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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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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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개최된다. 뉴질랜드는 11월 14일, 바레인과의 예선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대한민국과 북한도 32강에 진출, 남아공 월드컵은 더없이 흥미진진하다. 네덜란드도 한판 승부에 합류하게 되었다. 섭섭하게도(?) 영국은 빠져 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진 사실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월드컵을 계기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과거 흑인들은 월드컵 경기에 출전 할 수 없었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야기시킨 종교 분쟁, 인종간 갈등으로 내전에 휘말렸다. 교육의 기회도 박탈 당해 평생 어둠 속에서 살다가 에이즈로 죽어갔다. 남아공의 에이즈 환자 숫자는 총인구 5천만명 중 570만명으로 추정,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원래 아프리카는 평화로웠다. '부시맨'처럼 순수한 영혼의 사람들이 등에 화살을 메고 사냥이나 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던 곳이었다. 비극은 1652년 네덜란드의 개신교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박해를 피해 남아공에 상륙한 뒤로 시작된다. 그들은 종교를 앞세워 침략행위를 교묘하게 합리화했다. 신이 선택한 인간의 형상은 백인이고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 후 백 년 정도가 흐른 뒤 영국 선교사들이 남아공에 상륙, 본격적인 열강의 각축전이 벌어지게 된다. 남아공에서 네덜란드인들은 '보어인(농부)'이라 불렸다. 보어인은 현재 남아공의 수도인 요하네스버그에 트란스발 공화국을 세우고 영국을 견제했다. 그 곳에는 금과 다이아몬드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었던 것. 배가 무지무지 아팠던 영국은 보어인과 전쟁을 선포, 승리한 뒤, 1910년 남아공을 창건한다.
1948년 국민당은 인종분리정책인 '아파타이드(Apartheid)' 법률을 제정했다. 그 법은 영국인이 제정했던 'Pass Law'가 기본이 되었는데, 흑인들은 영국인이 사는 지역에 접근할 수 없고 결혼과 이주, 취학 등도 제한되었다. 정말 웃긴 건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꼴. 남아공 흑인들을 외국인으로 분리해 기본권 조차 모두 빼앗아 버렸다. 백인들은 침략자로서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흑인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다. 호주가 원주민 애보리진에 대해 인종분리정책을 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파타이드'는 42년 간이나 계속되다가 1990년 폐지되었는데, 속셈은 결국 백인들의 잇속 챙기기였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치열한 항쟁이 계속되었고, 세계 2차 대전 종식 후 사회분위기가 공산화로 변질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
유화정책 중 하나로 넬슨 만델라도 석방되었다. 만델라는 34세에 변호사가 되어 인권운동가로 항쟁하다가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27년만에 자유가 된 것. 44의 장년이 72세의 노인이 되어 감옥을 나섰다.
1994년 만델라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이보다 일년 앞선 해에 아프리카 흑인 인권 운동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남아공에는 '흑백연합정부'가 들어섰는데 그때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설립되고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다. 투투 주교와 만델라는 '무지개 정부'를 꿈꿨다. 지난 세월에 대한 보복과 원망없이 화해와 용서 정신으로 남아공을 화합의 나라로 만든다는 것. 종족과 인종간의 갈등을 없애고 무지개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다민족, 다문화의 아름다운 나라가 만델라의 꿈이었다.
지난 2월, 아프리카 연합(AU)의장에 선출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은 9월 23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서방 세계에 아프리카 식민지에 대한 피해 배상으로 7조 7700억 달러를 요구했다. 전쟁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UN이 무슨 소용이냐며, UN 헌장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15분 연설 시간을 훨씬 넘겨 50분 가까이 그는 분개했다.
10일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는 수상 연설에서 "비폭력 운동이 히틀러 군대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정의로운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정의롭다'는 말과 '전쟁'이 함께 조합될 수 있는가? 조합이 그럴 듯 하다고 인정한다 해도 무엇이 '정의'였는지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다. 힘 있는 자들이 말하고 결정하는 것이 정의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국제 사회다.'내가 하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 국제 사회 윤리에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하면 정의고 남이 하면 폭력이고 테러가 맞다. 무고한 사람들과 아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가고, 어린 아이들이 총을 들고 전쟁에 투입되고 있는데도.
남아공에서 만델라는 코사어족의 언어로 '마디바', 즉 '존경받는 어른'이라 불린다. 영국 BBC는 21세기 지도자 1위에 넬슨 만델라를 선정했다. 남아공 국민들이 만델라를 정신적 지주로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영국은 왜 병도 주고 약도 주는 것일까? 자신들을 걸고 넘어가지 않은 것이 감사했던 것일까?
일제 식민 통치와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는 조국을 가진 나는 간디나 만델라의 비폭력 화합 정책보다 카다피의 분노가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섭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용서와 화합, 비폭력이 맞다. 만델라의 노벨 평화상은 맞고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은 회의적이다.
미래의 지구촌은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국경도 인종도 민족도 초월해서 화합하며 살아갈 '무지개 나라'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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