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탁구 인생, 전 국가대표 김정미 씨

40년 탁구 인생, 전 국가대표 김정미 씨

0 개 1,990 김수동 기자


상대 선수의 허점을 노려 이번엔 강한 드라이브가 들어갔지만 네트에 걸렸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다시 조그만 탁구공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집중 하며 공을 넘기는 김정미씨의 표정은 지난 국가대표 시절 선수만큼 다부지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특기인 수비는 완벽에 가깝다. 



작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쉴새 없이 공이 지나간다. 상대의 허점이 보이면, 과감한 공격으로 포인트를 올린다. 특기인 수비는 완벽에 가깝다. 서브에 이은 안정된 수비와 강한 스매싱은 상대 선수를 불안 하게 만든다. 상대 선수의 허점을 노려 이번엔 강한 드라이브가 들어갔지만 네트에 걸렸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다시 조그만 탁구공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집중 하며 공을 넘기는 김정미씨의 표정은 지난 국가대표 시절 선수만큼 다부지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탁구 인생40년, 김정미 전 국가대표 탁구선수를 만나 보았다.
 
고등학교 3년 때 국가대표 발탁
지난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이에리사,정현숙 등이 주축이 되어 한국여자탁구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그 인기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 했다. 그 당시 불어온 탁구열풍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탁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골프로 말하면 박세리 선수가 LPGA 우승을 하며 제2의 박세리를 꿈꾸는 “박세리 키드” 주니어 골퍼가 많이 나왔듯이 나 또한 “이에리사 키드”인 셈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를 시작으로 시온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일모직 (현)삼성생명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81년부터 4년 동안 대한민국 탁구 국가 대표로 활동하였다. 명지전문대학교 학생시절엔 세계 대학생 탁구대회에서 단체전 우승과 개인전 3위를 하여 체육훈장 기린 장을 받으며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했다.

삼성 생명에서의 선수생활을 마지막으로 은퇴와 결혼생활로 탁구를 잠시 떠났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과 구청과 동사무소에서 생활체육 지도를 하던 중 뉴질랜드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지난 2005년 지인의 소개로 오클랜드 탁구협회장, 헤이근 보어를 만나게 되어 테스트 받았다. 그 당시 뉴질랜드에는 수비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가 없어서 유리하게 작용하여 뉴질랜드에서의 탁구 인생을 다시 시작 하였다.
 
뉴질랜드에서의 화려한 선수부활
2006년부터 뉴질랜드에서 선수로 다시 복귀하면서 힘든 훈련으로 생활을 했다. NewZealand National Open 단체 우승(오클랜드팀 소속)과 노스아일랜드 오픈 개인 2위, Over 40 오세아니아 챔피언 성적을 올렸다. 무엇보다도 뉴질랜드에서 교민의 한 사람으로 전국체육대회에 참여하여 해외동포 부 4년 연속 1위를 차지해서 기쁨이 더욱 크다.

한국에서의 선수생활 은퇴 후 뉴질랜드에서 선수로 다시 라켓을 잡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체력적인 문제였다. 시합 후 여기저기 온몸이 쑤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젊은 선수들의 빠른 공을 받은 날은 정말 많이 힘들었다. 선수로 복귀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 지난200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뉴질랜드 내쇼널 오픈 탁구 대회가 생각 난다. 그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는 오클랜드 팀은 수년 동안 남섬에 있는 캔터베리 팀에 밀려 항상 우승에 목말라 있었다. 우리 팀은 내가 에이스로 3게임을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2게임은 이미 승점을 획득했고 마지막 게임 세트 스코어 0대 2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코어도 3대7로 지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리 속은 어떠한 대회 때 보다 도 생각이 많았다. 3대0으로 질 수 없다는 생각과 지더라도 1세트라도 이기고 져야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한 점 한 점 침착하게 하다 보니 역전을 할 수 있었다. 결과는 대 만족! 역전에 역전으로 우리 팀, 오클랜드 팀이 우승 할 수 있었다. 그 경기를 지켜보던 팀 관계자와 우리 가족들은 얼싸안고 모두 기쁨을 만끽 했다. 그 게임의 승리로 수월하게 영주권을 받아 뉴질랜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어린 선수시절 승부에만 연연했던 그 어떤 시합보다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뛰었던 그 경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 이다.
 
탁구를 배우려는 교민들에게 한마디
탁구는 일정한 규격의 탁구대에서 작고 가벼운 공을 라켓으로 주고 받으며 경쟁하는 경기로 좁은 장소에서 적은 인원이라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라켓 스포츠이다. 좁은 공간에서 날씨와 상관없이 남녀노소가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2.7g 밖에 안 되는 가벼운 탁구공을 컨트롤 하려면 섬세한 감각과 집중력이 있어야 함으로 어르신들께는 치매예방에도 좋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집중력향상에 좋은 전신운동이다. 또한 보기에 쉬워 보이는 운동이지만, 탁구만큼 운동량이 많은 운동도 없다. 어깨운동에서 팔운동, 다리운동 등등 전신운동으로 이만한 생활체육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라켓 하나면 쉽게 접할 수 있으니 두려워 말고 교민 남녀노소 구분 없이 탁구 교실에 많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3시간 동안 운동할 수 있다. 교민 가족이 다 참가해도 좋고 물론 혼자 참여해도 다른 분들과 어울려서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생활 탁구와 엘리트 탁구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수 년간 꾸준히 실력을 키워 간다면 한인클럽뿐만 아니라 오클랜드 협회에서 운영하는 인터클럽에도 참가 할 수 있다. 현재 인터클럽에 참가하는 대부분은 키위와 중국사람들이다. 한인 교민들의 실력이 일취월장 해 많은 한인 선수들이 참가 했으면 한다. 
 
교민 탁구 선수를 위해 앞으로 기대 
탁구가 국기인 중국학생들은 꾸준히 연마하여 뉴질랜드의 대표선수를 하고 있다.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현재 배우고 있는 여러 명의 제자 중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배우고 있는 한승환과 엄시현 제자가 있다. 한승환은 처음 배울 때부터 한국 수비의 달인 주세혁에 반해 수비를 목표로 배운 제자이다. 탁구를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었지만 오랫동안 탁구를 즐기신 노장 분들을 이기는 재미에 빠져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엄시현 학생은 “under 13그레이드” 에서 2인자 이다. 이 학생도 2년 정도 배웠지만 “언더 13그레이드”에서 2위를 차지 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 만큼 노력을 많이 했고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 이다. 이 학생과 현재 목표는 2등이 아닌 1등이 되기 위해 틈새를 공략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격하는 수비수이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많이 알고 있는 수비 기술을 두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일이 요즘의 즐거움이다. 정통으로 수비를 하는 선수가 없는 뉴질랜드에서는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관중들과 선수들이 감탄을 연발한다. 아직 뉴질랜드 선수들 중 수비형  전문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성격적으로 차분해야 하고 전형상 끈질겨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연습량이 많지 않은 뉴질랜드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한인 두 제자들 배우는 것을 보면서 도전하는 중국선수도 생겨 앞으로의 경기가 기대 된다. 
Girls club은 매주 목요일 오후 5:30pm-7:00pm 두 명의 코치와 함께 1:1 레슨과 그룹레슨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다. 여자선수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활성화 차원에서 오클랜드 협회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비용 ($5)에 탁구를 배울 수 있다. 15세 미만 여학생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글,사진: 김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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