 여긴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도, 부모도, 내가 애지중지 여기는 애완견도 모두 내가 지금 현재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고 있지 않으면 'the third person, 3 인칭'이 된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도 내가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나 이상 소중할 수는 없다.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대한민국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가 태어난 곳이 대한민국이니까 일본보다 미국보다 대한민국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고 '나'의 조국이 더 번영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미력이나마 나의 힘을 조국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태려 할 뿐이다. 편지 겉 봉투에 주소를 쓸 때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000번지 김 재석'이 아니라 영어 문화권에서는 '김 재석, 000번지, 동숭동, 종로구, 서울시'로 쓴다.

이처럼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1 인칭,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부모와 형제, 학교, 사회로부터 요람에서 무덤까지 받게 되는 끝없는 교육을 통해 나 자신을 훈련시키고,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때로는 협력을 통해 자아를 실현시켜 나가고, 훌륭하게 성장해 나갈 때 비로소 타인으로부터 존중 받게 된다. 그 중의 극 소수가 세계적인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화제가 되기도 하고, 훌륭한 작가나 기업인, 법조인, 정치 가, 연예인이 되었다고 존경받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에 더해서, 내 부모나 형제, 친척, 친구 등 2 인칭을 돕는 일까지도 거뜬히 해 나간다. 훌륭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후기 산업사회로 이미 접어든 오늘날, 나 자신 하나 추스르기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2인칭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는 더욱 더 어려워 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인칭에게 귀찮게 손만 벌리지 않아도, 그들을 이용하거나 해치는 일만 하지 않고 살아도 중간은 가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가 한국과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요즈음, 그래도 희망의 빛은 보인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뛰어난 인재나 연일 TV 등 대중매체에 오르내리는 정치 권력자 집단이나 영화 배우 등, '너' 잘난 인물들에게서가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 등 한국적 망국병과 같은 이익적 2 인칭 이해 관계가 전혀 얽히지 않은 타인, 순수 3 인칭을 돕는 크고 작은 손길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3 인칭 타인을 돕고 있는 이들을 보면 한결같이 그들의 재산이나 능력이 남아 돌아서 3 인칭 타인을 돕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나 내 가족을 위해 썼으면 좋을 돈과 노력을 사회적 약자인 타인에게 나누어 베풀었을 때, 열배 백배 그들에게 더 유용하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남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들에게는 이타적인 마음만이 있고 이기적인 동기는 없었을까?

그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현명한 이기심이 충만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이기심의 보따리를 슬쩍 풀어 보았을 때, 1 인칭인 나를 위해 물질과 능력을 썼을 때 보다는, 2 인칭을 위해, 3 인칭을 위해 나의 것을 나누어 주었을 때 나의 행복감이 20배 30배 늘어나게 된다는 참된 행복의 비밀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3 인칭 남을 돕는 것이다. 느껴 본 사람들만이 아는 기쁨이다. 1 인칭에 대한 사랑이 내 집 앞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 이라고 한다면, 2 인칭에 대한 사랑은 넓게 흘러가는 강물 이고, 3 인칭에 대한 사랑은 금보다 더 귀한 생명 같은 소금을 품고 있는 바다다. 나이 사십을 넘기고부터 깨달은 늦된 생각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이 허망한 말은 21세기 오늘날 수정 되어 마땅하다. 가죽을 남길 호랑이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거의 멸종되었고, 너 잘난 이름을 뽐내려는 인간들에 의해 세상은 시끄럽다. 타인을 위해 나를 조금씩이나마 양보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인간의 동물과 다른 가장 뛰어난 능력이고,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8년 성탄에 즈음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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