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 국악원 단장, 이성재 씨

유희 국악원 단장, 이성재 씨

0 개 1,383 김수동 기자


추석 달맞이 국악공연은 그야말로 신명 그 자체였다. 가장 먼저 “비나리”가 흥을 돋웠다. 
사물놀이는 무대를 한 바퀴 돌아 박진감 넘치는 우리의 소리로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들도 함께 하며 “얼씨구 좋다. 얼쑤!”를 연호하며 추임새를 넣는가 하면, 어깨춤을 추는 교민들과 외국인들로 한인문화 회관은 그야말로 신명의 한 판 춤사위가 벌여졌다. 
뉴질랜드 하늘아래 울려 퍼진 우리의 국악음악에 많은 교민들이 벅찬 감동과 큰 박수를 보냈다.


지난 21일, 오클랜드  한인 문화 회관에서 흥겨운 국악 콘서트를 열었다. 많은 학생과 교민들이 참석한 국악 공연은 신명 그 자체였다.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뉴질랜드 1.5세대들이 우리의 멋과 흥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고국을 떠나 힘든 타지생활에 지친 교민들에게 신명난 장구 소리는 힘이 되었다. 짧은 공연시간 동안 우리를 신명나게 만들어준 유희국악원 이성재 단장을 만나 보았다.
 
젊은 국악인들에 모임
유희국악원은 젊은 국악인들이 모여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한국적 공연물을 창작하고 발전, 계승시키기 위해 모인 그룹이다. 한국에서는 유희컴퍼니로 활동을 했었으며 뉴질랜드로 넘어오면서 교민들께는 유희국악원으로, 키위들에게는 유희컴퍼니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번 공연 중 북을 치고, 접시 돌리기를 했던 윤현진 단원은, 한국에서도 익살스러운 연기와, 다양한 표정으로 이미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국악인이다. 소고놀이와 징을 쳤던 윤대복 단원은 한국에서 천안시립국악단에서 공연을 하다 뉴질랜드로 넘어오게 되었다.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악기를 만드는 것에도 재주가 뛰어난 국악인이다. 장구를 쳤던 오승원 단원은 작년에 해군 홍보단으로 공연을 왔다가 제대한 후에 뉴질랜드로 와서 유희 국악원 단원으로 음악적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 단원이다.
 
 
“길장구” 유희국악원 첫 창작 작품
지난번 공연 중 박수를 많이 받은  “길장구”는 유희국악원이 오클랜드로 넘어와서 처음 만들어낸 첫 창작 작품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원래 사물놀이에서 4명이 장구로 합주를 하는 설장구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을 매주 주말마다 오클랜드 Queen st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 현지인들이 공감하기 어렵고 연주시간이 길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길장구다. 이 작품은 전통장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살풀이 장단과 블루스, 삼바, 락 리듬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장단으로 구성되어 오클랜드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어제 연주 역시 많은 박수와 감동을 선사 했다.
 
유희 국악원을 이끌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10살 때 학교 풍물 반에서 국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소중한 시간들이 있었다면, 뉴질랜드로 넘어온 시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값지고 소중했다. 여러 힘듦과 고생이 있어 후회도 많이 했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을 통해 단단해 질 수 있었다. 지난번 공연은 내가 그 동안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그 동안 고생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유희국악원을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거리 연주다. 우리 공연단은 매주 주말에 퀸스트릿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많은 키위가 좋아하고 또 명함 받아가며 박수를 보낼 때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다. 어느 날은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렸다가 맑아졌다가 날씨가 요술을 부릴 때가 가끔 있다. 그때는 공연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막상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비 때문에 관객이 한명도 없을 때가 있으면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하지만 대부분 뉴질랜드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좋아해 주고 같이 즐겨 국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노력 하고 있다.

초등학교 국악수업 인연으로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처음으로 국악을 알게 되었다. 지난 1994년은 국악의 해로 그 당시 초등학교에는 대부분 학교에 풍물 반이 있었다. 그때 악기를 뚱땅거리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그 당시, 사물놀이를 같이 하던 친구들과 함께 사설 국악원을 다니면서 국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1960년 향사 박귀희(판소리 인간문화재, 안숙선 명창 스승)선생님께서 설립하였고, 6기 박범훈((전)청와대 교육문화수석), 9기 김덕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물놀이 창시)이 나온 국악학교의 명문이다. 저는 42기 졸업생으로서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서울국악예고였다. 국악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당연히 국악예고를 진학해야 했고 학교 시험에 합격하려고 레슨 받아가면서 밤새도록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엄격한 선후배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당시 타악과와 무용과 위주의 학교 풍물부가 있었는데 내가 상쇠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기도 높아져서 학생회장까지 지냈으며 또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장원,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대회” 대통령상 등 많은 경험은  국악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 시절은 문화관광부 소속의 국립예술학문기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다. 사물놀이의 창시자이신 김덕수 교수님께서 여기에 계시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물놀이 전공자들이 이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학교 다닐 때, 전통예술원뿐만 아니라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등 협업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했다. 전통을 확실히 배울 뿐만 아니라 새 시대에 맞게 재창조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교수님들께서 심어주셨다. 
 
교민들이 국악원 단원으로 활동을 원 하다면 
일단 국악은 빨리 배울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국악에 대한 타고난 것이 있어  더욱 빨리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 빠르게 배운 탓에 나중에 지루해질 수 있는 것이 국악이다.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히 하게 되면 국악의 ‘맛’을 알게 된다. 그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술 한잔하고 콧소리로 민요를 흥얼거릴 때, 손장단을 두들기고 있을 때, 단소로 청성곡을 연주할 때 국악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흔히, 소리꾼이 절벽에서 소리 공부하는 것을 영화나 광고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사실 이건 전문 소리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악을 배우시는 분들이 할 수 있는 연습 법 이다. 자연과 함께 연습을 하면 훨씬 더 쉽게 국악의 ‘맛’을 찾을 수 있다. 유희 국악원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유희 국악원 꿈, 세계 진출
유희국악원의 꿈은 세계 시장 진출이다. 여기 뉴질랜드에서 키위들에게 우리 문화를 퍼트리고 싶다. 좀 더 국악을 쉽게 그리고 널리 보급하려고 넘어온 그룹이 유희국악원이다. 앞으로 교민들은 물론 키위 공연시장에 진출해서 국악을 널리 알리고 싶다. 지금 몇 개의 현지 축제 관계자와 상의 중이며 내년엔 호주에도 몇 번 다녀올 것 같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국악을 가지고 재미있게 연극형태로 만들어 공연을 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도들을 꾸준히 하고 여러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과연 어떨지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재즈가 흑인 문화에서 지금의 세계 문화가 되었듯이 언제가 우리의 장구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악기가  될것이라고 확신한다. 뉴질랜드에서도 국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면 한가지의 악기는 다뤄야 되지 않을까? 우리 음악에 대한 작은 관심은 큰 투자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우리는 문화로 아름다운 나라, 문화로 세계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하셨다. 우리 문화에 대해 각자가 소중히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면 곧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 김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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