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러 가던 날

투표하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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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참 기분이 좋다. 어린애처럼 마음이 둥둥떠서 괜스레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사뿐사뿐 몸도 가볍다. "투표하러 가는 날". 이 나라에 와서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은 왜일까? 혼자 자문하면서 뻔한 답을 또 생각해내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 제 10대 재 오클랜드 한인회 회장 선거의 날" 지금까지 그렇게 못했던 일로 새롭게 시행되는 직접 선거이기에 이번에는 나도 교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한표의 권리가 있지 않은가. 뭔가를 잃었던걸 찾았다는 상큼한 기쁨이 안도와 함께 가슴 밑에서부터 차올라 왔다. 어디 나만 그랬을까? 교민들 모두의 마음이 똑같았으리라 믿어진다.

그 동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교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인회"가 어려움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다행스럽게도 9대 한인회가 그 어느 때보다 친밀감을 보여 주며 열심히 다져 놓은 뒤라서 이제 10대에 거는 희망과 기대가 확실한 믿음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요즈음 교민들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선거이야기가 뜨겁게 오가고 나름대로 이러 이런 사람을 뽑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관심사가 이슈가 되어 있다.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들을 위한 회장을 뽑는 일. 얼마나 기다려 왔던 일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동안 "뉴질랜드 한인회"란 명칭 때문에 지역회장들과의 논란도 많더니 이제 그 문제도 "오클랜드 한인회"라는 명칭으로 바로 잡아 해결되었고 때를 같이하여 "코리안 가든"의 부지 확정도 되었으니 한가지씩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 가는 듯한 차제에 한인회가 할 일은 이제부터. 교민들이 뽑은 회장은 또한 그만큼 어깨가 무거우리라 짐작된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 때에 잘 해 보겠다며 두 후보가 나와서 경합을 벌이게 된 것도 잘된 일이다. 각자가 비젼있는 공약을 내걸고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는데 열띤 목소리에 막강한 힘이 실린 자신감들이 우리를 든든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허지만 너무 거창한 것은 빌 공자 공약으로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기에 뭔가 불안함이 앞선다. 진솔하고 조촐한 진심으로 교민을 위한 봉사자이기를 자청하는 그런 사람을 모두가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약속 잘 지키고 정직하게 일해서 떠날 때 당당한 뒷모습을 보여 주는 그런 멋진 사람말이다.

엊저녁부터 미리 찾아 둔 여권과 준비물을 챙겨 들고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진작부터 동행의 약속을 했던 친구는 갑자기 무슨 바쁜 일이 생긴걸까? 혼자서 가라는 다급한 연락을 받고 마감시간을 놓칠세라 City로 향했다.

"형님~" 영사관 입구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우리 동네에서 요식업을 하는 주인 아줌마였다. "우리는 끝내고 돌아가려는 참이에요"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딸과 함께였다.(세상에 그 바쁜 시간을....) 영주권도 없이 임시비자로 어렵게 사업을 꾸려 가는 그들 형편을 너무도 잘 아는터라 투표소에서의 만남이 특히 남달랐다. 그래 한인회가 절실하게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 분들이 먼저 일 것이다. 하지만 먼저 자리잡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도 이런 기회에 귀감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1.5세대로 성장한 청년들, 유학생들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달려온 차림새 그대로의 남자들, 모두가 이 날을 기다려 왔던 게 틀림없다.

"혼자 오셨어요? 참 멋쟁이시네 준비도 철저하시구-"(어어 이건 또 무슨소리?) 젊은 여인의 상냥함이 너무나 친근해서 왜? 냐구 짓꿎게 물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에 먼 길 혼자 나와서 투표에 참여하는 의식있는 멋쟁이라구 칭찬을 받으니 이제 내가 진짜 늙은이로 취급을 받는 게 좀 씁쓸했다. 그러나 잔치집에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모두가 들떠 있는 기분이라는 걸 읽으며 발길을 돌렸다.

어쨌든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 과연 당선이 될런지? 옳은 판단이었는지는 몇 시간 뒤면 밝혀질 일, 뒤도 안보고 집에 돌아오니 마감시간 3시가 이미 지나 있었다. 서둘러 볼일을 끝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한우리 교회"로 빨리 가라고 일렀다. "오케이" 명쾌하게 들려 오는 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씩씩하고 힘이 넘쳐 보였다.(오늘은 역시 좋은 날이구나-)

큰 일을 해 낸 것 같은 뿌듯함으로 오늘은 이대로 마무리해도 괜찮을 듯 싶다.

이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으니 당당한 목소리로 따질 것은 따지고 내게 지워진 의무도 책임져야지.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 동참하면서 우리의 한인회가 눈부시게 발전해 가기를 빌어야겠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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