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그 비취에 가면.....

[320] 그 비취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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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 곳을 찾았을 땐 단순히 집에서 가깝다는 지리적인것 말고 달리 갈만한 그럴 듯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는데 이제는 정이 들대로 들어서 헤어질 수 없는 친구처럼 너무나 좋아서 달려가곤 한다.

  갈 때마다 새로워지는 재미와 밀림같은 나무숲을 꾸불 꾸불 내려가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구멍이 뚫려 시원한 바람이 넘나드는걸 알게 된다. 고목들이 어우러져 내뿜는 신선한 공기, 차창을 활짝 열어 놓으면 저절로 삼림욕이 되고 문명의 충격과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원시로 돌아가는 순수함을 맛본다.

  광능 수목원을 온 듯한 착각에 고국을 그리는 향수의 목마름을 잠시 달래기도 하면서…, 속진을 멀리한 자연속에서 비치에 닿기도 전에 벌써 반쯤은 취한 듯 몽롱해져 까마득히 현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방금 도심을 벗어 났는데 아득한 딴 세상에 온 듯한 이질감도 마음을 바꾸는데 한 몫을 더 하고. “와우 멋져라. ”
  
  오목하게 작고 아담한 비치,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 늘 조용해서 더욱 좋다. 물이 빠져나간 바닥엔 꺼칠한 굴껍대기며 조개껍질들이 밟혀서 발 딛기에는 사납지만 그것들이 있어 바다다운 갯내음이 신비스럽게 후각을 자극하질 않는가. 너무 어려서 물따라 미쳐 못 내려간 아주 작은 게를 만나기도 하고 숨쉬는 고동을 만나 바다속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수평선만 보이는 큰 바다는 너무 아득해서 웬지 모르게 슬픔이 밀려 오는데 저편에 어딘지 모를 육지가 보이는 것은 마치 강건너 마을 친구를 생각하게 하는 정스러움이 있어서 좋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나무 울타리가 쳐진 언덕길을 따라 산속으로 드물게 네 채의 그림같은 집이 숨은 듯 보인다.

  삼태기속 같은 비치 오른쪽 산은 금방 내려온 길이 분명 거기에 있을텐데 숲에 묻혀 사라졌고 높게 막혀 버린 산허리에 하얀 이층집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비치를 향해 박혀있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면 무슨 꿈을 꿀까? 길 아래 나무사이엔 굽어보듯 비스듬히 벤치가 하나 심심하게 놓여 있다. 연인들이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기에 좋을 듯 싶지만 대로에서도 뽀뽀를 하는 이 나라 문화이니 그곳은 언제나 임자가 없어 썰렁하다.

  타는 사람이 없는 세 개의 그네도 심심하긴 마찬가지. 아이처럼 거기 매달려 앉아 흔들흔들 움직여도 보고 몸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면 또 하나의 무한한 푸른바다가 열려 있어 문득 풍덩 빠져 보고 싶다는 충동을 받는다. 내가 마지막에 가는 하늘나라가 저 빛나는 곳이라면 혼자 가는 죽음이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따끈따끈한 양광에 잠시 몸을 맡기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싸한 바람을 맞으면 졸도 할 것같은 짜릿한 흥분 속에 현실을 몽땅 잊어버려 머리가 가벼워진다. 입구 나무숲에 음습하게 들어 앉은 외딴집. 언제봐도 빈집처럼 쓸쓸했는데 웬일일까 파란색 페인팅이 선명하다. 「비치홀」이란 하얀 간판 글씨도 산뜻하다. 왜 하필이면 파란색일까? 나무숲에 대비되는 빨강이라던지 그러면 동화속의 집처럼 더욱 재미있었을텐데……,  밤이면 숲속 요정들이 모여서 멋진 춤파티라도 벌리며 놀다가는 집일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오리가족 한무리가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보료같은 잔디밭은 색종이를 뿌려 놓은양 난쟁이 꽃들로 온통 노오랗다. 왼쪽 벼랑끝에서 돌아 나오는 낚싯꾼. 거기가 늘상 가보고 싶어 궁금했는데 낚시터가 있었구나. 들고 나오는 가방이 제법 묵직한 걸 보니 수확이 좋았나보다.

  저녁 무렵이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오는 부부들이 더러 있다. 차문을 열자마자 미친듯이 달려나와 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시원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활기가 솟는다. 줄에 매여 있다가 풀려난 저 자유가 얼마나 기쁠까. 인간세계의 속박된 굴레에서 벗어난 잠시의 내 편안함도 마치 저 개를 닮지 않았을까.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잘 그려진 풍경화 속에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나른하게 한잠이 들면 내 차는 일등호텔 침실. 피곤한 세상 여독에서 풀려나 새로운 시작이 일렁이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그 무엇들보다 더 큰 이유는 내 혈육의 강한 체취가 아직도 거기에 남아있어 나를 부르고 있어서다.  언니가 오셨을 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오후 한 때를 보냈던 추억이 걸러져 되씹어 보는 그리움. 파도소리에 섞여 바람소리에 섞여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객지 생활 늘 건강해야 돼 몸 조심 해”그게 좋아서 나는 그 곳에 자주 간다. 어머니 같은 우리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