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 오브 아일랜드(Ⅱ)

베이 오브 아일랜드(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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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 오브 아일랜드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바다이기 때문에 유럽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마을이 번성했고, 나중에 이곳에 도착한 유럽인에게도 뉴질랜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베이 오브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사실 뉴질랜드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땅의 역사는 짧다. 마오리족이 살기 시작한 800~1300년에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였고 이후 1815년에 뉴질랜드 최초의 유럽인 아기가 태어났으니, 이 땅에서 유럽인의 역사를 헤아려 봐도 200년이 채 안 된다. 뉴질랜드가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가 된 후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마오리족 사람들은 유럽인과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생전 처음 겪는 홍역, 천연두 등으로 죽어갔고, 부족을 지키기 위해 불법으로 총을 구입하는 데 많은 재산과 값진 보물들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자립을 위해 힘들여 구입한 총들은 부족 간 전쟁으로 이어져, 1800년대 초까지 약2만 명 이상의 마오리족 원주민이 다른 부족과의 전쟁으로 죽어갔다.(알려진 바로는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에는 부족 간 약탈이나 전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무기는 영국이나 유럽이 국가 차원에서 판매한 것이 아니라, 고래잡이 어선이나 물개 잡는 선원들, 그리고 일반 상인들에 의해 밀매되었다.

영국은 이러한 초기 유럽인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땅을 선점하기 위해 1840년 2월 6일 마침내 뉴질랜드 탄생의 초석이 되는 와이탕기 조약(The Treaty of Waitangi) 체결을 강행한다. 이 조약은 영국 왕실과 마오리족 사이에 뉴질랜드의 주권과 권리 등에 관해 합의하여 맺은 것으로 500여 명 이상의 마오리 부족장들의 서명을 받아 완성되었고, 조약 문서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어와 마오리 언어로 3개 조항을 만들어 체결된 이 조약은 언뜻 보면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영국이 남태평양의 작은 부족 원주민의 동의를 얻어 정립한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평등한 조약처럼 보이지만, 계약 내용에 대한 영국과 마오리족의 해석이 각각 달라서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주민과 이주민이 동일한 권리를 갖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가 뉴질랜드라는 것이다.

식객들의 저녁 식사

오늘은 대형 마트에서 식재료를 산 다음 호젓한 케이프 레잉가 근처 해변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의 배고픔을 그대로 드러내기라도 하듯, 식품을 담는 트레이가 금세 음식으로 가득찼다. 저녁 식사 재료는 치즈와 고기, 홍합으로 정했다. 뉴질랜드 초록잎 홍합은 맛은 물론 관절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 치즈 역시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한국인 입맛에는 고소하고 짜지 않은 브리(Brie)가 가장 무난하다. 만약 말랑말랑하면서 생크림 냄새가 나는 브리가 너무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톡 쏘는 맛의 에피큐어(Epicure) 치즈나 진한 향의 블루치즈(Blue Cheese)등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브리가 냄새 없는 신선한 회라면 블루치즈 계열의 치즈는 푹 삭은 홍어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얼마 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오지여행을 다녀온 허영만 화백은 체력이 거의 바닥나 입술이 다 부르튼 상태라, 정육 코너에 서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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