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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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2006. 23:35
박신영 ()
20부작 TV 드라마를 며칠새에 다 봤다.
아는 엄마가 재미있다고 한번 보라고 비디오테이프 4개 권해 주길래, 마지못해(?) 받아서 며칠동안 잊고 있다가 아이들 다 재워놓고 심심해서 틀었더니, 보다 보니까 푹 빠져서, 얼른 4개 갖다주고, 다시 4개 빌려오고, 또 갖다주고, 또 빌려오고.....
대개 새벽 2,3시경까지 잠기는 눈을 억지로 참아가며 무슨 숙제하듯이 다 해치웠다.
며칠째 밤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낮에도 머리가 뻐근하고 졸려 죽을지경이다. 이런 내 모습이 좀 한심하고, 내가 이거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넘 재미있었다.
뉴질랜드와서 첨으로 보는 한국드라마여서 새삼스럽기도 하고, 요즘 한국드라마 잘 만드네 싶기도 하고, 첨보는 탈렌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미남미녀들이라 보는 재미도 있고, 하여간 지난 며칠간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상황속에 나도 속해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내용은 뻔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어리벙벙 평범한 여자가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건데, 게다가 과부가 총각을 만나서......
하지만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이후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와 유사한 내용의 영화, 소설, 드라마로 다년간 훈련이 된 덕분에 이런 뻔한 내용은 그래도 여전히 익숙해서 재미있다.
이젠 나도 시작된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해서 앞으로 ‘이 죽일놈의 사랑’도 봐야 하고, ‘프라하의 연인’도 봐야하고, 또 다른 새로운 드라마들도 계속 쫓아다녀야 하고.......
예전에 미국에서 살때는 한국드라마는 커녕 한국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곳에 살았고, 어쩌다가 한국음식 먹어보는 것이 큰 낙이었는데, 오히려 이곳 뉴질랜드와서는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사는 기분이다. 한국 살때는 드라마니 쇼프로그램이니 하여간 TV는 별로 안 보고 살았는데, 요즘은 인터넷 통해서 한국뉴스를 열심히 쫓아다니는 편이고 이렇게 장시간 투자해서 드라마까지 보고 있자니, 나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대세에 순응해가는 평범한 아줌마가 된 것 같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작아서 그런지 자체 TV프로그램도 별로 없고 맨날 틀어주는 것이 미국영화나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처럼 TV가 갖는 중요도(?!)가 높지 않아서 한국프로그램 녹화해다 보는 것이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 게다가 외국살면 그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란 것이 누구든지 생기는 법이라 대부분 비슷한 심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디오 돌려보기를 한다. 전부터 이런 문화(?)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 뭐 그렇게 보고 싶을까 하고 한발빼고 있었는데 나도 이제 그 그룹에 낀 기분이다.
비디오 다 보고나서 그 내용에 관해 서로 심각(?)한 대화도 나누고.....
이렇게 외국생활에 익숙해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