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들을 다른 풀밭으로 옮겨 주기 위해 풀밭에 갔는데 송아지가 땅에 코를 박고 이상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너무 이상해서 가보니 굴이 있었고 소가 밟아서 안쪽 굴이 무너져 버렸다. 세상에... 굴속에는 눈도 안 뜬 갓 태어난 8마리의 토끼 새끼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엄마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토끼가 새끼를 낳은 것을 누가 보게 된다면 엄마가 새끼들을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설마... 자기새끼들을 물어 죽이기야 하겠어? 밤에 엄마가 와서 다른 곳으로 옮기든지 알아서 하겠지. 무너진 토끼 굴을 판자로 덮어 주고 왔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밤새 비가 내렸다. 풀밭에 가보니 이를 어쩌나~ 굴을 덮어놓은 판자는 송아지가 밀어내 버렸고 굴속에 물이 가득하고 토끼새끼들은 굴 안 밖으로 모두 죽어 있었다. 토끼엄마는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이고~ 어제 내가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을 텐데... 토끼 새끼들아 정말 미안하다... 장례나 잘 치러 줄려고 하는데 한마리가 꿈틀거렸다.
죽은 토끼새끼들은 소들한테 또 밟히지 않도록 깊숙이 파묻어 주고 살아 있는 토끼새끼를 집에 데려와 드라이기계로 말려 주었더니 제법 토끼 모양이 났다.
새끼를 낳고 3일 만에 엄마개가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5형제 강아지들은 우유를 먹여 키워 봤지만 요렇게 작은 토끼새끼는 어떻게 키우나 걱정이 되었다.
손자가 어릴 때 먹던 우유젖병을 찾았지만 젖꼭지가 토끼 머리만 하였다. 이걸 어쩐담...
조그만 입은 꽉 다물어져 있고 생각 끝에 아기 약 먹이듯 강제로 입을 벌려 작은 수저로 우유를 떠 먹였다.
"토끼새끼야, 근데 네 엄마는 왜 그리 무정하다냐~ 닭대가리인 닭들도 자기 새끼만큼은 잘 지키는데..."
다음날부터는 우유를 담은 수저를 들이대면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토끼가 눈을 떴다. 집안에서 놀다가 나에게 오는걸 보니 나를 엄마로 아는 모양이었다. 배가 고프면 우유그릇으로 달려가곤 한다.
일요일 날 성당에 갈 때 토끼를 데리고 갔는데 아이들이 모두 놀란 토끼처럼 토끼새끼 앞으로 모여 들었다.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저런 토끼를 사 달라고 졸라 댄다.“얘 좀 봐~ 저건 야생토낀데 저걸 어디서 사~” 진우 엄마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인다.
풀밭에 내 놓으니 풀도 잘 뜯어먹고 꽃도 잘 뜯어먹고... 꽃보다 예쁘다.
조그만 것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풀밭을 이리 저리 뛰어 놀다가 내 발등에 와서 앉는다.
“많이 놀았지, 이제 집에 가서 발 닦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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